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서로 용서하라 (엡 04:31-32)

첨부 1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용서하라는 것이 주제로 되어 있습니다. 오늘은 이 용서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도록 합시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서로 형제간에 용서해 주는 것은 우리 성도들이 마땅히 지킬 도리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 죄 사함을 받는 까닭입니다. 마태복음 18장에 어떤 종에게 일만 달란트 빚진 것을 탕감해 주었는데 이렇게 많은 빚을 탕감 받은 종이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사람을 탕감해 주지 않은 까닭으로 주인이 노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혹시 이런 사람이 아닙니까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값으로 칠 수 없는 큰 죄를 탕감 받았으면서 우리의 형제가 범한 사소한 잘못을 용서 못하지나 않습니까 내가 사함 받은바 그 죄악에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런 까닭으로 우리는 먼저 하나님께 많은 죄를 용서받았으니 형제간에 여간한 죄라도 용서해 주는 것이 마땅히 우리 믿는 사람의 당연한 의무인 것입니다. 우리 형제의 죄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도 우리 죄를 용서하시지 아니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형제간에 죄를 사해 주는 것은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죄 사함을 받은 필수 조건, 즉 반드시 지켜야만 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주기도문을 가르치실 때 “너희가 형제의 죄를 용서하지 않으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같이 하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분명히 가르쳐 주신 것은 내가 내 형제의 죄를 용서해주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도 우리 죄를 용서해주지 아니하시는 까닭으로 내 형제의 죄를 용서해 주는 것이 내가 죄 사함을 받는 필수 조건임을 분명하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남의 죄를 용서해주지 아니하면 우리 마음에 불안한 마음, 증오심, 원한, 독한 마음을 늘 품기 쉽습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 앞에 죄 사함은 고사하고 현재 내 정신생활과 육체생활에 많은 해독을 가져습니다. 우리가 어떤 대상에 대해서 혐오감을 가지고 있고 증오심, 독한 마음을 품으면 그 독한 마음이 암탉이 달걀을 품으면 병아리가 나오듯이 내 육체와 정신에 많은 해독을 가져습니다. 좋은 실례가 있습니다. 어떤 결혼한 지 얼마 안 되는 여자가 원래 건강하던 분인데 어느 날 갑자기 음식을 먹으면 곧 토해 버리고 마는 증세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의사에게 가서 진찰을 해 보았지만 아무리 의학적으로 진단해 보아도 무슨 원인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의사는 의학적으로 생리학적으로 우리가 원인을 찾을 수 없는 것이므로 심리적으로, 정신적인 어떤 원인이 있을 것으로 보이니 그 곳에서 진단을 받아 보라고 했습니다. 확실히 그 여자는 심리적인 원인을 갖고 있음을 정신병 전문 의료 병원에서 확인했습니다. 그 원인은 그 여자는 결혼 한지 얼마 되지 않았고, 결혼해서 남편과 함께 비교적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여자가 꼭 싫어하는 것이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의 시어머니였습니다. 시어머니와 따로 살고 있을 때는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며칠 전에 “내가 아무 날 너에게 간다”는 전보가 온 것입니다. 바로 이 전보가 온 이후부터 토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여자는 결국 용서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기에 병이 되고 만 것입니다. 또 어떤 부인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부인은 갑자기 자기 오른 팔이 중풍처럼 되어 들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의학적으로 조사해 보아도 원인을 알 수 없는데 역시 심리적으로 잘 조사해 보니까 자기들과 오래 살던 어머니가 있었는데 그녀는 늘 어머니와 불화했습니다. 그래서 손으로 어머니를 밀치고 때리고 싶었으나 때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심리 가운데 그만 팔을 못 쓰게 되었습니다. 마음을 고쳐 회개한 다음에야 이 여자가 오른 팔을 썼다고 합니다. 이것도 역시 마음에 품은 악심이 병이 된 경우입니다. 대개 서양에서는 우유를 많이 먹는데 그들에게는 소가 성날 때에 짠 우유를 먹으면 사람에게 해롭다고들 합니다. 우유 뿐 아니라 어머니가 초조, 불안, 성날 때 먹인 것은 그 아이에게 대단히 해롭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아기 어머니들은 조심하여야 합니다. 싸움하면서 젖먹이는 것은 아이에게도 해롭습니다. 개인이 갖는 악감이 타인에게 미치는 대표적인 피해입니다. 독한 마음을 가지면 독소가 온 몸에 분비된다고 합니다. 