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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죄에 대한 책망 (호 12: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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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에브라임과 여호와(7-10절) 에브라임을 다루는 여호와의 교훈을 철저히 추진시키기 위해서 또 다시 이스라엘의 특징적 개성이 이용되었습니다. 7절에 ‘상고’란 말은 ‘가나안’또는 ‘가나안 사람’이라는 히브리 말을 제멋대로 번역한 말입니다. 고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상업군주였던 솔로몬시대 이래 가나안에 살던 이스라엘의 상업적 관심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행위는 못된 상인의 불공정한 저울질에 비교되었습니다. ‘거짓 저울’과 ‘사취하려는’ 속셈은 서로 따라다니게 마련입니다. 이것은 둘 다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사람들에게 신랄한 비난을 받았습니다. 공정하고 올바른 저울을 사용하라는 요구는 계약에 충성하는 요건의 하나하나로서 누차 강조되었던 것입니다. 그 상인은 금융업자이기도하였습니다. 저울을 속이는 일은 간교한 금전 취급이나 의심스러운 금융정책과도 일맥 상통하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이런 행위는 적어도 어떤 부류의 사람들에게는 부와 재산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대상의 통로를 지키고 앉아서 당시의 이방 살인들로부터 통행세를 걷어 들이는 이권을 쥐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호세아는 묻기를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었느냐 하였습니다. 분명히 이스라엘이 애써 얻은 모든 자랑스러운 재물도 “그들이 짊어지고 있는 죄악을 상살(相殺) 해줄만한 것”은 못되었습니다(8절). 출 20장과 신 5장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 계약”이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부와 힘의 진정한 근원은 계약에 있으며 그들의 자기 과장이나 부당한 이익의 추구에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의 율법과 경건한 제사장들의 가르침을 가지고 있었고 선지자들의 직접적인 인도를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계약과 축복의 참된 근원에 대하여 무지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축복을 그들은 그들 자신의 재간이나 바알의 소치로 돌렸던 것입니다. 에브라임은 제조 석판의 율법을 거스려 부정을 범했다고 책망 받습니다. 책망 받는 죄는 상고로서 거짓 저울을 사용함입니다. (1) 에브라임은 아주 많은 자만심과 즐거움을 가지고 속입니다. (2) 그들은 잘못을 지적 받아도 변명 할 말이 있습니다. 1) 그들은 재물이 본질적이 된다고 주장하며 2) 재물이 그들의 수고에서 나왔다고 믿고 3) 재물은 그들을 위 한 것이며 4) 재물을 자랑할 만한 것이 라고 생각하며 5) 재물을 부정 축제하는 것은 축복이지 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3) 에브라임은 자기는 좋은 평판을 유지해 왔다는 것입니다. 모든 에브라임 사람은 부지런한 사람으로 알았고 그 누구도 장사를 속이는 줄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행위를 숨겼으므로 모두 속았다는 것입니다. 그들 모두가 사기를 한 이기에 사기죄를 문제로 삼지 않았습니다.

