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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나안 땅의 인도자 자격 (수 01: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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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시대마다 그 시대에 필요한 인물을 택하사 자기의 일을 성취하십니다. 우상 숭배로 범람하던 때에 유일신 종교를 창설하기 위해서는 외아들을 번제로 드리는 신앙자 아브라함을 불렀고, 여호와를 대적하여 음란과 부도덕이 가득하던 시대에는 의인 노아를 선택하여 방주를 예비케 하였습니다. 사울 왕 시대에 국토를 통일하기 위해서는 다윗을 초장에서 불러 왕 위에 오르게 하셨고,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서는 지혜의 사람 솔로몬을 왕으로 삼으셨습니다. 이런 하나님께서 이제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여호수아를 선택하였습니다. 그가 선택받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민족을 가나안에 인도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택하실까요? 1. 영감의 사람입니다 성령의 감동없이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없고 구속의 체험을 가진 자만이 거룩한 열심이 생기는 법입니다. 거룩한 감격에는 권모술수나 이해타산이나 분파, 작당 등의 불순한 행동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인간 개조이니 정신혁명이니 하지만 하나의 인간 실존이 새로와지려면 성령의 역사로 영감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성령의 감동이 있음으로 진실의 인간으로 비겁한 자가 담대한 자로, 교만하던 자가 겸손한 자로 변화받습니다. 오늘 교회 안에서 거룩한 감격이 없이도 열심으로 일하여, 그 명성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영감이 없어도 열심이며 전도하며 교회를 세우며 하나님을 위해 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열심은 직업적 열심이며, 그 충성은 하나님을 위한 충성이 아니라 자기를 위한 충성이 되기 쉽습니다. 성령의 거룩한 감격없이 성경과 목회법을 배웠다면 목사라는 직업인은 될지 모르나 하나님의 일군은 될 수 없습니다. 영적 감동없이 처세술이나 배워 가지고 신학교를 졸업한다면 직업 일군은 될지 모르나 신령한 일군은 될 수 없습니다. 성령의 감동없이 인간의 지혜와 방법으로 일할 수는 있으나 그 사람의 일터에는 불길은 굉장하지만 뜨겁지도 않고 뇌성은 굉장해도 빛은 보이지 않습니다. 소리는 있어도 즐거운 찬송보다 불평과 원망의 소리가 많게 됩니다. 뜨거운 성령을 받아야 새로운 역사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2. 확신의 사랑입니다 하나님 나라 건설사업은 확고부동한 신념이 필요합니다. 여호수아의 확신은 가데스에서 나타났습니다. 그는 가나안 정탐군 열 두 명 중의 하나였습니다. 다같이 가나안을 보고 왔으나 열 사람은 가나안 정복은 어려운 일이라고 보고하였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은 가나안 정복은 쉬운 일이라고 보고했습니다. 그 원인은 무엇입니까? 할 수 있다는 신념입니다. 할 수 있다는 분은 성공할 것이요, 어렵다는 분은 실패한 것 입니다. 그러므로 확신이 있는 여호수아와 갈램은 가나안에 나라를 건설 할 수 있었습니다. 무질서 무통제의 오합지졸로 하나님 나라의 건설이란 어려운 일이었으나 신앙의 사람 여호수아에게는 한 그릇 밥을 먹는 것 같이 쉬운 일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물질 풍요와 사이비 종교 등으로 사분오열에 허덕이는 교회를 생각할 때 어려운 일이 많아 근심스럽게 보일런지 모르나 신앙자 앞에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믿음이 있는 자에게는 어려운 일이 없으나 믿음이 없으면 쉬운 일도 어렵게 보입니다. 3. 최선을 다하는 자입니다 달란트 비유에서 최선을 다한 사람은 더 큰 일을 맡았고, 최선을 다하지 않고 게으른 사람은 있는 것까지 빼앗겼습니다. 노력없이 행복이 없고, 고생없이 보람이 있을 수 없습니다. 십자가의 고통이 있어서 부활의 아침이 있는 것처럼 피땀 흘리는 고생이 있어야 성공의 영광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인생을 쉽게 살려는 안이한 태도를 가졌던 한 달란트 맡은 사람은 생활 전선에서 낙오자가 되었습니다. 인생은 결코 쉽게 살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천국도 힘쓰는 자가 빼앗는 법인데 생존경쟁의 이 땅에서 최선을 위한 노력도 없이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들의 사고방식을 바꾸어야 합니다. 안이한 생각이나 요행을 바라는 사고에 제동을 걸어야 합니다. 사고방식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게 되고, 행동이 바뀌게 되면 우리의 나태한 습관도 바뀌게 됩니다. 습관이 바뀌면 인격이 바뀌고, 인격이 바뀌면 인생생활에 변화가 올 것입니다. 비스마르크 같은 이도 독일 청년들에게 “첫째 일을 하라, 둘째 즘더 일을, 세째 끝까지 일을 하라”고 외쳤습니다. 우리들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 힘써 일하되 끝까지 일을 하고 잘했다는 칭찬을 받아야 합니다. 4. 진리의 사람입니다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고 주야로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수 1:8)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일군인 여호수아가 진리의 사람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진리란 무엇입니까? 심은대로 거두는 것은 식물학적 진리요, H2O가 물이 된다는 것은 화학적 진리입니다. 그러나 생명의 진리는 아버지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불멸의 진리요 성경은 인생을 구원하는 영원한 진리입니다. 여호수아에게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고 밤낮 묵상하라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건설자는 성경의 사람, 진리의 사람이어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성경대로 행하면 흥하고 성경의 진리를 거역하면 실패합니다. 과연 여호수아는 가나안에서 율법의 정신으로 기초를 삼고 나라를 다스려 나라는 형통했던 것입니다. 5. 강하고 담대한 사람입니다 모세는 후계자 여호수아를 위해 강하고 담대하라고 권면하며 강하고 담대하지 않으면 가나안에 하나님 나라를 세울 수 없다고 권고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데스에서 왜 곧은 길로 가나안에 가지 못하고 40년의 광야생활을 했습니까? 강하고 담대하지 못했던 열 명의 정탐군의 보고 때문이 아닙니까? 그러나 강하고 담대한 여호수아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정복할 수 있었습니다. 팔만리 지구가 넓다 하지만 생존자는 오직 강자 뿐입니다. 약한 자는 쇠하고 강한 자만이 강성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는 비겁한 자가 신앙할 수 없는 종교입니다. 불교 같이 염세하고 산곡을 찾아가거나 유교 같이 사대주의에 빠지는 비겁자는 믿을 수 없는 종교가 기독교입니다. 강하고 담대한 여호수아가 건국한 가나안에서 발생한 기독교는 담대한 자가 믿는 종교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가는 예수는 약자가 아니라 강하고 담대한 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를 세계에 전파하기에는 인정많은 바나바보다 용감한 바울이 적당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강하고 담대한 사람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자가 아닙니까? 강하고 담대한 자는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걸어가신 예수를 믿는 자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려는 여러분은 강하고 담대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나라 건설에 부름받은 여러분은 영감의 사람이 됩시다. 확신의 사람이 됩시다.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됩시다. 진리의 사람이 됩시다. 강하고 담대한 사람이 됩시다. 가나안의 일곱 족속을 진멸하고 하나님 나라 건설의 중임을 맡은 자에게 요구되는 인물은 이러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한국을 복음화하기 위해 부름을 받은 우리는 여호수아를 본받는 훌륭한 일군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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