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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꿀보다 더 단 하나님의 말씀 (겔 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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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은 패역한 족속 이스라엘에게 보냄을 받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먹으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그 말씀은 겔 2:8-10에 나오는 두루마리 책이 였습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데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에스겔은 순종하여 그 두루마리책을 받아 먹었습니다. 그런데 달기가 꿀같더라 했습니다. 본문에 “내게 먹이시며”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선지자가 순전히 피동적 자세로 계시를 받음에 대하여 말하여 줍니다. “내가 입을 벌리니”라는 말씀까지도 하나님께서 하여 주시는 것으로 표현합니다. 두루마리 책을 먹는 체험은 에스겔에게 있어서 계시의 환상 중에서 된 일이니 그 먹은 책은 물체로 된 것은 아니였습니다. 3절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주는 이 두루마리로 네 배에 넣으며 네 창자에 채우라 하시기에 내가 먹으니 그것이 내 입에서 달기가 꿀 같더라”고 했습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은 꿀보다 더 답니다 에스겔이 심령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먹으니 그 말씀이 꿀 같이 달았습니다. 계 10:10에는 말씀을 먹으니 입에서는 꿀 같이 달고 배에서는 쓰다고 했습니다. 먹을 때는 단 맛이 나고 먹은 후에 배에서는 써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먹을 때에 단 맛이 없으면 심령이 죽은 상태입니다. 말씀이 꿀과 같이 달 때가 심령이 깨여 있고 영으로 사는 때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배울 때 꿀보다 달고 저을 때 단 맛이 나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할 때 단 맛이 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을 때는 심령이 병든 때이므로 즉시 회개하여야 합니다. 말씀의 단 맛이 없는 것은 성도가 육신에 속하고 세상에 빠진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거기에서 나와 영적 세계에 들어가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즉 처음 믿음, 처음 사랑을 다시 찾으려고 회개하며 애를 써야 합니다. 시 119:102에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진실로 주의 말씀을 깨달은 자는 이 세상에서 말씀보다 더 귀한 것은 없고 더 위대한 것은 없음을 압니다. 세상의 철학이나 종교가 추구하는 모든 사상은 인간의 행복이 어디에서 오는가를 논의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사상이 진정한 인생의 행복에 해답을 주지는 못합니다. 인간을 자유케하고 행복케하는 진리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뿐이라는 것을 에스겔은 체험적 고백을 한 것입니다. 우리도 에스겔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송이꿀보다 더 달다 라는 체험을 다가지시기를 기원합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을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입니다 시 19:9-10에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의로우니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라고 했습니다. 금은 귀한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이든지 귀한 것을 말할 때는 금을 기준으로 말합니다. 그래서 금같다 하던지, 금보다 더 귀하다고 합니다. 금은 불변성입니다. 금은 세계 어느 곳에 가던지 통화의 단위가 됩니다. 그래서 금은 어디서나 통용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금보다 더 귀한 것이 있는데 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 있다고 했습니다. 곧 하나님 말씀입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사람에 게 지혜를 줍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책입니다. 성경을 사랑하는 자녀에게 교육하는데 아주 좋은 교과서가 됩니다. 성 경을 보는 자 세상 모든 근심두려움을 없이 해 줍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경외하게 합니다. 성경은 성경을 저는 자에 게 그 인생 집을 반석 위에 세워 놓습니다. (2) 성경은 모든 사람에게 기쁨을 줍니다. 성경을 보고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마음에 기쁨의 샘이 되어 기쁨이 항상 흘러 나습니다. 그러나 금은 우리에게 이런 기쁨을 주지 못합니다. 정말 세상을 기쁨으로 사는 자는 금을 소유한 자가 아니라 하나님 말씀을 읽고 그 말씀대로 사는 자일 것입니다. (3) 하나님 말씀은 영안을 줍니다. 성경을 읽는 자만이 사람의 사는 목적이 하나님 영광위함인 줄 깨닫게 됩니다. 여호와의 말씀은 우리의 영의 눈을 밝게해 줍니다. 그리하여 죄와 허물들을 발견하시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여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를 깊숙히 만나고 싶습니까 하나님 말씀을 사모하십시오.

3. 하나님 말씀이 배에서는 쓰게도 됩니다 말씀을 먹으니 배에서는 쓰다는 것은 성경 말씀을 받은 후에 속에 고통이 오는 것을 가리킵니다. 하나님 말씀을 참으로 받으면 그 말씀에 비추어 자기 자신을 너무 부족하고 그 말씀대로 살지 못한 것이 생각나서 원통하고 괴로운 것을 느끼게 됩니다. 성경 말씀을 참으로 받으면 회개하느라고 진액이 다 마르고 뼈가 쇠잔해지며 속에 있는 죄와 더불어 싸우느라고 고통이 습니다. 우리의 심령에는 부패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내 심령에 받아지면 그 말씀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심령의 부패성과 싸워야 합니다. 그러한 부패성과 더불어 싸우느라고 쓴 고통이 오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그 말씀대로 실천하느라고 고난을 당합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면 세상이 거슬리므로 고난을 당합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죽지 아니하면 말씀대로 나갈 수 없습니다. 이와같이 성도가 입에서는 달고 배에서는 쓴 말씀을 날마다 먹어야 삽니다. 계속 달기만 하면 영적 생명이 살아나지 못합니다. 요즘 교회들이 교인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먹일 때 입에서도 달고 배에서도 달게 해줍니다. 복 받는 것만 가르치고 주를 위하여 고난받는 것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이는 농사짓는 데 수고는 가르쳐 주지 않고 먹는 것만 가르쳐 주는 것과 같습니다. 교회에서 달콤한 말, 귀에 즐거운 말만 가르쳐 주는 것과 같습니다. 교회에서 입에 달콤한 말 귀에 즐거운 말만 가르치면 사람은 많이 모이나 그것은 심령을 죽이는 것입니다. 귀에만 풍년이요, 실지로 영의 양식은 흉년입니다. 그러므로 힘이 들고 어려워도 영의 양식을 먹는 법을 가르쳐 주어야 생명이 살 수 있습니다. 예수를 바로 믿으려면 십자가를 져야 하고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누구든지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요 12:25)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위하여 육신의 생명을 죽음에 내어 주는 영이 삽니다. 이것이 어려운 일이요 배에서 쓴 것입니다. 그러나 주의 말씀이 송이 꿀보다 달듯이 그 소명을 다할 때 오는 기쁨 또한 꿀보다 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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