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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드러난 아간의 죄 (수 07: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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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한 아간에 관한 여호수아의 기사는 죄에 대해서 다음의 세 가지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죄가 어떻게 사람의 마음에서 자라고 그것이 나중에는 어떠한 것을 하게 되며 결국은 사망에 이른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둘째로는 죄인에게서 죄를 어떻게 찾아낼 수 있다는 것과, 세째로는 한 사람의 비밀히 지은 죄가 다른 사람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치며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얼마나 지장이 된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1. 죄의 시초와 자라남 아간이 여호수아에게 자백한 것을 읽어보면 죄의 시초와 그 성장함이 어떻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내가 노략한 물건 중에 시날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200세겔과 금 50세겔을 보고 탐내어 땅 속에 감추었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첫째로 그는 보고 다음에는 탐내고 그 다음에는 취하고 그리고는 그것을 감추고 다음에는 고통을 당했습니다. 이것이 죄인되는 경로입니다. 태초에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본즉 눈에 아름답고 먹음직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것을 탐내어 취해서 먹었습니다. 그리고는 동산의 나무 숲 속에 몸을 숨기려 하였으나 하나님 앞에서는 숨길 수 없었습니다. 아합은 어느날 밤 수레를 타고 이스라엘로 가다가 나봇이 잘 가꾸어 놓은 포도원을 보고 탐을 내어 나봇을 죽인 후에 그것을 취하였습니다. 그 후에 아합은 엘리야가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개들이 네 피 곧 네 몸의 피도 핥으리라”고 한 그대로 나봇이 죽임을 당하던 바로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삼손은 소렉으로 내려가서 한 아름다운 여인 들릴라를 보고 그를 탐내어 취하다가 나중에 그의 힘의 비밀을 블레셋 사람에게 드러내어 결국은 그들에게 두 눈을 뺏기는 비참한 꼴을 당하고 짐승처럼 연자매를 끌게 되었습니다. 엘리사의 종 게하시는 나아만이 엘리사에게 문둥병을 고쳐준 사례로 수리아에서 사 온 금과 은과 옷을 예물로 주려고 할 때 엘리사가 거절하는 것을 보고 탐내어 그것을 취하여 마치 아간이 했던 것처럼 감춰 두고 엘리사에게 거짓말을 하더니 문둥병이 발하여 마치 눈과 같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유다는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의 손에 들려 있는 은을 보고 탐내어 은 30냥에 주님을 팔고는 나가서 목매달아 죽었습니다. 죄란 것은 다 이러한 경로를 밟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이에 대하여 말하기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죄를 거부하려면 처음에 죄가 드러나서 우리의 마음이 끌리려고 할 때에 거부해야 됩니다. 만일 이 때에 거부하지 않으면 다음에는 탐심이 나게 되고 다음에는 취하고 그 다음에는 자기가 한 행동을 숨기려 하나 헛수고가 되고 맙니다. 2. 죄가 죄인을 찾아냅니다 아간의 죄는 죄가 발견되고 또한 그것을 알아낼만한 모습을 모두 지니고 있습니다. 아간은 한밤중에 죄를 범하였습니다. 여리고 성에는 시체만 있었을 따름이니 아간이 죄 지은 것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또한 여리고의 진영에 있는 사람들도 모두 깊이 잠들어 있었습니다. 값비싼 바벨론의 옷을 입고 있던 사람도 죽었으며 손에 금덩이를 가지고 있던 자들도 영원히 사라지고 은전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도 죽었습니다. 그런즉 이것들을 훔치는 아간을 본, 그 보물의 소유자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진영에도 아간이 그 노략질한 물건을 장막 한 귀퉁이 땅 속에 묻고 있는 것을 본 사람은 한명도 없었습니다. 아간이 직속되어 있는 유다 지파나 세라의 집안이나 삽비의 자손 중에도 이 때의 아간을 본 사람은 없었습니다. 아간의 집안 식구들도 그 구멍을 파고 보물들을 감출 때에 잠을 깨어 그것을 본 사람은 없었던 것입니다. 아간이 보물을 감춘 곳을 판판하게 다듬었을 때는 다른 곳과 조금도 다름없이 보였습니다. 과연 감쪽같이 지은 죄였습니다. 그런데 죄는 범죄한 아간을 찾아내어 폭로시켜 심판하고 결국은 벌을 주었습니다. 죄는 언제나 죄인을 찾아냅니다. 시일이 지나는 동안에 찾아내고 양심에서 찾아내며 내세에 찾아냅니다. 죄는 시일이 지나면 죄인을 찾아내게 됩니다. 