2. 길르앗과 길갈(11절) 길르앗에 대해서는 6:8의 주해를 그리고 길갈에 대해서는 4:15의 주해를 각각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길르앗과 길갈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은 오히려 분명히 나타나 있다고 봅니다. 길르앗의 불의한 행위는 여호와를 통하여 생겨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결국 ‘헛된’대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입니다(11절). 여기의 불의한 행위란 말은 아마도 길르앗과 관련된 어떤 특별한 불법적 행위나 생각을 가리키는 것이라는 것(삼상 15:23), 길갈에서 수송아지로 제사를 드렸다는 것도 역시 지금은 우리가 알 수 없는 어떤 특별한 대상을 범주에 두고 한 말이 라고 봅니다. 본문 11절에 전제는 여호와를 섬길 목적이었으나 실제로는 백성들 자신을 그릇되게 인도하는 기만적 행사가 되어 버린 종교적 행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침략자들이 들이닥치면 그와 같은 종교적 행위는 파멸과 추방을 배교자들이 자모면케 해줄 아무런 힘도 없음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길르앗은 우상숭배자란 낙인이 찍혔습니다. “길르앗은 불의한 것이냐”이것은 놀랄만한 일이며 슬피 애곡할만한 일입니다. 길르앗은 비옥한 곳입니다. 길르앗은 변경에 위치하고 대적들의 출입이 잦은 곳이기에 특별히 하나님의 보호를 받을 필요성이 높은 지역입니다. 그런데 불의와 하나님 앞에 범죄 하므로 하나님의 보호로부터 벗어나온 것입니다. 길갈 역시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길갈에서 수송아지로 제사를 드렸고(9:15) 하나님께 반대되는 이방신이나 아니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위해 길갈에 세운 제단이 씨 뿌릴 밭이 랑에 쌓인 돌무더기나 인분더미 같았습니다(8:11). 하나님은 길르앗에서 그들의 조상 야곱을 라반의 분노로부터 보호하셨습니다. 그런데 너희는 거기서 불의를 행하려느냐고 책망하신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예언자들과 이스라엘의 응답(12-14절) 야곱은 아내를 얻기 인하여(창 29-31장) 라반의 양을 쳤습니다. 야곱은 라헬과 레아를 얻기 위해 라반을 충실하게 섬겼고 그 집안의 재산을 잘 돌봐주었습니다. 그리하여 그 집안의 재산은 점점 증가하게 된 것입니다. 호세아는 여호와와 이스라엘의 관계성을 이스라엘을 여호와의 아내라고 본 것입니다. 야곱은 그의 아내를 위해서 양을 친 것처럼 여호와는 그의 아내인 이스라엘을 돌보셨던 것입니다 그는 모세를 보내고 광야에서 인도하여 가나안에 정착케 했으며 계속 이스라엘을 돌보시고 보호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들을 먹이고 인도하신 그 손을 거절하였습니다. 이는 양이 그의 목자를 아내가 그의 남편을 그리고 자식이 그의 아비를 저버린 것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1)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신함은 하나님께 지극히 역겨운 죄였습니다. (2) 이 죄는 필연코 에브라임을 파멸시킬 죄였습니다. 1) 하나님은 그간의 추락된 하나님의 명예를 회복할 것입니다. 2) 하나님은 그의 몰수된 생명을 탈취 할 것입니다. 삼상 2:30에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는 말씀대로 에브라임에게 수치를 돌리실 것입니다. 수치스러운 죄에는 수치스러운 형벌이 뒤 따른다는데 주목합시다. (3) 이스라엘에게 배은망덕의 민족이라는 정죄를 내릴 것입니다. 그들에게 다음 몇 가지를 환기시켜 기억케 하십니다. 그리하여 그들 스스로가 하나님에 게 부끄러운 죄를 지었음을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1) 하나님은 그들을 비천한데서 끌어 올리셨습니다. 2) 하나님은 그들을 불행에서 구출하였고 빈궁과 종살이로부터 건지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오늘의 모습으로 향상시켰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으며 하나님은 목자가 양떼를 보살피듯이 이스라엘을 보호해 주었으며 지금까지 끊임없이 선지자를 보내주시고 보호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이 놀라우신 사랑을 저버리고 배은망덕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능멸하며 핍박하였습니다. (4) 이스라엘은 비록 죄와 진노 가운데 있지만, 하나님의 자비를 기억해야 합니다. 1) 그들은 비록 부자가 되고 재물을 얻었다고 하나,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자기들이 장막 상태에 있을 뿐이며 세상 재물로는 영원한 도성을 얻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2) 그들은 하나님 안에서 기뻐할만한 이유를 얻게 되며 공중의식에서 그렇게 행할 기회를 얻게 될 것입니다. 장막절은 유대인들이 바벨론에서 귀환한 뒤에 지킨 명절입니다(스 3:4). 3) 다른 여러 약속처럼 이것도 복음의 은혜에서 완전히 성취되었습니다. 복음의 은혜는 천국을 향한 도상의 신자들에게 장막을 제공하여 기뻐할 재료를 공급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 기쁨은 거룩한 기쁨이요, 하나님 안에서 얻는 기쁨이니 장막절에도 그러했습니다(슥 1

4.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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