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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갈멜산의 부흥 (왕상 18: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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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이 우상을 섬기자 진노하신 하나님은 3년 6개월간 극심한 가뭄으로 징계하셨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은 흉년과 기근이 심하여지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도탄 가운데 빠졌습니다. 이 때 엘리야를 통하여 갈멜산 결전에서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엘리야가 기도함으로 큰 비가 내렸습니다.

1. 갈멜산의 결전(20-22절) “아합이 이에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로 보내어 선지자들을 갈멜산으로 모으니라” 이 때에 엘리야는 아합에게 최후통첩을 보내어 갈멜산에서 대결을 하여 누가 넘기는 신이 참 신인지를 시험할 것을 제의하였습니다. 아합은 이 제의에 동의하고 온 나라 국민은 물론 바알의 선지자들도 회집하여 국난의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를 나타내려고 하였습니다. 자고로 옛부터 한재와 지재는 옳지 않은 국가와 민족에게 내려지는 하나님의 중징계입니다. 아합은 엘리야에게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자가 엘리야라 하였으나, 엘리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 하면서 아합이 이스라엘을 괴롭히는자라고 했습니다. 이제 바알과 아세라 제사장 850명이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야와 갈멜산에서 결전하기로 한 것입니다.

2. 바알 제단(25-29절) “불로 응답하는 신 그가 하나님이시라 백성이 다 대답하되 그 말이 옳도다” 회중들의 의견은 이 대결에서 불이 붙는 제단이 참 신이니 그를 공경하자는데 일치하였습니다. 엘리야는 수의 우세를 따라 바알의 선지자에게 우선권을 주었습니다. 그들은 850명이 합력하여 장엄한 제단을 쌓았습니다. 제물을 벌여 놓고 전 국민의 시선이 집중한 가운데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바알이여 불을 주소서” 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아침부터 오정까지 목이 타게 빌었으나 아무런 소리도 없고 응답도 없었습니다. 안타까운 그들의 상태 낙망한 나머지 자신들의 몸을 상하게까지 하였습니다.

3. 엘리야의 제단(30-39절) “이에 여호와의 불이 떨어져서 번제단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이에 엘리야는 백성들을 모으고 무너진 제단을 다시 고쳐 쌓았습니다. 이세벨에 의해 파괴된 제단을 수축하니 감개무량합니다. 그 재료는 돌 열두개와 각을 뜬 소입니다. 크고 높은 바알의 제단에 비해 보잘 것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엘리야의 제단에 불을 내림으로 온 백성들 앞에서 여호와가 참 신임을 증명하였습니다. 엘리야의 확신 있는 기도가 하늘에 상달하여 불이 내려 돌, 나무 흙을 태웠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죄를 없애주시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물을 핥은 것 같이” 라는 것은 약속을 성취한 증거입니다. 이 불로써 하나님의 참 신으로 이스라엘 가운데 살아계심을 확증하였습니다. 4 죄씻음 받음과 강우(41-46절)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하여지고 큰 비가 나리는지라”부흥은 일어났습니다. 백성들은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라” 소리쳤고 그들의 찬송에 천지가 진동하였습니다.

