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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는 가라 (출 0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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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연을 알고 배우고 정복했다고 말합니다. 또한 우주를 정복하겠다고 지금 한창입니다. 그러나 정말 알아야 할 가장 소중한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입니다. 자기 자신을 모르는채로 무엇을 정복한다는 것은 실로 어리석은 행위입니다. 우리 기독교인은 모두 사명자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우리 성도들을 향하여 “나는 죄악 세상에 종된 자를 구원키 위하여 너를 보낸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보내심을 받은 자” 즉 “사도(Apostle)로서의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1. 자신을 알고 가라

 자기를 안다는 것은 모든 것 중에 가장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지식 중에 가장 귀한 지식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자기가 자기를 안다는 것은 일생의 과제이기도 합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있습니다. 주로 밖의 일을 많이 아는 사람들이 안의 일에 소홀하고 특별히 자기 자신에 대해서 모르고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이 큰 실수의 원인이 됩니다. 이런 사람들은 만용을 부릴 때가 많습니다. 자기를 바로 알 때에 우리는 겸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 겸손은 가장 강한 것이고 중요한 것입니다. 모세는 40년 동안 궁중에서 성장했습니다. 애굽의 모든 문물을 배웠고 익혔습니다. 그리고 왕족으로서 갖추어야 할 모든 지식과 경험을 쌓은 인재였습니다. 하면 된다는 자신감에 넘쳤습니다. 혈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80세 되도록 광야에서 시련을 겪은 모세는 정말 죽었습니다. 용기도 자신도 의분도 야망도 다 죽었습니다. 그에게 기대할 것이 없는 비참한 인간으로 되어 버렸습니다. 하필이면 이같이 형편없을 때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만나셨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보낼 만한 사람을 보내소서” 하며 거절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여호와께로부터 중대한 사명을 받는 순간은 모두가 겸손한 자세로써 공포에 떨며 송구한 마음으로 사명을 받았던 사례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사야 경우(사 6:1-8), 예레미야 경우(렘 1:6-10), 그리고 기드온이나 입다의 경우(삭 6:15-18, 11:29-31)가 다 그랬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결코 사람의 지혜나 수단 방법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오직 위에서 주시는 바 성령의 능력을 받음으로써만 가능한 것인 만큼 우리는 각자가 자신을 바로 인식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2. 여호와를 알고 가라

 모세는 하나님에게 내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어 가면 “누가 보냈느뇨?” 라고 물을진대 그 때 무엇이라 답하리요 라고 물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이름을 묻는 것입니다. 신앙에 있어서 중요한 문제는 대상자에 대한 바른 지식입니다. 하나님의 역군되는 자는 자신의 부족하고 무능한 사실을 깨닫는 자아부정과 더불어 자기를 부르시는 하나님을 바로 아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과거 모세는 히브리인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물론 믿었습니다. 히브리인은 민족의 조상 아브라함 때부터 한 분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신봉했고 그 신앙 때문에 본향을 떠나 사막으로 유리하였으며, 그 신앙 때문에 고난을 받은 것입니다. 이제 모세는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라는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오랜 전승에 젖어 의식적으로만 알던 하나님을 밝고 구체적으로 알려는 것입니다. 나아가 이방의 우상 숭배자 신관과의 차이도 밝히려는 것입니다. 실로 하나님을 알되 바로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릇된 신관이나 신앙은 오히려 인류에게 해독을 주기 때문입니다 또 반드시 우상 숭배나 다신교 같은데 빠지지 않았다 해도 그리스도교의 이름 아래에서도 얼마든지 미신적인 요소를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믿는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바로 깨닫지 못하면 결과적으로 우상 숭배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당신의 이름이 무엇이니이까?” 라는 모세의 질문에 대해 하나님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말이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를 계시하신 것으로 대단히 중요한 성귀가 된 것입니다. 여호와라는 히브리어는 “존재한다”는 말에서 난 것으로 히브리인은 이 이름을 신성문자(神聖文字)로 취급하여 함부로 부르지도 않고 쓰지도 않습니다. “스스로 존재하는 자”는 “지음을 받아 존재하는 피조물”과 상대되는 창조자를 가리킵니다. 이는 만물의 창조자시요, 제일 원인을 가리킵니다. 모세는 이런 하나님을 이제 확실히 알게 된 것입니다.

 3. 사탄의 정체를 알고 가라

 애굽의 바로야 말로 사탄을 상징합니다. 무엇보다도 그의 잔악성과 포악성은 사탄의 그림자로 묘사되기에 적절한 면을 보여줍니다. 사탄의 성격과 정체를 잘 아는 여호와께서는 모세로 하여금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려 하오니 사흘길쯤 광야로 가기를 허락하소서” 라고 바로에게 말할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물론 이스라엘의 출애굽의 목적은 가나안까지 이르는 것이지만 여기서는 “광야로 가서 희생 드리려 하니 허락하소서” 라고 했습니다. 거짓말하라는 뜻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이는 다만 바로의 잔악성, 완악성을 감안한 나머지 점진적으로 출애굽을 탈출하려는 의도였습니다. 의미를 함축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사탄의 성격은 잔인하고 기만적이며 집요하기 때문에 단계적으로 계획을 세워서 애굽을 빠져 나가야 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사명을 감당할 때 사탄의 정체를 반드시 알아야 하는 여유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하나님 지팡이를 가지고 자신을 먼저 알고, 그리고 하나님을 알고, 다음에 사탄을 알고 가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들도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자신을 먼저 알고 하나님을 알며 사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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