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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자 (창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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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불러 모으신 백성이 늘 담대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빌립이 한 한번은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예수님 하나님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십시오 그러면 만족하겠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의 대답은 이러하였습니다. 요 14:8-11에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나는 아버지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있는 것을 믿으라”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한 사람은 하나님을 발견한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사람은 하나님과 함께 사는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임마누엘 “우리들과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 십니다. 어느 날 80세나 되는 나이 많은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200만이나 되는 이스라엘 백성을 강대국 애굽으로부터 인도하여 내라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출해 내고야 말았습니다. 모세가 위대한 지도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가진 위대한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모세는 출 3:12에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모든 일을 수행하였습니다. 그리하였기에 그는 그 일을 완수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 또한 하나님과 항상 함께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의 교훈을 잘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을 간절히 사모해야 합니다. 성도가 주님을 사모하는 데는 몇 가지 증거가 있습니다. 첫째, 주의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시 110:131). 둘째, 하나님의 전을 사모해야 합니다(대상 20:3). 세째,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해야 합니다(딤후 4:8). 네째, 선한 일을 사모해야 합니다(딤전 3:1). 다섯째, 신앙의 동지를 사모해야 합니다(고후 9:16). 여섯째, 본향을 사모해야 합니다(히 11:16). 일곱째, 주의 구원을 사모해야 합니다(시 70:4). 여덟째, 신령한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고전 14:12). 아홉째, 주의 이름을 사모해야 합니다(사 26:8).

1. 우리는 하나님과 가까이하고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해야 할 것 입니다

 내가 세상에 사는 동안에 다른 어떤 것보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이라고 저들에게 불려질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하늘 위에서나 땅 위에서나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해 주시는 것 이상의 더 큰 축복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곧 이런 큰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가 그랄에 우거하는 동안에도 본주민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는 자라는 고백을 들었던 사실이 있습니다. 그랄 왕 아비멜렉이 이런 고백을 하게 된 이면에는 아마도 사라를 자기의 처첩으로 삼으려던 때에 하나님이 엄중히 제지하셨던 일이며, 백세 노령의 아브라함이 득남하는 등 희귀한 일들을 종종 보았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자라면 세상 사람과는 어딘가 다른 점이 있어야 합니다. 내 생활이 이방인과 아무 것도 다를 것이 없고, 내 의가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의만도 못하면 하나님과 함께 하는 자라는 증거를 저들에게 보여주지도 못하고 또 그런 인정을 받지도 못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자에 대해서는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에게 한 것처럼 후대해 주어야 합니다. 그 이유는 ① 하나님께서도 함께 하시기 때문이요, ②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자를 후대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후대하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얼마나 많이 하나님의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으며 아비멜렉 만큼의 윤리도 지니지 못한 짓들을 자행하고 있습니까? 특히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이들에게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이 더 많은 냉대를 받는 경우가 허다한데 이것은 속히 없어져야 할 것들입니다.

2.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은 남을 괴롭히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가 당신을 후대한 것처럼 당신도 우리를 선대하소서”라고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에게 요청했듯이 오늘도 사회인들이 그리스도인들에게 똑같은 요청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귀를 잃은 사울이 사무엘 선지자를 찾은 것처럼, 문둥이 장관 나아만이 엘리사 선지자를 찾은 것처럼, 사람들은 답답할 때 하나님의 사람을 찾아와 지도를 받으려 합니다. 이 때 이런 사람에게 해를 입히는 것은 영적인 살인이며 따라서 성호 모독죄입니다. 오늘 날 하나님의 사람을 자칭하는 자 중에 남을 골탕먹이는 자들이 없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이라면 차라리 피해자일 수는 있어도 누구에게나 가해자일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을 이웃과도 함께 하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다른 사람의 허물을 용서해 주고 그 영혼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이런 자를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축복하신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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