5. 능력에 이르는 일곱 단계 엘리야가 이런 승리를 성취하게 됨은 능력의 일곱 단계를 밟았기 때문입니다. (1) 기적을 바라고 믿는 믿음입니다. 41절에 “엘리야가 아합에게 올라가서 먹고 마시소서 큰 비의 소리가 있나이다”라고 합니다. 비가 없는 하늘을 보면서 큰 빗소리를 들으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은혜를 받고 못 받는 것은 그 사람의 믿음에 좌우되는 것이란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을 기대하지 않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지 아니합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3년 6개월 가뭄이 계속되는 불리한 상황 아래 있으면서 “큰 빗소리”를 들은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하늘의 불을 내려서 바알신과 아세라 우상을 제거한데서오는 확신에 기인되었던 것입니다. 그 당시에 온 백성들이 바라는 것은 불이 아니고 물이었습니다. 이 때 시급한 것은 비가 오는 것이지만 우상을 제거하는 수단으로써는 먼저 불이 선결문제였습니다. 이로써 여호와가 참 신인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2) 최선을 다했습니다. 42절에 “엘리야가 갈멜산 꼭대기로 돌아가서” 라고 했습니다. 산꼭대기로 오르라고 했습니다. 갈멜산 꼭대기로 올라가라는 것은 인간의 최선을 다하라는 뜻입니다. 아무리 우리가 하나님의 큰 기적을 바라고 믿는다고 해도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하지 않은 자에게 기적을 행하시지 않으십니다. 엘리야가 하늘에서 불을 내리는 큰 권능을 행할 때에도 그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하여 하나님께 간구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도우십니다. (3) 간절한 기도였습니다. 42절에 “땅에 엎드려 그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엘리야가 갈멜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무엇을 한 것을 알 수 있고, 또한 한편 기도의 자세가 무엇인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1) 땅에 엎디어 간절하고 겸허한 모습인 동시에 인간의 완전한 무능과 하나님의 절대하심을 온전히 100퍼센트 의지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의 기도하는 자세를 보면. 그가 얼마나 하나님께 간절한 기도를 하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처럼 기도의 간절한 모습을 찾아볼 수 있는 성경 귀절은 좀처럼 보기 힘듭니다. 2)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손을 들거나 얼굴을 하늘로 향하여 기도하는 사람은 많이 있으나, 자기의 무릎 사이에 얼굴을 틀어박고 기도한 사람이 엘리야 외에 또 누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 성전의 스랍들은 여섯 날개를 가지고 있어 둘로는 얼굴을, 둘로는 발을 가리고 나머지 둘로만 날고 있습니다. 우리도 스랍들처럼 우리의 부끄러운 얼굴을 가리고 기도합시다. 그리고 우리의 더러워진 발을 가리십시다. 기도를 많이 한 자는 자기의 수치스러운 얼굴이 완전히 가리워지고 대신 주님의 모습이 그 얼굴이 보여 지게 하는 자입니다. 3) 가장 작은 자의 위치입니다. 땅에 꿇어 엎드려 무릎 사이에 자기 얼굴을 집어넣는 순간은 아마 내가가장 작아지는 때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내가 가장 작은 자라고 생각할 때 임하는 것입니다. 고후 12:10에 “내가 약할 때에 곧 강해지는 것입니다”, 고후 12:9에 “하나님의 능력은 사람의 약한데서 온전하여지기 때문입니다” 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자기의 약한 것을 기뻐한다고 했습니다. (4) 대망이었습니다. 43절에 “그 사환에게 이르되 올라가 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기대하는 것은 하나님을 위한 대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이 무엇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운명이 좌우됩니다. 아담과 하와는 바라보아서는 안 될 선악과를 자꾸 바라보다가 타락했고, 다윗은 쳐다보아야 할 하나님은 보지 않고 여인의 나체를 보다가 범죄 했고, 삼손, 롯의 아내, 데마, 가룟 유다, 솔로몬 등도 보아서는 안 될 것을 바라보다가 타락하였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120년간 말씀에 순종하여 앞만 바라봄으로써 홍수 심판을 면했습니다. (5) 꾸준한 인내입니다. 43절에 “저가 돌아가서 고하되 아무 것도 없나이다 가로되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고 했습니다. 일곱 번까지 다시 가는 노력을 기울였기에 능력이 나타난 것입니다. 성공의 비결은 실패했을 때 다시 시작하고, 또 실패하면 또 다시 일어나는데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거듭하면 거두게 마련인 것입니다. 이 일곱이란 수는 완전을 나타내는 것으로 온전한 겸손, 순종, 인내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는 것은 끈질긴 인내력을 의미합니다. 엘리야가 갈멜산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수고도, 땅에 엎드려 기도하는 간절함도, 바다 쪽을 바라보는 원대한 소망도, 이 일곱 번까지의 끈질긴 인내에서만 얻어지는 것입니다. 야곱은 에서를 만날 때 일곱 번 몸을 담그므로 깨끗함을 받았던 것과 같이 “아무 것도 없나이다” 하는 곳에 하나님의 능력이 임할 때까지 “일곱 번까지 다시 가는 인내력이”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입니다. (6) 작은데서 시작합니다. 44절에 “일곱 번 이르러서는 저가 고하되 바다에서 사람의 손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엘리야가 일곱 번까지 인내로써 기도할 때 비로소 바다 저 쪽에서 조그마한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손바닥만한 구름이 조금 후에 큰 바람을 일으키고 마침내 하늘을 캄캄하게 하더니 큰 비를 내리게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했습니다. 손바닥만한 작은 구름-바람-어두움 큰 비-하나님의 능력,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서 큰 것을 기대하고 큰 것을 얻도록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작은 일에 충성할 때 큰 것을 맡기시고(마 25:33), 작은 겨자씨 한 알로 큰 나무를 이루게 하십니다(마 13:32). 주님은 냉수 한 그릇에도 상을 잃지 않으시고(마 10:42), 우리가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도 그대로 갚아주십니다(마 25:40). 본문에서처럼 손바닥만한 작은 구름이 큰 능력의 시발점이 되는 것입니다. (7) 단언 입니다. 44절에 “올라가 아합에게 고하기를 비에 막히지 아니하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소서” 라고 했습니다. 아합에게 고하라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갈멜산에 올라가기 전에도 아합에게 큰 빗소리가 들리니 올라가서 먹고 마시라고 하였습니다(41절). 그런데 이번에는 비에 맞지 아니하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라(44절)고하는 것 입니다. 처음에는 올라가라 하였고, 나중에는 내려가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우리 인생의 모형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는 누구에게나 이 두 양면이 있는 줄 압니다. 신앙이 성장하여 올라갈 때가 있는가 하면, 침체되어 내려갈 때도 있습니다. 우리 신앙이 올라갈 때는 먹고 마시고 즐거움인 됩니다. 그러나 내려갈 때는 비로 인하여 막힙니다. 길이 막히고, 기도가 막히고, 찬송이 막히고, 축복이 막힙니다. 아브라함도 신앙이 내려갈 때는 애굽에까지 이르게 되어 불신앙의 결과로 큰 실수를 범하였으나(창 12:10),신앙이 올라갈 때는 동서남북으로 넓은 영토를 얻었습니다(창 13:1-14). 엘리야가 왕의 권세 앞에 이렇게 단언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신앙의 담력과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때 하나님의 기적의 역사는 일어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엘리야의 이 단언이 내려진지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구름은 하나님의 영광이요, 바람은 성령의 상징 입니다. 하나님은 바람 날개로 다니시며(시 104:3). 만물을 소생케 한 것은 권능의 상징입니다. 엘리야의 단언은 구름과 바람을 일어나게 하고 큰 비 내리게 한 후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도록 한 것입니다. 리는 엘리야와이 불리한 상황 아래서도 담대한 확신을 가지고 “단언” 으로 명할 때 하나님의 권능이 보장되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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