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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생의 대조물 (잠 14:2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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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왕의 영광과 패망 28절에 “백성이 많은 것은 왕의 영광이요 백성이 적은 것은 주권자의 패망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대국주의를 말함이 아니요 주권자가 인심을 잃지 않고 인화를 이루어가야 할 것을 가르칩니다. 지도자란 무조건 사람만 좋게 한다고 해서 사람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의리를 굳게 붙잡아야 많은 사람들을 통솔할 수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임금의 마음속에서만 진실한 의미에서 넓은 아량이 있는 법입니다. 그만이 선악을 분별하여 공정히 다스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랑으로 통치할 수 있습니다.

2. 격정의 억제 29절에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여도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고 했습니다. 약 1:20에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느니라 또한 사람의 분노를 내는 동안은 사리를 올바로 분별하지 못하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노하기를 더디 하고 참으면 그는 명철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분노가 올라 올 때 당장 분내지 않고 참으면 그 분노가 식어지고 맙니다.

3. 마음의 화평과 시기 30절에 “마음의 화평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의 썩음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모신 자의 마음은 안정은 육신의 생명을 장수시킵니다. 이런 분은 격동, 불안, 조급, 긴장된 사회에서도 주님의 평안을 누립니다. 장자의 글에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중국 노 나라에 왕태란 사람은 발이 하나 없는 불구자였습니다. 그런데도 그의 제자가 공자의 제자보다 그 수가 더 많았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그가 안정한 마음을 가지고동요하지 않는 인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듣는 것과 보는 것 때문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만물은 하나”라는 점을 볼 뿐이고 그 이익과 손해에 대해서도 염두에도 두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발이 있고 없고 간에 태연했으며 발 하나 끊어버리는 것을 흙덩어리 내던지는 것 같이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도 하나님을 모신 참 평안과 비교할 수 없는 보잘 것 없는 것입니다. 참 평안은 그리스도 안에서만 있고 그 안에서만 영원한 기쁨을 얻을 수 있습니다.

4. 가난한 자에 대한 학대와 동정 31절에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존경하는 자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가난한 자를 학대한다는 말씀은 그 의미가, (1) 가난한 일꾼에게 마땅히 주어야 할 급료를 제대로 주지 않음과 또는 제 때에 주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약 5:4에 “보라 너희 밭에 추수한 품꾼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를 지르며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귀에 들렸느니라”했으며, 신 24:15에 “그 품삯을 당일에 주고 해진 후까지 끌지 말라”고 했습니다. (2) 채권자가 채무자에게 잔인하게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신 24장에 저당을 받을 경우 집에까지 들어가지 말며 밖에서 취하라고 하였으나 아모스 시대에는 채무자를 신 한 켤레 값으로 사람을 팔고 샀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물질에 의하여 평가되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창조된 피조물로서 모두 동등한 인격적 대우를 받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5. 의인이 받을 축복 32절에 “악인은 그 환란에 엎드려져도 의인은 그 죽음에도 소망이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1) 의인은 먼저 의인이라고 불리움 받는 축복이 있습니다. 롬 3:10에 “의인은 없나니 곧 하나도 없으며”라고 하였습니다. 의인이란 계명을 몇 가지 지켰다고 의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은 나약하여 환란을 당하면 죄를 범하기 쉬운 법입니다. 마치 고여있는 못이 물이 맑아 보이지만 지팡이로 휘저으며 더러운 감탕물이 올라오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의인은 나약한 죄인인 것을 먼저 알고 남의 허물을 자신의 허물처럼 보고 신속히 고쳐나가 성결하게 장성해 나아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의인으로 불러 주시는 것입니다. (2) 의인은 영혼이 구원 얻는 축복을 받습니다. 본문에 의인은 죽음에도 소망이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인간의 영혼은 하나님의 계시에 의해서만 깨닫게 됩니다. 전 12:7에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 주신 하나님께 돌아간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가치는 육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과 함께 거할 영혼이 있는 것입니다. 6. 지혜에 대한 겸손 33절에 “지혜는 명철한 자의 마음에 머물거나 미련한 자의 속에 있는 것은 나타나느니라”고 했습니다. 겸손은 지혜의 표시입니다. 진정으로 현명한 자는 자기 보물을 자랑하지 않도록 그것을 감춥니다.

7. 나라를 영화롭게 하는 의 34절에 “나라를 영화롭게 하고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한 나라를 지배하는 정의는 곧 나라의 명예가 됩니다. 또한 한 나라를 지배하는 악은 곧 그 나라의 수치가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러한 면에 있어서 본보기가 되었던 백성입니다. 그들이 선했을 때 부강했고 하나님을 저버렸을 때는 그 주위의 모든 민족들이 그들을 모욕하고 유린하였던 것입니다.

8. 슬기로운 신하와 욕된 신한 34절에 “슬기롭게 행하는 신하는 왕의 은총을 입고 욕을 끼치는 신하는 그의 진노를 당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임금과 신하가 지켜야 할 도덕의 표준을 말합니다. 신하는 지혜롭게 임금을 잘 도와야 하고 임금은 그런 신하를 표창해야 합니다. 그리고 옳지 않은 신하는 벌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점에 있어서 다윗의 행정정치를 본 받을만 합니다. 국가는 어진 임금과 어진 신하를 겸존해야 형통합니다. 옛날 중국의 진나라 시황은 이사라는 간신을 등용하고 그의 말만 의지하여 악정을 하여 그는 폭군이 되었고 그 결과 그 나라는 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후한의 유현덕 임금은 겸손하여 제갈량을 모시기 위해 제갈량의 초막에 세 번이나 찾아가 한 귀한 인재를 얻었으니 형통하였습니다. 슬기로운 신하는 지모보다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하를 말합니다. 다니엘과 요셉과 같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하를 가진 나라는 형통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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