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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개척자의 신앙 (수 17: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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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을 요구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는 완성된 빵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농사를 하게 하시고 곡식을 거둬 빵을 가공하여 먹게 하십니다. 돈과 부요를 요구하는 사람들이게는 건강과 일터를 주tu서 스스로 일하여 돈과 부요를 누리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완성품을 주시어 당신의 자녀들을 나약하게 만드시지 않으시며 미완성품을 주시어 스스로 연구하고 노력하고 싸우고 정복하여 얻도록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도 마 11:12에 “세례 요한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우리들의 적극적인 노력을 요구하시는 말씀이십니다. 안일하게 앉아서 부끄럽게 천국을 얻을 것이 아니라 침노하고 빼앗아 영광스러운 천국을 얻으라고 하신 말씀이십니다. 확실히 하나님의 축복은 적극적인 믿음을 가지고 힘쓰고 애쓰는 사람이 얻습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약속하신 예수님의 말씀 속에는 믿고 노력해야 한다는 뜻이 충분히 함축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요셉 자손이 여호수아에게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복을 주사 우리 지파가 큰 민족을 이루었는데 한 제비, 한 분깃이 어찌된 일이냐”고 했을 때 여호수아가 대답하기를 “에브라임 산지가 좁을진대 산지에 올라가서 스스로 개척하라 비록 삼림이라도 네가 개척하라 그리하면 끝까지 네 것이 되리라 가나안 사람이 비록 철병거를 가졌고 강할지라도 네가 능히 그를 쫓아내리라”고 하였습니다. 이미 각 지파별로 분배는 끝났기 때문에 더 얻으려면 스스로 노력하고 개척하여 얻을 뿐이라 했습니다. 이제 누가 도와줄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개척하라는 뜻은 베라는 뜻이니 곧 나무를 베고 경작할 수 있도록 만들라는 뜻입니다. 여호수아는 여기서 요셉 자손들의 인력자원을 활용하도록 지시한 것입니다. 여호수아의 이 지도원리에는 귀한 교훈이 들어 있으니 영토가 좁아서 살기가 어려운 민족일지라도 인적자원에 의한 노동력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이며, 비록 황무지라도 힘껏 개척하면 넓게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노동력과 개척정신을 실현시키는 것은 인간들의 삶의 불만을 제거시키는 중요한 근본이 됩니다.

1. 더 큰 것을 바라는 신앙 14절에 “여호와께서 지금까지 내게 복을 주시므로 내가 큰 민족이 되었거늘 당신이 나의 기업을 위하여 한 제비, 한 분깃으로만 내게 주심이 어찜이니이까” 라고 했습니다. (1) 하나님의 축복은 무한합니다. 요셉 지파가 강성하게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축복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요셉 지파는 지금까지 받은 하나님의 축복도 크지만 더 큰 축복을 받고자하는 불타는 욕망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요셉 지파는 불평한 것이 아니라 더 많은 것을 요구한 진보적인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무한한 것이기 때문에 그 사람의 축복에 대한 간절한 소원에 따라 그의 분깃도 좌우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항상 더 큰 축복을 주시 기를 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더 큰 축복을 요구해야 합니다. (2) 축복과 믿음은 정비례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큰 축복을 주실려고 할 때는 먼저 우리의 믿음을 시험해 보십니다. 큰 믿음을 가진 자는 큰 축복을 받고 적은 믿음을 가진 자는 적은 축복을 받습니다. 아브라함은 큰 시험에 합격하여 믿음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따라서 믿음이 없는 자는 전혀 축복을 받을 수가 없는 것 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의 분량을 따라서 축복하시기 때문입니다. (3) 그 사람이 바라는 것이 그 사람의 믿음입니다. 히 11:1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 이라고 했습니다. 더 큰 축복을 바라는 신앙은 마침내 그에게 더 큰 축복의 실상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니 될 수 있는대로 더 큰 하나님의 축복을 바라고 믿어야 하듯, 우리의 믿음의 대소에 따라서 우리가 받는 축복도 좌우될 것입니다.

2. 능히 할 수 있다는 신앙 18절에 “가나안 사람이 비록 철병거를 가졌고 강할지라도 네가 능히 그를 쫓아내리라”고 했습니다. (1) 하나님 말씀의 근거 개척자의 신앙은 능히 할 수 있다는 신앙입니다. 우리는 “할 수 있다”는 신앙의 근거를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합니다. 동시에 “할 수 없다”는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그들을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신앙으로 전환시키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곧 지도자의 능력입니다. 빌 4:13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 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했고, 마 19:26에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할 수 있느니라”고 했고, 막 9:23에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했고, 요 14:12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 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고 했습니다. (2) 초능력의 출처 17절에 “너는 큰 민족이요, 큰 권능이 있은즉 한 분깃만 가질 것이 아니 라” 고 했습니다. 받은 분깃이 작아서 살 수 없다는 부정적인 말로 불평하는 그들에게 여호수아는 이런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말로 그들을 격려하면서 그들 앞에 있는 산지를 개척하도록 하여 그들의 불평을 해소시켰습니다. 이것이 지도자의 지혜입니다. 지도자는 불평하는 자를 잘 처리하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신앙은 모든 불행과 역경을 다 제거하고 할 수 없다는 부정적인 요소들을 전부 말살시키는 초능력 입니다. 이 초능력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데 바로 성령을 통해서 우리 가운데 역사하는 능력인 것입니다.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 하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게 하는 것입니다(슥 4:6). 우리는 약하여 할 수 없으되 그 큰 권능이 내게 임하면 못할 것이 없다는 가능성을 믿는 것이 우리 신앙입니다.

3. 산지를 옥토로 만드는 신앙 18절에 “그 산지는 네 것이 되리니 비록 삼림이라도 네가 개척하라 그 끝까지 네 것이 되리라” 고 했습니다. (1) 이 말씀은 인내로 고난을 이기라는 것입니다. 개척자의 신앙은 끝으로 산지를 옥토로 만드는 신앙입니다. 요셉 자손들이 지금 올라가서 개척할 땅은 거칠고 황무한 산지라 하더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그 곳이 옥토가 될 것을 믿으면서 기대를 가지고 개간을 시작하는 것이 개척자의 신앙이라 하겠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떤 위험이 닥쳐와도 인내로써 어려운 고난을 극복하는 신앙입니다. 개척정신은 하나님의 약속(성경)을 믿는 신념 속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2) 용감하게 도전하라는 것입니다. 요셉과 자손들은 지금 산림의 개척지를 앞에 두고 큰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문제에는 도전을 요구합니다. 새로운 개척을 위한 모험에 따르는 위험과 고난과 역경과 많은 시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문제 앞에 용감하게 도전할 때 문제는 해결되어지고 말 것입니다. 우리 앞에 놓여진 요단강은 갈라질 것입니다. 도전없이 승리는 오지 않습니다. 로버트 쉴러 목사는 “할 수 있다”는 적극적인 사고주의의 열 가지 원리를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1) 투쟁이 없다면 성장도 없다. (2) 도전이 없다면 인생의 의미도 없다. (3) 위기가 없다면 변화도 없다. (4) 고통이 없다면 도움도 없다. (5) 위험이 없다면 모험도 없다. (6) 위대한 원인이 없다면 위대한 운동도 없다. (7) 불안이 없다면 인생도 없다. (8) 환자가 없다면 의사도 없다. (9) 몸부림이 없다면 걸작품도 없다. (10) 죽음이 없다면 부활도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개척자의 신앙을 가져야겠습니다. 적극적인 노력을 하면서 하나님께는 더 큰 것을 바라며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능히 할 수 있다는 신앙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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