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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작은 사사들-입산, 엘론, 압돈 (삿 12: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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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작은 사사 세 사람의 짧은 통치 경력을 더듬어 봅니다. 그 이름은 입산과 엘론과 압돈입니다. 입산은 7년간, 엘론은 10년, 압돈은 8년간 이스라엘을 다스렸습니다. 잠 28:2에 “ 나라는 죄가 있다면 주관자가 많아진다 ” 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선한 사람들이 채 일을 해내기도 전에 물러나게 됩니다.

1. 베들레헴 사람 입산 사사(8-10절) 입산은 입다 뒤의 사사입니다. 베들레헴 사람으로 아들 30명, 딸 30명을 둔 큰 가족의 씨족의 장이였습니다. 유대 전설에는 입산은 바로 룻의 남편 인 보아스였다고 합니다. 입산이라는 이름은 성경 본문에 나타난 바가 없습니다. 그와 연결되어 있는 베들레헴은 갈델산 근처 므길도 북쪽으로 스불론에 있는 같은 이름의 성읍입니다. 입산이 대가족장이라는 말은 그가 부자이었음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관례적인 본문, 공직이외 아무런 역사적 자료가 없습니다. 그는 60명의 자녀를 다 혼례할만한 재력이 있는 자로 베들레헴을 번성 시켰으며 그는 장수하였고 그의 영향력으로 베들레헴 성읍은 하늘의 별과 같은 영적인 씨앗을 배출하기로 되어 있는 곳으로, 베들레헴을 하나님의 도성으로 가꾼 것입니다. 그는 아들 30명의 혼례를 위해 딸 30명을 타국으로 시집을 보내고, 또한 그 교환으로 타국에서 아들을 위해 여자30명을 데려왔습니다. 유대인들은 아버지로서 아들에게 해주어야 할 일 세 가지가 있습니다다. (1) 아들로 하여금 율법을 읽을 수 있도록 글을 가르쳐 주었고, (2) 아들에게 일거리를 마련해 주어야 하고, (3) 아내를 구해 주어야 합니다. 입산의 가족과 그의 바로 윗 사사인 입다 가족 사이에는 얼마나 큰 차이 가 있습니까 입산은 60명의 자식을 모두 결혼시켰으나, 입다는 단 하나의 무남독녀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 딸을 결혼도 시키지 못하다가 아버지 입다 의 경솔한 서원으로 독녀 딸을 죽여 번제로 드렸던 것 아닙니까 입산은 번영된 그의 가족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돌렸던 것입니다. 입산은 죽어서 베들레헴에 장사했습니다.

2. 스불론의 사람 엘론 사사(11-12절) 스불론 족장으로 작은 사사 중 하나로 입산 사사의 후계자입니다. 엘론 이라는 말은 ‘ 데레빈 나무 ’ 라는 뜻입니다. 10년간 이 이스라엘을 다스렸습니다. 성경에 엘론은 10년간 이스라엘을 다스렸다는 기록외는 역사 자료가 없습니다. 엘론 사사가 통치시작하면서 그 때부터 블레셋 사람들의 40년간의 속박이 이미 시작되었고 그 때 즈음에 삼손이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엘론은 이스라엘 북쪽에서 다스리고 있었기 때문에 블레셋 사람들이 가끔 국경을 넘겨다 보며 침입할 기회를 노렸을 것입니다.

3. 비라돈 사람, 압돈 사사(13-15절) 비라돈 세겜 서쪽 10km지점에 있으며 오늘에는 ‘ 페라하타 ’ 라고 부리는 지점입니다. 압돈이라는 뜻은 ‘ 하인 ’ 이라는 뜻입니다. 에브라임 씨족장으로 삼손의 바로 선우인 사사로서 작은 사사로서는 마지막 사사입니다. 압돈의 자녀의 수와 나귀의 수는 그의 부의 정도를 말합니다. 압돈은 그 이름이 성경 다른 곳에도 나타납니다(대상 8:23). 그는 대상 27:14에 의하면 에브라임에 있었던 비라돈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의 가족의 크기와 아들과 손자들이 재산의 척도가 됩니다. 압돈으로 인해서 여호수아 시대 이래로 별 주목을 끌지 못하던 에브라임 사람들이 명성을 다시 얻기 시작했습니다. 아비멜렉으로 인해서 세겜 사람들에게 에브라임 지파에 상당한 수치가 되었습니다. 압돈은 많은 후손들로도 유명 했습니다. 그는 아들 40명, 손자 30명을 거느리고 있었으며 그들이 다 성장할 때까지 살았습니다. 그는 관직에서 일하는 자로서, 혹은 뛰여난 인물로서 인정을 받아 모두 어린 나귀 70마리를 탈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압돈 시대부터 블래셋 군사가 이스라엘을 쳐들어 왔기에 평화를 보지 못했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압돈은 국가 안보보다는 자신의 영달과 자기 이름이 후대에 길이 남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여, 전례대로 사사들 기념비를 세워 자기의 치세 업적만은 남기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업적은 초라하여 아무것도 기념비에 쓸 것이 없었습니다. 이것은 오히려 세속적인 영광을 높이 평가하려는 것이었으며 그러한 자만은 헛된 것 이었습니다 다. 그들의 명예는 먼지처럼 사라지고 그들은 모두 평범하게 죽었습니다. 세 사사는 이름만의 사사였고, 초라한 발자취만 남겼을 뿐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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