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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요아스 왕의 처음과 나중 (대하 24: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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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물건 값은 알면서도 죄의 값은 모르니 한심스러운 일입니다. 오늘의 범죄가 내일에 비싼 댓가를 지불한다는 사실을 알진대 하나님께 범죄 할 자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하시야 왕은 외할아버지 할머니 되시는 아합과 이세벨이 범죄하여 하나님께 징벌을 받아 죽은 것을 잘 압니다. 그리고 친아버지 여호람 왕이 하나님께 범죄하여 중병으로 창자가 다 빠져나와 2년 만에 죽은 것을 친히 보았습니다. 이러한 아하시야가 아버지 여호람을 이어 유대 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 아달랴(이세벨의 딸)은 아들 아하시야 왕을 꾀어 우상을 섬기게 했습니다. 그 죄값으로 아하시야 왕은 예후의 손에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그때 아달랴가 자기 아들 아하시야가 죽는 것을 보고 악한 마음이 발동하여 자기에게 호의가 없는 유대 왕족들을 전부 잡아 죽였습니다. 이때 여호람의 딸이요 아하시야의 누이요,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내인 여호사브앗은 그 성격이 매우 선량하여 살육당하는 왕자 중에서 1년된 갓난 아이 요아스를 빼내어 유모와 함께 성전에서 6년을 키웠습니다. 제사장 외에는 누구나 출입할 수 없는 곳입니다. 6년간을 여호야다 제사장 내외분이 보호 양육했습니다. 군인들을 시켜 3분의 1은 왕궁을, 3분의 1은 스르문을, 3분의 1은 기초문을 지키게 했습니다. "누구든지 성전에 함부로 들어가는 자는 죽일지니라" 제사장 여호야다는 엄히 명했습니다. 오늘은 요아스와의 처음과 나중을 생각합시다.

1. 요아스 왕의 싸움 (1) 가장 연소자로 왕위에 올랐습니다. 자기 아버지 아하시야는 42세에 왕위에 올랐고 요시야 왕은 8세에 즉위 했으나 요아스 왕은 겨우 7세에 왕위에 올랐습니다. 성경중 최연소자로서 왕이 되었습니다. 제사장 여호야다와 그의 아들들이 그 머리에 기름을 부었고 면류관을 씌우고 율법 책을 주었습니다. (2) 유년시절을 하나님의 성전 안에서 지냈습니다. 그동안 경건한 교육을 받았습니다. 매일 하나님 섬기는 것을 보았고 여호와 찬양하는 노래 소리를 들었고 또 율법을 배웠습니다. 모세를 구출한 누이 미리암처럼 여호야다의 여호사브앗은 요아스를 구사일생으로 6년간 성전 속에 숨겨 키웠습니다. 종교 교육에 가장 좋은 시기는 1세에서 6세까지라고 합니다. (3) 요아스 왕은 성전수리를 했습니다. 30세에 모세의 성전세를 거두어 여호와의 전을 깨끗이 수리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성전에 유공자셋이 있으니 다윗은 준비한 자요, 솔로몬은 건축한 자요, 요아스는 수리 한 자입니다. (4) 정직히 행했습니다. (5) 여호와 앞에 항상 번제를 드렸습니다. (6) 40년동안 왕위 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시므리 왕 같은 분은 불과 7일밖에 못한 왕위를 40년간이나 집정했습니다. 여호야다가 생존한 때 전반기 인생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얼마나 화려하게 보냈는지 모릅니다.

2. 요아스의 성품과 치세 외적인 행위및 국가의 통치에 있어서 그 출발은 훌륭하였습니다. 그러나 정직한 통치가 자신의 자작된 원리들 및 진지한 확신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그의 보호자나 스승에게 연유한 것임이 역사를 통해서 분명히 나타나 있습니다. (1) 그의 신앙의 불안정함 1) 그는 억제를 받고 있는 동안에는 하나님께 대해서 열성적이었습니다. 4절에 "요아스가 여호와의 전을 중수할 뜻을 두고" 그러나 그 열성이 사라졌습니다. 태양이 질 때 그 태양과 더불어 반사된 찬란함이 사라졌습니다. 2) 억제가 사라졌을 때 그는 타락하였습니다. 그는 여호야다의 지혜로운 권고와 신앙심에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그 버팀목이 넘어졌을 때 그도 함께 넘어졌습니다. 자신의 내떤 속에 뿌리를 갖지 않았고 자신의 힘에 의존할 수도 없었으므로 그는 홀로 설 수 없었습니다. 환경은 그를 그답게 만들어 줄 원리가 아니었습니다. 환경의 변화가 일어났을 때 그도 변하였습니다. 그의 신앙은 일시적이었고 피상적이었습니다. (2) 그의 치세의 영광과 수치 한편으로는 분명히 영광스러운 것이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분명히 수치스러웠던 영광과 수치가 뒤섞인 치세였습니다. 1) 자랑할만한 개혁:그는 성전을 재건하여 복원시켰습니다. 그는 성전의 질서와 예배를 확립함으로 국가적인 추문을 제거하였습니다. 그는 나태하게 일하는 직원을 책망했고 마침내 성전을 조상들에 의해서 남겨진 그대로 장엄하고 위엄있게 다시 드러내게 되려습니다. 2) 수치스러운 범죄입니다. 요아스는 믿음의 배를 파선시켰을 뿐만 아니라 10년 내에 성전의 복원자들은 우상숭배자들이 되었습니다. 여호야다의 피보호자는 그의 아들의 살인자였습니다. 시작 무렵의 뛰어난 후견인의 영향하의 치세는 수치와 전쟁으로 끝을 맺었습니다.