성을 내면 소화가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육신을 지을 때 선한 마음, 착한 마음을 가져야 육체가 건강하고 고장 나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 이웃을 위해 용서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창세기에 나타난 요셉의 용서를 회고해 봅시다. 요셉은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 애굽에 종으로 팔려갔습니다. 그러나 그의 각고의 노력으로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었습니다. 요셉이 애굽의 총리대신으로 모든 권세를 한 손에 저고 있을 때에 일찍이 옛날 자기를 미워해서 이스라엘 대상들에게 노예를 팔아넘긴 자기 형제들이 형편없는 모양으로 앞에 와서 꿇어 엎드렸습니다. 그때에 원수를 갚으려면 얼마든지 갚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원수로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따뜻하게 맞이했고 용서해주고 서로 목을 안고 울고 입을 맞추었다고 했습니다. 미국의 남북전쟁 당시입니다. 어떤 사병이 전쟁터에서 탈영했습니다. 붙잡혀서 군법회의에 넘겨져 사형 언도를 받았습니다. 이 병사는 늙으신 홀어머니를 모신 외아들입니다. 그 어머니는 어느 날 링컨 대통령을 찾아가서는 한번만 살려주면 잘 인도하겠다고 애원했습니다. 링컨 대통령은 용서한다는 특사를 내리고 싸인했습니다. 링컨 대통령과 백악관을 나오면서 그 부인은 “다른 사람들은 하는 말이 링컨은 고릴라처럼 생겼고 아주 못생긴 사람이라고 그런데다 얼굴이 아주 험악하게 생긴 사람이라고 들었는데 이번에 실상 링컨 대통령을 면대해 보니 그 사람처럼 아름답게 생긴 미남자는 없습니다”라고 하였답니다. 혹 여러분 중에 링컨 사진을 보신 분이 계실지 모르나 링컨은 미남자는 아닙니다. 그러나 죽을 사람을 용서해주는 아브라함 링컨의 얼굴은 아름답게 보였던 것입니다. 스데반은 자기를 돌로 치는 사람을 대하여 “하나님 아버지, 저들은 몰라서 그러한 죄를 짓사오니 저들의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용서의 기도를 했습니다. 순교하는 스데반은, 그의 얼굴은 천사와 같이 빛났습니다. 이처럼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해 줄 수 있는 일은 하나님의 사랑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서양 속담에 “선을 악으로 갚는 일은 악마의 일이요, 악을 악으로 갚은 일은 사람의 일이요, 악을 선으로 갚는 일은 하나님의 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에게 무한정의 용서를 받은 사람만이 참으로 이유를 용서할 수 있는 것입니다. 2차 세계대전시 터어키 군인들이 기독교도들을 맡이 죽였습니다. 터어키 군인의 한 사람인 알메냐도 어느 날 믿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서 온 식구를 다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온 식구가 다 살해를 당했지만 그 집 딸만이 요행히도 총탄이 빗나가 목숨을 건졌습니다. 당시 이 여자의 직업은 간호원이었습니다. 이 여자는 복수의 한을 품고서 자기가 근무하고 있는 병원에서 슬픔 속에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얼굴이 형편없게 된 터어키 병사가 새로이 병원에 후송되었는데 그 병사를 이 여자 간호원이 맡아 치료, 간호하게 되었습니다. 그 병사를 치료하던 간호원이 환자를 자세히 보니 자기 부모, 오빠를 죽인 원수 터어키 군인 바로 그 사람이었습니다. 그토록 이를 갈았던 복수심의 대상인 바로 그 병사를 만난 겁니다. 그 여자는 원수를 갚을 절호의 기회를 맞이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 가운데에는 번민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번민 가운데 한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 그를 위해 기도하라.” 이 여인은 결국주님의 말씀을 거부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녀는 그 병사를 위해 극진히 간호를 하였고 그 간호의 덕분으로 그 병사는 점차 회복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병사가 병이 나아 사람들을 알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기를 간호해 주던 간호원 얼굴을 자세히 보았습니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았습니다. 머리속에 남아있는 섬짓한 기억이 되살아났습니다.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습니다. “당신 부모와 오빠가 몇 달 전에 죽지 않았습니까” “네 죽었습니다.”, “누가 그를 죽인지 아십니까”, “네, 압니다.” 둘 사이에는 말없는 대화가 계속 되었습니다. 그 터어키 병사는 “당신은 왜 원수를 죽이지 않고 살려주었소”라고 침묵을 깨면서 물었습니다. “당신을 만났을 때 그런 독한 마음을 품었지요. 그러나 나는 크리스찬입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당신을 치료하니 내 마음이 기쁩니다.” 이 터어키 군인은 이 말이 끝나자 긴 시간을 흐느끼면서 조용히 말을 이었습니다. “나도 당신의 예수를 믿을 수 있을까요 나 같은 죄인이 말이요.” 우리 기독교는 바로 이렇게 “원수까지 사랑해 주고 용서해 주는 것” 입니다. 그러나 이런 주님의 말씀을 지키기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내게 손해 끼친 사람을 용서하기란 심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십시다. 주께서 우리를 용서함 같이 피차 형제를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