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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경의 중심은 그리스도 (요 05:3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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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은 그 중심을 알지 못하면 이해할 수 없습니다. 중심을 떠나서의 사 물은 굽게 보이기 마련입니다. 성경 육십 육권은 하나의 완비된 글로써 유기체로 볼 수 있습니다. 유기체(organism)는 그 각부가 동시에 목적이며 수단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이 유기체인 까닭에 성경의 한 부 분은 전체를 조명해줍니다. 그러나 성경은 중심이 있습니다. 그 중심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있습니다. 우리 눈을 십자가 아래에 둘 때 우리는 성 경 전체를 조명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죄 사함의 보증이며, 은혜의 샘의 약속입니다. 십자가 아래에서 모세의 십계명을 읽을 때, 십자 가 아래서 레위기를 읽을 때, 십자가 아래서 빌레몬서를 읽을 때, 십자가 아래서 계시록을 읽을 때 비로소 성서의 중심을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성서는 그리스도를 알기 위한 중심입니다. 성서의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 를 알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을 아는 것은 삶(생명)을 얻는 일입니다. 인생으로 하여금 의의있게 하는 것은 예수님을 아는 일입니다. 예수님을 알고 모르는 차이는 생과 사의 차이와 같습니다. 성경을 생명의 줄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생명의 원인인 그 독생자 예수님을 소개하는 때문인 것입니다. 성경 연구는 결국 생명을 탐구하는 것이므로 가르치는 자도 배우는 자도 불타는 열심으로서 임해야 할 것입니다. 성경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잘 설명하는 것은 십자가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성경의 해석은 십자가의 빛에서 조명되 어야 합니다.

1. 그리스도의 자기 증거 30절 말씀에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고 했고, 32절 말씀에서는 “그 증거하시는 증거가 참인줄 아노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권위를 자기 자신이 증명했습니다. 세상에서는 권위를 어떤 서적이나 전통이나 의식 중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흔히 학자들은 고서를 인용함으로써 자신의 입장을 변호합니다. 바리새인이나 유대인의 경우는 전통이나 종교의식에 권위를 두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무슨 대 서적이나 전통이나 의식 가운데서 권위를 빌려오지 아니하시고 오직 자기를 보여줌으로서 권위를 나타내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요 8:12에서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했고, 요 14:6에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고 했으며, 요 10:11에서는 “나는 선한 목자라”고 하면서 나는‥‥‥ 이라고 자신을 주어로써 소개했습니다. 또한 마 11:28에서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마 8:22에서의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케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 마 9:9의 마태에게 “나를 좇으라”, 마 16:24의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 막 1:17의 “나를 따라 오너라 너희로 사람낚는 어부 되게 하리라”는 모두 나에게 오라고 자신있게 자기를 내세웁니다. 이렇게 자신을 내세우는 것은 요 14:1에서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나를 믿으라”고 한 것이나 요 14:9의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보았거늘”이라고 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즉 예수님은 자신을 현시하신 것입니다.

2. 세례 요한의 증거이다 33절 말씀에 “요한이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또 35절에서는 “요한은 켜서 비춰는 등불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이런 요한이 숨기지 아니하고 증거하되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하였고, “나는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너희 중에 한 사람이 섰으니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들메도 풀지 못하겠노라”고 증거하였습니다. 요 1:35-36에서는 “제자에게 예수님의 다니심을 보고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증거했습니다.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세례 요한을 가리켜 주님은 밝게 비취는 등불이라고 하였습니다. 세례 요한은 주님을 위하여 등불처럼 싸늘한 지성의 메시지가 아니라 불붙는 심령으로 타오르는 메시지를 통해 사람들에게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제시하였습니다. 등불처럼 자신을 희생하면서 그는 흥해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면서 오로지 오시는 주의 길을 밝히는 사명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은 요한의 설교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요한이 듣기 좋은 말을 할 때는 주목하였고, 거북한 말을 할 때는 언제든지 버림을 받는 재미있는 소문거리였습니다. 초대교회에서는 구십 세의 사도 요한이 에베소 교회에서 설교할 힘이 없어서 부축을 받아 강단에 섰을 때 “형제들아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고 이 한 마디만을 계속 하였으나 그래도 모인 성도들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시대는 목이 터지도록 설교를 하여도 은혜가 되지 않은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3. 그리스도의 역사가 “일하심”임을 증거하였습니다 36절의 말씀에 “내게는 요한의 증거보다 더 큰 증거가 있으니 아버지께서 내게 주사 이루게 하신 역사를 나의 하는 그 역사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증거하게 하는 것이요”라고 하였습니다. 셋째 증거는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역사 자체입니다. 그것은 세례 요한의 증거보다 더 큰 증거입니다. 그리스도의 역사는 하나님께서 아들에게 위탁하사 하신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수많은 이적의 기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구약에도 있고 신약에도 있고 선지자들도 이적을 행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이적은 자기의 신성을 증거하고 자신의 사명과 인격을 신임케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요 20:31에 “부활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선지자와 사도들의 이적은 맡겨진 힘, 하나님께서 주신 위임된 힘에 의해 이적을 행하였으나 예수님은 자기 속에 있는 능력으로 이적을 행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공공연하게 마 28:18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라고 하늘의 권위와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의 이적은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이적이었습니다.

4. 하나님께서 증거했습니다 37절 말씀에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친히 나를 위하여 증거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예수님이 메시야이심을 증거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마 3:16-17에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 때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써 소리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또 요 1:18에는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고 하면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 증거하심을 밝히고 있습니다.

5. 성서가 증거하고 있습니다 39절 말씀에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 하였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고 하였습니다. 성경 중의 예언도, 역사도, 교훈도 모두 예수님께서 그리스도 되심을 증거 하고 있습니다. 복음이나 서신만이 그리스도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또는 간접으로 율법서, 시가서, 선지서에서 그리스도는 메시야이심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구약은 오시는 메시야에 대한 준비사이고 신약은 오신 그리스도의 전개사입니다. 즉 성경은 오로지 그리스도만을 증거하는 책입니다. 6. 유대인의 거부 그리스도가 메시야이심을 주님께서 친히 자증하시었고, 세례 요한이 증 거하였고, 그리스도의 이적의 역사가 이를 증거하였고, 하나님께서 친히 증거하시었으며, 유대인의 전 생활이라 할 수 있는 율법이 증거했습니다. 그러나 46-47절 말씀에 “모세를 믿었다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그러나 그의 글도 믿지 아니하거든 어찌 내 말을 믿겠느냐 하시니라”고 하는 위대하고도 위협적인 진리가 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가장 큰 특권이 되었던 바로 그것이 그들의 가장 큰 정죄가 되었습니다. 모세의 율법을 모르는 사람은 정죄 속에 있을 수 없었습니다. 유대인은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고 결국 배척하여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율법에도 그리스도께서 메시야이심을 증거하신 말씀이 얼마든지 있는데도 말입니다. 창 3:15에 최초의 메시야 예언이 “여인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밟을 것이라”고 표현되어 있고, 수많은 부분에서 그리스도에 대해 예언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특히 모세 오경은 곳곳에서 이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모세의 글을 믿지 못하고 44절 말씀처럼 바리새인들이 서로 영광만을 취한다고 하였습니다. 특권 계급으로 사람들에게 찬사를 받고 특수한 복장으로 자기들은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는 그들은 만족과 위로를 누리고 존경과 찬양과 영광을 가진 생을 산다고 기록했습니다. 그런 반면에 그들은 그리스도를 마음에 받을 자리가 없어 거절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증거하는 여러 증거를 보시고 그리스도를 나의 주로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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