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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박국을 통한 신앙의 교훈 (합 02: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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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종종 어려운 시대를 당하게 마련이고 이처럼 어려운 시대가 올 때마다 사람들의 가슴 속에서 고민이 깃들이고 고민이 깃들이는 곳에 또한 그것을 견디어 나갈 사상이 나오는 것입니다. 선지 하박국은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었습니다.하박국은 다니엘 시대와 동시대에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선지 하박국의 가슴에는 시대적인 고민으로 찼던 것입니다. 하박국은 하나님의 통치에 대하여 의심을 많이 품었습니다. 그래서 하박국을 “구약의 도마”라는 별명이 있습니다. 하박국 선지는 하나님에 대해서 몇 가지 의심스러운 사실이 있었습니다.그 하나님 왜 이 땅 위의 의인이 고통을 받을까(1-2)입니다. 또 하나는 왜 악인들이 세상에서 번영을 누리는가(1-3)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의인이 범죄하면 하나님에게 징계받는 것은 마땅하지만 왜 하필이면 더 악한 삶들을 통해서 하시는가(4-13) 하는 점입니다. 이와 같은 의심을 가슴에 간직한 채 하박국은 그의 파수대에 서며, 망대에 서서 하나님의 대답을 기다립니다.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은 한 번도 믿지 못한다”는 서양 격언이 있지마는 하나님을 참되게 한 번 알아보려고 하는 사람을, 그 때문에 이런 저런 의심을 가지는 사람을 결코 버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어떤 의미에서는 그런 심령을 환영하며 하나님의 품에 안으시고 하나님의 크신 뜻을 나타내주시는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그 이름이 뜻하는 그대로 과연 하나님의 사랑의 품에 안기었고 그를 통해 이스라엘 민족도 하나님의 품에 안기어 큰 위로와 교훈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면 하박국 선지자가 하나님께 물을 때 하나님께로부터의 회답은 무엇입니까

1. 의인의 고생도 잠깐이요, 악인의 번영도 잠깐이라는 것입니다이스라엘의 장구한 역사가 우리에게 말해 주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섬기고 의를 행할 때 국운은 왕성하며 사방의 원수들을 정복하였고 그들이 순수한 신앙을 저버리고 우상숭배 죄에 빠지면 그리고 불의가 그들의 사회에 횡행할 때 그들은 쇠잔해지고 원수에게 침범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의는 흥하고 악은 망하는 것”은 하나님의 불변의 철칙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임시적 현상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악인의 흥왕이요, 의인의 고생인 것입니다. 가령 우리가 구약 성경 창세기를 읽을 때 의인 요셉의 생애를 보게 됩니다. 젊은 시절 애굽의 옥중생활을 했습니다. 불원 그는 진가를 발휘하여 일약 애굽의 총리가 디고 그의 주위에 있던 모든 불의한 사람들을 회개를 시켰던 사실을 봅니다.우리는 같은 예를 봅니다. 에스더서에서 봅니다. 악인 하만은 창성하고 의인 모르드개는 그 수하에서 구박을 당하고 한 때에는 생명까지 위태한 지경이 있습니다. 그러나 불원간 사필규정하여 악인은 망하고 의인은 그의의 보상을 받은 것입니다. 어떤 심리학자는 술(酒)은 작업에 유익하냐 유해하냐 하는 명제를 두고 실험하기 위해 두 마리의 그레 하운트 사냥개를 한달동안 똑같은 음식을 먹이고 한 개는 술을 한 되씩 더 먹였다고 합니다. 한달 후 두 마리 개는 경주를 시켰습니다. 전 코스의 4분의 1은 술먹던 개가 훨씬 앞찌르다가 4분지 2지점부터는 술먹던 개와 술먹지 않던 개가 속력이 같더니 4분의 3지점에서는 술먹던 개가 뒤지고 술안먹던 개가 뒤따라가서 앞장서기 시작하더니 나머지 4분지 4코스에서는 술먹던 개는 더 이상 가지 못하고 주저 앉아 버렸습니다. 술먹지 않은 개는 시종여일 같은 속도로 뛰어 골인했다고 합니다. 확실히 세상은 신자보다 불신자가, 의인보다 악인들이 스타트가 빠른 것을 봅니다. 그러나 종내 악은 멸망하고 의는 흥왕하는 것을 역사가 증명하는 하나님의 불법의 철칙인 것입니다.“악은 맹목적이다”라는 서양 격언이 있습니다만 미국의 흑인 목사 로빈슨은 “악인은 최후에 말이 없다”고 했습니다. 악한 것일수록 일시적이며 순간적입니다. 반면에 선한 것일수록 미래가 분명합니다. 가짜가 진짜보다 더 좋아 보이는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래가지 않고 그 실상이 드러납니다.경부 고속도로를 타고 부산에 내려가 보면 차는 분명히 남행하고 있지만 도로 지형사정으로 때로는 동쪽으로 때로는 서쪽으로 갑니다. 그렇다고 고속버스는 동쪽행은 아닙니다. 결국 차는 남행해서 부산까지 가고 말입니다. 이 땅위에서도 상선벌악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변함없는 뜻이지만 때로는 일시적으로 악인이 흥왕하고 오히려 의인이 고난을 당하는 것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원성없는 흥왕을 바라지 말 것이요, 일시적인 고난 역시 성도들이 인내로써 견디어야 할 것입니다.

