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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제사장의 성화 (레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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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21장은 제사장들로 하여금 그들의 제사직의 존엄성을 보존케 하기 위해 최상의 관심과 경계심을 가지게 하는 의무를 지워주는 일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특히 오늘 본문 1절-9절까지는 일반 제사장들에 관한 율법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사장들의 주요 임무는 하나님이 정하신 정한 것과 부정한 것을 분별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이런 일에 대해 백성들을 가르치고 훈계했습니다. 그런데 이 일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제사장들 자신이 “거룩한 자” 여야 합니다. 만일 자신이 거룩하지 않는 채로 다른 사람들에게 거룩하라고 하는 것은 위선이요 거짓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제사장들은 다 른 어떤 사람보다 더욱 칠저하게 거룩한 존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1. 제사장들은 장례로 인해 부정을 타서는 안됩니다 제사장들이 자기들의 골육지친이 죽은 경우가 아니고서는 애곡을 하고 장례에 참예할 경우 성소에 들어 올 수 없도록 되어 있었습니다(1절-3절) 그러나 골육지친을 위해서는 상을 치르는 것이 제사장들에게 허용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골육을 사랑하는 인간 본성을 귀중히 여기시고 7일간은 제사장들의 집무수행을 면제해 주었습니다. 그런 자들이 죽으면 자연히 거 기에 마음이 쓸리고 동화되어 영향을 받는 것입니다. 이들에 대한 장례마저 거부할 수는 없었으므로 하나님이 허용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슬퍼해서는 안됩니다. 지나친 슬픔은 자칫 이방인들처럼 미신적인 행위에 빠져들기 쉽기 때문입니다. 본문 5절에는 이방인의 장례풍습 언급되어 있습니다. “제사장들은 머리털을 깎아 대머리 같게 하지 말며 그 수염 양편을 먹지 말며 살을 베지 말고” 이방인들은 죽은 사람들을 위하여 머리털을 자르고 피를 흘리는 관습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는 분명 거짓 신을 섬기는 의도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사장이 이러한 그릇된 풍습을 좇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제사장들은 가족을 잃고 슬퍼하는 데도 다른 이들의 모본이 되어야 합니다. 그들은 왜 그들이 “소망없는 자처럼 슬퍼하지 말아야 하는지”(살 전 4:13)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위로를 받는 자답게 남들을 위로해 주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2. 제사장들은 결혼을 하는 일에서도 거룩하여야 합니다 제사장들은 7절 말씀에 기록되었듯이, 기생이나 부정한 여인을 아내로 맞아들여서는 안됩니다. 물론 이러한 결혼은 일반인에게는 허용되어 있었지만 특별히 하나님의 일을 만드는 이들에게는 허용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아내로 인해 그 집안 전체가 불경하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사장의 가정은 일반인들의 가정에 비해 월등하게 경건해야 합니다. 그런데 가정의 경건성은 그 가정의 아내에 따라서 상당한 영향을 받게 됩니다. 아내가 불경하면 자식들이 그렇게 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제사장의 아내는 경건한 자요 순결한 자여야만 하는 것입니다. 둘째, 순수한 혈통의 유지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제사장들의 직무는 혈통에 따라서 세습되는 것입니다. 거룩한 피가 그 몸에 있지 아니하면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할 수 없습니다. 제사장의 직무는 순결한 피를 지닌 자가 행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아내의 부정한 피가 제사장과 섞이여 그 자손에게 전해진다면 제사장으로서의 자격이 상실 되는 것 입니다. 제사장의 아내가 지녀야 할 순수성은 오늘날 목회자의 사모에게도 적용 되는 것입니다. 물론 구약의 율법과 같이 육신의 정결을 요구하는 것은 아닙니다. 목회자의 사모는 본문을 통해서 본다면 다음 몇 가지 자질을 갖추어야 합니다. 첫째, 경건성을 지켜야 합니다. 경건성은 기독교인의 모습입니다. 방종한 생활을 하는 자는 경건성을 유지 할 수가 없습니다. 사모의 경건성은 온 가정을 경건하게 하고 목회자가 목회에 전념 할 수 있도록 힘이 됩니다. 딤전 3:11에 경건정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단정하고 참소하지 말며 절제하며 모든 일에 충성된 자라야 할지니” 이러한 품성이 사모에게 요구되는 품성인 것입니다. 둘째, 사모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야 합니다. 경건성은 하나님을 열심히 경외하는 데서 드러납니다. 목회자의 가정은 가족보다도 하나님을 먼저 사랑하는 가정이어야 합니다. 사모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아니하고 가정에 집착한다면 여느 가정과 다름없게 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모는 자녀들에게도 먼저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을 가르칩니다. 그리하여 육신의 자녀보다는 영적 자녀를 양육하기를 힘씁니다. 혈통의 순수성을 유지하는 구약의 경우처럼 신앙의 순수성을 유지하려 하는 것입니다. 3. 제사장은 자녀들을 거룩한 자녀로 양육해야 합니다 본문 9절에 “아무 제사장의 딸이든지 음행하여 스스로 더럽히면 그 아비를 욕되게 함이니 그를 불사를지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자녀는 부모의 또 다른 분신입니다. 자녀가 부정하면 부모 역시 부정한 자가 됩니다. 제사장이 아무리 거룩한 생활을 해도 자녀가 그렇지 못하다면 당장 사람들은 “자녀들도 못 다스리는 무능한 자”라고 손가락질할 것 입니다. 오늘날 많은 목회자 가정에서 자녀들의 탈선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목회자는 먼저 자녀들을 다스려야 합니다. 신앙으로 잘 양육하고 다른 사람에게 모본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만일 자녀들이 불경건하면 “불에 태우라”고 하십니다. 얼마나 자녀 양육이 중요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자녀는 부모의 분신이라고 했습니다. 자녀의 잘못은 본인의 잘못입니다. 자녀의 불경건을 보고 관대한 태도를 취하는 것은 자신의 죄에 대해 관대한 태도를 취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큰 잘못입니다. 죄는 본래 태워야 합니다. 내 자신의 죄에 대 해서는 더욱 확고한 태도를 취해야 합니다. 자녀들의 죄를 내 죄로 인정하고 철저한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제사장은 하나님의 종으로 부름 받은 자입니다. 그러므로 더욱 자신의 삶을 거룩한 모습으로 성화시켜 나가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목회자들이 이 사실을 망각하고 일반인과 똑같은 말을 하고 생활을 하며 살아갑니다. 그로 인해 목회자들의 권위는 땅에 떨어지고 목회자 경시 풍조까지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목회자들의 입술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사람들이 신뢰하겠습니까?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이 목회자들의 불경건성 때문에 가치없는 것으로 전락된다면 이 얼마나 무서운 죄악입니까? 한국 교회의 앞날은 “하나님의 말씀”의 회복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자” 하는 캐치 프레이즈가 오늘날 한국 교회에도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서 하나님의 종들은 하나님께 먼저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을 발휘하고 그 말씀을 받는 성도들 이 변화될 것입니다. 성도들은 이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는 성도들이 있는 교회의 목회자는 결코 그릇되지 않습니다. 혹시 여러 성도님들 중에 자기 목사님에 대해 비난하는 자 있습니까? 먼저 기도하십시요. 당신의 그 기도 때문에 목회자는 변화될 것이며 그 목회자의 말씀을 듣는 여러분이 또한 변화 될 것입니다. 기도하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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