세상의 헌법은 도덕적이며 모든 자연은 이 도덕적 법률에 조화되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모세가 애굽인이 히브리인을 치는 것을 보았을 때 그는 좌우로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 그 애굽 사람을 쳐 죽여 모래에 감추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날 두 이스라엘 사람이 서로 싸우는 것을 보고 그 둘을 떼어 놓으려고 하였을 때 그 중의 하나가 말하기를 “네가 애굽 사람을 죽임 같이 나도 죽이려느냐?”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두려워하며 말하기를 “일이 탄로되었도다” 라고 하였습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죄를 지으려 할 때는 언제나 누가 보고 있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죄는 죄인을 양심에서 찾아냅니다. 아무도 범죄하는 행동을 목격한 사람이 없고 그 범죄자를 찾으려고 하다가 실패하여 단념하고 말았다 하더라도 그의 양심만은 그가 범한 죄를 들추어내어 모면할 수 없는 심판을 내리고 맙니다. “내가 왜 그런 일을 저질렀던고” 하는 가책이 떠날 수 없게 됩니다. 이것은 바로 범죄함으로 받는 고통입니다. 이 양심의 가책은 가룟 유다의 경우와 같이 범죄 후 즉시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는 예수님을 판 돈을 대제사장과 장로들 앞에 던지며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였던 것입니다. 또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밤에 베드로가 가야바 법정에서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난 뒤에 주님께서 돌이켜서 베드로를 보실 때 베드로는 양심의 가책을 받아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양심의 가책과 형벌이 오래 지체 되었다가 일어나기도 합니다. 요셉의 형제들은 요셉을 애굽 사람들의 종으로 판 뒤에 여러 해 지나서 양식을 사러 애굽으로 내려갔을 때 그들의 막내 아우를 데려올 때까지 볼모로 시므온을 옥에 갇혀 있으라 하니 그때서야 그들은 양심의 가책을 받아 서로 말하기를 “우리가 아우의 일로 인하여 범죄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음으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였도다” 하였습니다. 이처럼 양심은 일이 순조로울 때는 자고 있다가 역경에 처할 때에만 깨어나기도 합니다. 3. 남을 해치며 방해하는 죄 죄는 언제가 그 근원은 개인적이지만 그 결과에 있어서는 개인적인 동시에 사회적입니다. 누구도 저 혼자만 사는 사람도 없으며, 또 자신에게만 죄를 짓는 사람도 없습니다. 비밀스런 죄가 있었다면 아간의 죄는 정말 비밀스런 죄였습니다. 아간이 짓는 죄를 이스라엘 군대나 진영 중에서 본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범죄의 영향은 온 이스라엘 백성에게 참으로 비참한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군대가 아이 성을 치러갔다가 그들은 적군을 피하여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인즉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신대로 한 사람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이 죄로 인하여 이스라엘 군대가 싸움터에서 패하고 말았습니다. 이 죄는 또한 그의 가정의 불행과 멸망을 초래하였으며 자기 자신의 비운과 멸망을 가져오고 말았던 것입니다. 죄는 그것이 아무리 남모르게 지은 죄라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의 생에 큰 영향을 끼칠 뿐 아니라 몇 해 후까지 때로는 여러 세대에 걸쳐서 두고 두고 악한 결과를 맺어 놓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구약에 “이스라엘을 죄짓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 이라고 기록된 말의 뜻을 밝히어 주는 것입니다. 여로보암이 죽은지 여러 해 만에 그가 지었던 죄, 곧 우상으로 금송아지를 만든 죄는 이스라엘 사람들로 하여금 우상을 섬기게 만들고 결국은 나라를 저주받게 하고 큰 해침을 받게 하였습니다. 죄란 것은 그 속에 사람을 죽일 만한 독을 가지고 있으며, 이 죄의 독은 언제까지나 지속됩니다. 다만 그리스도의 보혈로써만 이 죄를 속하고 그 죄를 깨끗이 씻음 받을 수 있습니다. 아간의 죄는 너무도 컸습니다. 그의 죄는 다른 사람에게 너무도 비극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아간은 자기의 범죄로 인한 심판을 면할 도리가 없었지만 자기의 죄를 완전히 자복하였습니다. 죄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하나님께 자복할 뿐입니다. 누가 범죄로 인하여 자기 자신의 영혼이나 자기의 가족이나 교회나 또는 사회와 원수를 맺었으면 그가 할 수 있는 한 가지 일은 회개하고 자복하는 일입니다.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라고 했습니다. 결국 아간은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는 자기 지은 죄로 인하여 그러한 벌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죄를 사하여 영생을 주시려고 십자가 위에서 돌아 가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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