2. 하나님 말씀 앞에 교만한 자는 교만을 버릴 것입니다 (1) 중요한 과실을 지적하십니다. 1) 교만해지는 것이 우리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입니다.그래서 인류의 첫 선조가 여기에 떨어졌고 그 결과 우리도 그 과실을 상속받는 것입니다. 2) 이 자만은 여러 형태를 가집니다. 허탈한 습관들이 남아 있어서 여러 가지 생각들이 즉시에 교만해 버립니다. 3) 모든 경우에서 교만은 분별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우리의 봉사자가 되셨고 우리를 보호하시는데 그의 시간을 채웠습니다. (2) 겸손할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1) 실제로 의로운 사람은 진실로 겸손한 사람입니다. 2) 겸손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감히 의심하지 않고 절대적인 신앙으로 그의 말씀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3) 그의 믿음이 고난 아래에서도 살아남도록 그를 지키십니다. 또 영적 생활의 특권과 즐거움 속으로 그를 이끄십니다. 4) 그의 생명은 고난을 극복하고 영원한 생명으로 발전합니다.전국으로 향한 첫 단계는 겸손입니다. 그러나 지옥으로 향한 첫 단계는 교만입니다. 교만은 복음을 어리석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복음이 교만을 어리석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영적인 빈곤은 그리스도가 그의 은혜의 부요를 채우는 가방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은혜로 채우기 전에 먼저 자신을 비워야 합니다. 옷 입기 전에 먼저 상처를 발라야 하며 새생명 얻기 전에 죽어가야 합니다. 이 거룩한 영광중에 부활하기 전에 장사되어져야 합니다.

3.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중대한 교훈은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합니다이와 같이 하나님의 계시는 어느 정도 회답이 되었습니다만 하박국의 마음속이 시원치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악인의 번영이 잠시요, 의인의 고생도 잠시이지만 왜 하필이면 잠깐이라도 그런 억울한 일을 하나님은 용납하십니까 하는 것입니다. 그런 임시적 역경과 고통 중에서 얻어지는 것이 무엇입니까4절에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입니다. 선한 자에게 창성을 축복하는 것은 좋으나 의인이라도 창성할 때 그 신앙이 태만해지고 세속주의에 기울어지기 쉬우므로, 임시적이나마 어려운 고비가 있을 때, 의인의 믿음은 밝아지고 교회는 깨끗해지는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하여 또한 우리 신앙생활을 통해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순수한 신앙의 열매를 원하셔서 가끔 교회가 속화될 위험이 있을 때 이런 “악인의 왕성”,“의인의 고난” 같은 임시적인 기현상을 용납하신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벧전 1:7에 “연단된 믿음은 불로 연단된 금보다 더 귀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1톤의 바위에서 2그램의 금성분이 있으면 그 돌을 금광석이라고 부릅니다. 이 금광석이 뜨거운 불에 녹아 불순물 돌 찌꺼기가 다 녹아 없어지면 마지막에 순금만이 남는다 합니다. 이렇게 금은 채취되는 것입니다. 1톤의 2그램은 50만 분의 1입니다. 성도의 믿음이 이렇게 금 같이 귀하다는 말입니다. 1톤의 2그램의 금이 있으면 금광석이라 하듯이 겨자씨 보다 더 작은 믿음이 우리들에게 있기에 성도라고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시는 것입니다.본문에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고 했습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처럼, 얻지 못할 것을 얻은 것이나 다름없이 사는 생활입니다. 이론이 필요없이 타산할 여지없이 온전히 신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우리는 악인이 흥왕하는 것을 보고 동요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다가오는 불의한 압제에 굴복할 이유도 없습니다. 이 모든 사실을 볼 때마다, 당할 때마다 우리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믿음을 더욱 깨끗이 하며 “오직 믿음”에 사는 것이 우리의 할 일입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 말씀은 하박국 선지자 고민을 통하여 얻은 큰 진리였고 후일에 사도 바울을 통해서 우리 기독교의 대강령으로 주었고(롬 1:7), 또 다시 이 말씀은 우리 교회가 로마 교회의 외형주의로 타락의 위기에 처했을 때 마틴 루터를 통해 혁신을 일으켜 우리 신교의 대강령이 되었습니다.이처럼 우리의 믿음이 약해지고 교회가 자기 구실을 못할 때마다 성도의 가슴을 각성시켜 주는 영원히 살아있는 교훈은 바로 이 말씀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살리라.” 이 역사적인 교훈이 우리의 마음을 각성시키며 위로하며 고무하여 새 능력으로 옷 입혀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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