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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보이는 성전과 보이지 않는 성전 (대하 03: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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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는 두 가지 성전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던 솔로몬 왕이 지은 성전과 신자들에 의해서 형성되는 성전입니다. 이 두가지 성전에 대해서 먼저 생각하고 교회와 성전의 관계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예루살렘 성전 장소 (1)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곳 솔로몬의 성전이 세워진 곳은 예루살렘의 모리아 산(3:1)이었습니다. 이 모리아 산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린 곳입니다. 독자 이삭의 헌납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사역에 대한 예표입니다. 그것은 이삭 대신에 양을 예비하셨다가 제물로 드리게 함으로써 더욱 분명해졌습니다. 양의 대속이 이삭을 구원한 것처럼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능력이 종교적 결단에 의해서 모든 인간을 구원합니다. (2) 오르난의 타작마당이었던 곳 성전이 세워진 곳은 다윗이 인구를 조사한 죄로부터 사함받기 위하여 오르난에게 값주고 산 타작마당이었습니다(대상21:14). 다윗은 이 땅을 금600세겔을 주고 사서 번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므로써 3일간의 온역이 그치고 죄사함을 받은 곳입니다. 여기서도 역시 하나님의 속죄의 은총을 찾아보게 됩니다. 죄를 짓고 용서를 구할 때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신 자리 바로 거기에 솔로몬의 성전은 세워진 것입니다. (3) 성전의 기능 최상의 헌신의 속죄 은총과의 관계입니다. 이런 개념은 "성전"과 "그리스도"의 개념과 일치합니다. 헌신은 인간의 의무이고 속죄는 하나님의 은혜 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성전에서 만나고 거기에서 헌신과 속죄의 은혜가 하나로 연합하는 곳에 구원은 이루어집니다.

2. 예루살렘 성전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 땅으로 가는 도중에 그들이 쉽게 옮길 수 있는 장막을 지어서 거기에다 하나님의 법궤를 안치하고 거기에서 기도와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들이 가나안 땅에 정착한 후에는 더 항구적인 법궤 안치소를 건축하려고 하였으나 다윗 왕 때에 이르러 준비한 내용을 보면 금 10만 달란트, 은 I00만 달란트를 준비해 두었으며 다윗 왕과 여러 고관들이 바친 금은을 합하면 2만 5천 달란트나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윗 왕은 전쟁터에서 많은 피를 흘린 군인이었기에 하나님이 그에게는 성전건축의 특전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아들 솔로몬 왕이 그의 치정 제4년에 성전건축을 시작하여 7년 6개월만에 완공했습니다(왕상 6:1-36). 목재는 레바논에서, 목공은 베이게에서 구해왔으며 1만명의 인부가 1개월간 목재를 베는데 복역했습니다. 가나안 사람 15만명이 돌을 깎고 운반하는데 동원되었습니다. 이 성전은 솔로몬의 영화를 대표하는 작품이 라고 할 수 있는 웅장하고도 찬란하고 위엄이 차고 넘치는 대성전이었습니다. 솔로몬의 성전은 장차 닥아올 그리스도의 왕국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솔로몬의 성전이 이스라엘의 구심점이 되었는데 예수 그리스도는 장차 올 그의 왕국의 중심이 될 것입니다. 솔로몬의 지혜와 부와 영광은 그리스도의 왕국에 있어서의 그리스도의 인격의 그림자로 나타난 것입니다. 성전에 사용된 백향목 잣나무 등 목재는 그리스도의 인성을, 성전에 사용된 금 은 신성을 나타냅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고 하나님께 봉헌 기도를 드릴 때 대하 6:18에 "하나님이 참으로 사람과 함께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전이오리이까"라고 한 것은 인간이 지은 성전의 불완전성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것이 아무리 화려하고 장엄해도 하나님께 용납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심으로 보이는 건물 속에 갇혀 계실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의 성전은 남북 양국간의 전쟁 때문에 부분적으로 파괴되었다가 주전 586년에는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해서 완전히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그 후에 여러 번 수축되었습니다. 스룹바벨이 바벨론에서 돌아와서 재건했으나 옛날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이 성전도 수리아인과 로마인에 의해서 또 다시 부분적으로 파괴되었습니다. 헤롯 대왕이 그의 정치적 인기의 일환으로 성전을 대 중수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있던 성전은 바로 헤롯 대왕이 수축한 성전이었습니다. 주후 70년에 있었던 독립 전쟁 때 유대인들이 성전을 마지막 전지로 삼아 싸우다가 그들은 점멸되고 말았습니다. 그때 성전의 외부 건물은 유대인에 의해서 소전 되고 말았습니다. 그 자리에 하드리안 황제 (주후 136년)가 쥬피터를 위한 신전을 건축하였으나 얼마 안가서 다시 화재로 소실되고 말았습니다. 주후 691년에 예루살렘이 사라센족에 의해서 점령 되었을 때 압달말적이란 사람이 성전 터 위에 돔을 지은 것이 현재까지 남아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영광과 수치의 민족 이스라엘의 역사와 함께 그 운명을 같이 한 예루살렘 성전의 모습입니다. 본래는 여호와의 법궤를 안치하고 여호와에 대한 예배와 기도의 집으로 지은 이 성전을 허식과 기만과 시기와 분파 싸움과 돈벌이의 소굴로 만들었기 때문에 이런 처참한 운명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성전을 헐고 사흘만에 다시 짓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보이는 성전은 인간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지 영이신 하나님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신령과 진정으로 나와 예배하는 자만이 성전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이름을 주신 곳입니다.

3. 크리스천 성전 바울의 편지 가운데 신자를 성전이니,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니, 성령의 전이란 말을 여러 번 사용하고 있습니다(고전 6:19, 고후 6:16, 엡 2:22). 이스라엘인과 예수님과 바울이 가진 성전에 대한 개념을 비교해 본다면 대개 다음과 같습니다. (1) 이스라엘인들은 성전은 하나님의 법궤를 안치해 두는 장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장소, 외형적으로 훌륭한 건물이 있는 곳, 제물을 바치는 곳, 제사장들이 있어서 여호와와 자기들을 중개해주는 장소 등으로 생각했습니다. 이와 같이 그들은 외형과 물질적인 것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2) 예수님은 성전을 하나님께 기도하는 집이라 했습니다(마 21:13, 막 11:17, 눅 19:46). 거기에는 하나님과 사람이 인격적으로 교제하는 장소이며 한 걸음 더 나아가서는 예수님 자신으로도 생각했습니다. (3) 바울은 예수님은 성전 자체요, 신자는 그의 부분으로 생각했습니다. 또한 그리스도는 머리요, 신자들은 그의 지체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예수님이나 바울은 성전은 영적인 것이요, 정신적인 것이요, 인격적인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필자는 크리스천 성전이라 부릅니다. 참 성전은 보이지 아니하는 성전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성전이라는 사실입니다.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에 세우심을 입은,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지어져 가는 성전들임을 명심해야합니다. 성도는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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