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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함 (슥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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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적인 신탁의 마지막 절인 본문 슥 11:1-3은 레바논과 바산의 인근의 지역에 대한 상징적인 말로 전환됩니다. 즉 이 레바논과 바산은 귀환하는 이스라엘인들에게 너무나도 유명한 주요 지역인들이며 요르단을 둘러싼 산림지대도 이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강조되는 점을 이 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이 아니라 파괴된 이 지역의 나무에 관한 관심입니다. 하나님의 양떼에 방해되는 것은―여기서는 바산과 레바논 그리고 요단 계곡의 산림을 지칭하고 있지만 이 산림에는 야수들이 깃들여 있기 때문에 양떼들에게는 위험한 지대로 되어 있습니다.―포로기에서 돌아온 이들이 거주하는 모든 지역에서 제거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양떼를 이 산림 속에서 잡아 먹고 즐기던 악한 목자들은 이제 저들의 피난처가 파괴되어 슬피울게 됩니다. 이렇듯 높은 상징적 표현에서 이 시적인 예언자는 도둑들의 폭력과 탐욕으로부터 이 땅을 안전하게 보호한다는데 대한 희망의 기초가 포로기 이후 흩어진 유대인들에게 계시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를 위한 이와 같은 안녕의 목표는 의로우신 하나님의 나래 아래서 지금까지 인간 정치의 전통에서 조장되어온 인류의 소망으로 지속될 것입니다. 레바논의 백향목은 예루살렘 성전의 재목이니 성전이 불탈 것을 예언하고 있으며 문을 열라는 말씀은 오는 재앙을 맞아들이라는 말입니다. 백향목과 바산의 상수리 나무를 말하는 것은 예루살렘의 왕국 대가들이 파멸될 것과 또는 권위자들이 다 엎드러질 것을 가리킨 듯합니다(렘 22:6-7).목자는 제사장들을 가리킴이요, 영화로운 땅은 성전을 가리킵니다.

1. 예루살렘은 멸망을 이루기 위한 준비를 봅니다(1절)1절에 “레바논아 네 문을 열라” 그렇지만 너희의 왕이 들어오게 하려고 문을 열지 말라고 했습니다. 혹자들은 레바논의 백향목으로 지어진 성전과 레바논의 눈처럼 흰 성전의 돌을 뜻하는 것으로 봅니다. 그 성전은 로마인들에 의해 불태워졌으며 분노한 군인들이 그 문을 강제로 열어 젖혔던 것입니다. 이런 일을 확증하려고 그들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즉 두 번째 지은 성전이 무너지기 40년 전에 이미 성전의 문은 스스로 열려졌다는 것입니다. 이런 일을 확증하려고 그들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즉 두 번째 지은 성전이 무너지기 40년 전에 이미 성전의 문은 스스로 열려졌다는 것입니다. 이 일에 고나해서 유대의 학자들과 마찬가지로 당시 랍비였던 조나단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레바논아 네 문을 열고 불이 이백합화를 사르게 하라는 스가랴의 예언에 따라서 정전이 무너질 날이 이제 가까웠음을 나는 알 수 있다”고 하였던 것입니다.

2. 모든 건 침략자에게 개방될 것입니다(2절)백향목과 더불어 용감하고 지위가 높던 자들도 불에 탈 것이니 이것이 비천한 자들에게도 경고가 될 수밖에 없게 될 것입니다. 2절에 “너 잣나무여 곡할지어다 백향목이 넘어졌고 아름다운 나무가 훼멸되었도다 바산의 상수리 나무여 곡할지어다 무성한 삼림이 엎드러졌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백향목이 넘어지게 되면 전나무는 곡을 하게 되리라.” 당당히 서있던 백향목이 넘어졌는데 어떻게 가냘픈 전나무가 그대로 서 있을 수 있겠습니까 백향목이 불살라 지게 되면 그 때는 전나무도 곡할 시기가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포도의 수풀”이 무너졌고 또한 레바논에 있던 것 같은 “방위된 수풀”도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현명하며 선한 자들이 죄에 빠지고 부자와 위인들도 곤경에 처하게 되는 것은 여러 면에서 불안정한 신분이 낮은 자들에게는 큰 경고가 됩니다.

3. 파멸로 인한 애곡이 있습니다(3절)3절에 “곡하는 소리가 있다”고 했습니다. 몰락한 자는 그리고 자기들도 몰락하게 될 것을 아는 자들은 비탄과 치욕으로 인해서 슬픔에서 울부짖습니다. 그러나 고관들이 더욱 당황하여 놀라게 되었습니다. 승리의 잔치날에 떠들썩하게 즐기던 사람들이 공포의 날이 되면 떨며 울부짖게 됩니다. 왜냐하면 지금 그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욱 “슬픔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라는 말씀 같이 고관들은 기능상 목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책임진 하나님의 남은 무리를 보호해야 했습니다. 그것은 또한 방백들과 제사장들 모두의 의무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자들” 같이 고함을 질러 그 무리들을 공포로 몰아 넣었고 그들을 갈기 갈기 찢어 자기의 밥으로 삼아 버렸습니다. 목자와도 같았던 그들이 젊은 사자로 돌변하게 된 것은 그들에게는 대단히 비참한 일이었습니다.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목자들은 “자기들의 자랑이 황무하게 되어 버렸기” 때문에 “울부짖고” 있는 것입니다. 목동의 자랑이었던 푸른 초장과 그것을 뒤덮었던 수많은 양떼들이 결단이 났습니다. “젊은 사자들”은 “요단의 자랑이 황무하게 되었기 때문에”, “울부짖고” 있는 것입니다. 요단의 자랑은 둑위에 있는 숲과도 같았고 사자들은 그 안에서 몸을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강물이 넘쳐 나게 되어 더 이상 베기지 못하게 되자 그 사자들은 그 속에서 기어나와서 울부짖었던 것입니다. 권력을 잡은 자들이 권력을 제멋대로 휘두르며 목자가 아니라 사자처럼 변하게 되면 공의의 하나님께서 그들의 교만을 낮추시고 그 권력을 꺾으시라는 것을 각오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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