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하룻밤에 망한 박넝쿨 (욘 04:5-11)

첨부 1


요나서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인간의 저항과 하나님의 구원의 결심 사이에서 벌어진 얘기입니다. 니느웨가 회개했습니다. 여기서 요나는 화가 끝까지 치밀었습니다. 니느웨가 구원받게 되는데서 오는 무서운 질투였습니다. 오늘 아침 성서가 증거 하려는 초점은 여기 있습니다. 화가 치밀은 요나는 니느웨 성 밖 동편에 초막 하나를 짓고 뜨거운 햇볕 밑에서 니느웨가 되어지는 꼴을 보려고 앉아 있을 때입니다. 이때 하나님은 ‘박 넝쿨’ 하나를 주셨다고 성서는 증언합니다. 더위와 박 넝쿨, 고통과 위로, 죽기를 간청하는 죽음과 상광과 그 가운데 넘친 위로와 기쁨 가운데 요나가 끼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틈바구니에 끼였던 요나의 마음이 우리의 마음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뜨거운 폭양에 의해 박 넝쿨을 발견하고 그늘에 의지하여 답답한 마음과 몸을 쉬고 잠시나마 위로를 받은 그 잎을 하나님께서 밑 등을 잘라서 시들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벌레를 준비해서 그 벌레로 박 넝쿨을 썩게 하여 시들게 만들었습니다. 요나가 가졌던 유일한 위로와 희망마저 하나님은 빼앗았습니다. 하나님의 숨은 뜻이 있음을 성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요나를 뒤덮어 더위를 막아주던 박 넝쿨은 요나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었습니다. 박 넝쿨은 하나께서 값없이 주신 선물입니다. 왜 이 선물을 거두어 가셨습니까 거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요나는 박 넝쿨이 자기의 것인 줄 알았습니다. 그리나 박 넝쿨을 우상화했습니다. 박 넝쿨 뒤에 계셔서 박 넝쿨을 주시기까지 사랑하시고 계시는 하나님의 뜻을 보지 아니 했을 때 박 넝쿨은 우상이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선물을 우상화하는 모든 것을 파괴하십니다.

1.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준비하셔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십니다 다윗은 시 19:1에 “하늘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궁창은 그 손으로 지으신 것을 나타러 보이도다”고 했으며, 바울은 롬 1:20에 “그 지으신 만물을 보아 하나님의 존재를 분명히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요나를 교훈하시기 위하여 박 넝쿨을 준비하신 하나님께서는 인생들을 가르치기 위하여 우주만물을 준비하였습니다. 꽃은 인생의 무상을 가르쳐 주고(벧전1:24), 개미는 나태한 인생에게 근면을 가르쳐 주며(잠 6:6-8), 메뚜기는 사회생활의 질서를 가르쳐주고(잠 30:27), 사시청청 송죽은 절개를, 청산은 침묵을 가르쳐 주며, 저 넓고 깊은 대해는 인생의 도량과 관용을, 잠자리는 라이트 형제들에게 비행기를 가르쳐 주었고, 성당에 흔들리는 등잔은 갈릴레오에게 자전, 공전의 원리를, 거북은 이순신 장군에게 철갑선을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우주만물은 어느 것 하나 교훈되지 않은 것이 없으니 자연만상에 귀를 기울이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 박 넝쿨로 인하여 기뻐하거나 성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요나는 박 넝쿨이 초막에 덮힐 때 기뻐하였습니다(4:6). 그러나 하룻밤 사이에 시들어 버리고 뜨거운 햇볕은 요나의 머리에 쬐이매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말하기를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좋겠다고 발악하면서 성을 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 박 넝쿨로 인하여 성내는 것이 합당치 않다”고 했으나 요나는 대답하기를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합당하나이다”고 항의하였습니다. 사실인즉 박 넝쿨로 인해서 요나는 기뻐하거나 성낼 바 못됩니다. 하룻밤에 났다가 망하는 박 넝쿨은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교훈하기 위하여 준비한 것인 줄 모르고 일시 서늘한 그늘이 자기를 가리운다고 그것을 인하여 기뻐하던 것처럼 이 세상에는 언제 시들지 모르는 박 넝쿨로 인하여 기뻐하는 자가 많습니다. 그러나 너를 가리우는 박 넝쿨도 언제 벌레가 씹을런지, 언제 뜨거운 동풍에 시들어 버릴지 알 수 없는 것입니다. 너 청춘의 아름다움을 자랑치 말라. 어느덧 하룻밤에 시드는 박 넝쿨을 하룻밤에 쓰러지는 박꽃 같이 되리라. 권력의 박 넝쿨을 좋아하지 마시오. 나폴레옹의 권력도 센트헤레나 고도에서 시들어 버렸고 시저의 권력도 친구의 배신 받아 하루아침에 28곳에 칼 맞아 한 줌의 흙이 되지 않았습니까 재물, 박 넝쿨을 즐기지 말라. 좀먹고 동 녹 쓸고 도적에게 빼앗길 날이 오고야 말 것입니다. 이 모두 하룻밤에 피었다가 하룻밤 사이에 시드는 박 넝쿨입니다. 또한 박 넝쿨이 시든다고 성내지도 원망도 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주셨다가 하나님께서 걷어 가시니 이로 말미암아 주시는 교훈이 무엇인가를 알아보는 것은 지혜 있는 자의 품성입니다. 박 넝쿨은 한 번 났다가 한 번 시드는 것이 정한 이치인데 이 세상 성쇄영고가 모두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망하는바 박 넝쿨 같은 것이니 박 넝쿨로 인하여 공연히 기뻐하거나 쉬이 성내지 말 것입니다.