3. 요아스 왕의 나중 (1) 여호와를 버리고 우상을 섬겼습니다. 제사장 여호야다가 130세에 세상을 떠나고 보니 유대 방백들이 와서 왕께 절을 했습니다. 심지가 좋지 못한 왕은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아세라 목상을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2) 의인 스가랴를 돌로 쳐 죽였습니다. 신의 감동을 받은 스가랴가 백성 앞에 높이 서서 말했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여 스스로 형통치 못하게 하느냐 너희가 여호와를 버린고로 여호와께서도 너희를 버리셨느니라." 이 말을 들은 요아스 왕은 명령을 했습니다. "성전 뜰안에서 돌로 쳐 죽이니라."해서 의인 스가랴를 쳐죽였습니다. (3) 요아스는 은혜를 모르는 악한 왕입니다. 요아스는 하나님의 은혜와 제사장 여호야다의 은혜를 완전히 잊어버린 왕입니다. 이세벨의 딸 아달랴가 유대 왕자들을 전멸시킬 때 누가 살펴주었습니까 제사장 여호야다와 그의 아내가 유도를 두고 성전 안에서 한 살의 피덩어리 때부터 양육했습니다. 누가 요아스가 7세 때 그의 머리에 기름을 부어 유대 왕으로 세웠습니까 제사장 여호야다와 그의 아들들입니다. 누가 결혼시켜 주었습니까 제사장 여호야다입니다. 누구의 뒷받침으로 성전 수리를 끝냈으며 누구의 믿음의 힘으로 40년을 예루살렘에서 왕으로 지낼 수 있었습니까 제사장 여호야다와 그의 아들들의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신앙의 덕분이었습니다. 이제 요아스 말년에 하나님을 떠나고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성전 뜰 안에서 돌로 쳐 죽였습니다. 이중적인 배신입니다. 하나님께 배신이요 은인에 대한 배신입니다. 스가랴는 죽으면서 "여호와는 감찰하시고 신원하여 주옵소서"라고 마지막 기도를 드렸습니다. 기가 막히는 기도입니다. 아라비아 격언에 "네게 그늘을 준 나무를 자르지 말라"고 했습니다. 동양에는 "배은망덕"이란 말도 있습니다. 세익스피어는 "불어라 눈보라치는 폭풍아 너는 배은망덕한 인간보다 사납지는 않다"고 말했습니다. 가룟 유다의 죄가 큰 것은 은혜를 배반하여 주님을 판 죄 때문입니다. (4) 아람 왕 하사엘에게 여호와의 성물을 주었습니다. 스가랴를 죽인지 만 1년 만에 하나님께서 보낸 원수 아람 왕 하사엘이 예루살렘에 올라 왔습니다. 이때 요아스 왕은 역대의 왕들과 자기가 성전에 바쳤던 성물인 금과 은을 아람 왕에게 모두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성물을 자기 마음대로 원수에게 주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성물을 전쟁시 뇌물로 쓰라고 백성들이 헌물한 것이 아닙니다. 한편 그가 전쟁의 상처를 크게 안고 침상에 누워있을 때 그의 신복들이 모반하여 하나님을 떠나고 은인 여호야다를 저버린 요아스 왕을 쳐죽이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그는 시작은 잘했으나 나중 인생은 실패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하기를 갈 3:3에 "너희들이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고 했습니다. (5) 그의 생의 비참한 종말 25절에 "다윗성에 장사하였으나 열왕의 묘실에는 장사하지 아니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아들의 살해자가 그에 대한 그의 기억을 흉악하고 수치스럽게 한 그 아비와 함께 잠드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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