3. 역지사지(易地思之)의 교훈 전도자의 사명은 죄인이 회개하여 구원을 얻게 함이요 전도자의 기도는 죄인에게 내리실 재앙을 내리지 않도록 간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요나는 니느웨에 가서 전도한 결과저들이 회개하는 것을 도리어 싫어하였고 하나님께서 40일 후에 내리시겠다 하시던 재앙을 내리지 않는다고 도리어 성을 내며 하나님께 화풀이를 했으니 요나가 전도자로서는 아직 미급한 점이 많으며 또 하룻밤에 자라난 박 넝쿨로 인하여 심히 기뻐하다가 하룻밤에 시들어 버린 박 넝쿨로 인하여 성내어 죽기를 구했으니 선지자로서 편협한 점이 사실입니다. 이렇게 미급하고 편협한 요나를 가르치기 위하여 하룻밤에 박 넝쿨을 자라게 하고 시들게도 하신 하나님께서 성난 요나에게 “네가 수고도 아니 하였고, 배양도 아니 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망한 이 박 넝쿨을 네가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는 좌우를 분별치 못하는 자가 12만 여명이요 육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는 것이 합당치 아니하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처지를 바꿔서 생각하라는 교훈입니다. “易地思之” 너는 수고도배양도 아니한 박 넝쿨도 그렇게 사랑하는데 내가 양육한 니느웨 백성을 어찌 내가 사랑치 않겠는가 하신 말씀입니다. 너는 한 개의 박 넝쿨도 그렇게 아끼는데 내가 어찌 여러 십만 명의 니느웨 백성을 아끼지 않겠는가 하나님의 관용과 그 사랑을 잘 표현했습니다. 요나는 ‘박 넝쿨’ 뒤에 이어지는 하나님의 구원을, 놀라운 은혜와 사랑을 보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포기하는 그 순간까지도 하나님은 그 다음을 이어가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박 넝쿨’ 하나도 네가 아꼈거든 이 큰 니느웨 성에 좌우 분별치 못하는 십이 만 명과육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 하시는 말씀에 요나는 이에 대한 아무런 대답이 없이 침묵을 지키는 것으로 요나서는 끝납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니느웨 성도 구원하시니 누구든지 그리스도 앞에 나와 회개하여 참 생명 얻는 역사가 이 나라 강토에 있기를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