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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베냐민의 운명과 실로의 강탈 (삿 2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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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바에서 다른 지파들은 베냐민 사람에게 딸들을 교훈시키는 것을 삼가기로 서약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베냐민 사람을 너무 많이 살육하였으므로 이 사람들의 양심은 괴로웠습니다. 만일 베냐민 지파가 근절되는 것을 면하려면 남은 베냐민 사람 600명에게 아내가 마련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맹세를 지켜야만 했습니다. 그들은 이 곤경을 벗어나는 방법을 모색하려고 걱정과 염려를 하면서 벧엘에서 여호와앞에 회음의 저주하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는 한편 야베스 갈르앗 사람들이 참가하지 않았다는 것을 상기하였습니다. 그들은 군의 파견대를 보내어 오직 처녀들만 남기고 주민들은 모두 죽였습니다. 이 약탈로 인해 베냐민의 남은 자들을 위한 400명의 신부가 마련되었습니다. 파견대는 처녀들을 데리고 벧엘이 아니고 실로로 돌아갔는데 분명히 이스라엘의 진은 여기로 옮겨진 것입니다. 그 곳에서 베냐민 사람들을 림몬 바위로부터 불러내어 신부를 내주었습니다. 그러나 신부는 숫자적으로 부족하였습니다. 아직도 마음에 동정심을 지니고 그리고 지파적 동맹 균일을 매우려는 마음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신부감을 더욱 탐색하였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맹세한 책임이 남아 있었으므로 간접적으로 이 수요를 충당하여야만 했습니다. 여호와께 대한 연례적인 향연이 실로에서 있을 예정이었습니다. 이 향연은 포도 수확때 있었던 것같이 보이며 향연하는 동안에 실로의 딸들이 포도원 주위에서 춤을 추었습니다. 베냐민 사람들은 기다렸다가 춤추는 처녀가운데 각각 부인을 취하도록 명을 받았습니다. 실로 사람들이 이 여인들을 베냐민 사람들에게 아내로 주지는 않을 것이므로 이런 방법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미스바에서 행한 맹세를 피할 수가 있다고 주장하였던 것입니다. 더구나 처녀들이 전쟁에서가 아니요 또한 생명의 손실도 없이 탈취되었음으로 실로와 베냐민 지파사이에 반목이나 앙갚음하는 일을 면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실로에서 온 동료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그들이 인자하게 딸들을 베냐민 사람과 머물러 있게 하도록 허락할 것을 탄원하려고 계획하였었습니다. 그 계획은 성공적으로 수행되었고 베냐민 지파는 근절됨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1. 사건의 발단과 처리 때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간지 400년 왕국시대가 시작되기 직전 북쪽 에브라임 산지에 한 레위인이 베들레헴 여자를 첩으로 같이 살았다는 그 여자가 자기 친정 베들레헴으로 도망간 것을 도로 찾으로 간데서부터 일이 시작되었습니다. 행실히 부실한 여자가 도망갔거든 잘됐다하고 잊어버렸다면 그것으로 끝이 날 터인데 죄악이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돌아가게 마련입니다. 예수님은 네 눈이 범죄케 하거든 빼어 버리라고 하였는데 그 죄악을 과감하게 끊어 버렸더라면 일의 발단이 없었을 것인데 악의 씨앗을 찾아다니는데 저주의 역사는 시작되는 것입니다. 신라 김유신 장군과 같이 참마지단(斬馬之斷)을 내렸더면 비참한 역사는 시작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한 레위인으로 인해 던져진 사건을 첩은 베냐민 사람에게 강간 살해되었고, 레위인은 자기 첩이 베냐민 지파 비류에게 당한 억울함을 이스라엘 12지파에게 호소할 때 죽은 자기 첩의 시신을 12토막내서 12지파에 보낸 것입니다. 이 일로 이스라엘 총회가 모였고 회는 베냐민 지파에게 그 비류30명 정도를 잡아 보내라고 명했으나 베냐민 지파는 총회 결의를 무시하고 자기들도 26,700명을 소집하여 총회에 대항했습니다. 이것이 베냐민 지파의 큰 실수입니다. 베냐민 지파는 총회 결의에 순응해야 하는데 총회는 하는 수 없이 베냐민 지파를 응수해야 합니다. 이렇게 발단된 이스라엘 총회와 베냐민 지파의 전쟁은 베냐 지파의 장정 600명만 남고 베냐민 지파인 모두 멸절되고 말았습니다. 그 후 다시 총회는 열고 베냐민 지파 멸절을 막기 위해 베냐민 지파를 용서해 주고 베냐 민 지파 장정들에게 아내를 주어 짝을 짓게 했는 그 해결책으로 길르앗 야베스 땅의 처녀 400명을 구하여 짝 지우게 했고 나머지 200명 베냐민 장 정들에게는 1년에 1차례씩 실로에서 무도회가 있는데 베냐민 지파 장정들 200명들은 그 무도회에 숨어있다가 무도회가 무르익을 때 여자 200명을 붙들어 살도록 허락했습니다. 이렇게 한 레위인으로 인해 던져진 파문은 종식을 지었습니다. 여기에서 일의 우열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잘못된 점 1) 레위인이 첩을 두었다는 사실. 2) 첩이 도망갔으면 잊었어야 할 일입니다. 3) 첩 장인집에서 길을 떠날 때 일찍 떠났어야 할 일입니다. 4) 하인의 충언을 들었더면 좋았을 것입니다. 5) 잔인한 방법의 호소는 더 큰 불행을 초래합니다. 6) 베냐민 지파가 비류만 보냈으면 좋았습니다. 7) 베냐민 지파가 중간화해를 했어도 피해는 절반정도로 줄일 수 있었습니다. (2) 잘된 점 1) 총회가 온당히 처리 한 것 “ 비류를 잡아 보내라 ” 2) 여호와께 묻고 매번 전투에 참여한 것. 3) 딸을 주지 않기로 한 것은 감정의 결의이나 용서하기로 한 것은 정말 잘한 것입니다. 2. 이스라엘 총회가 경솔히 맹세했던 몇 가지(1-7절) 베냐민 지파와의 싸움에서 승리한 이스라엘은 가축할 것 없이 베냐민을 칼날로 치고 닥치는 성읍마다 다 불살라 버렸습니다. 그 결과 베냐민 사람 은 군사 600명만 남았습니다. 보편적으로 싸움에서 승리하면 기뻐하며 여 호와를 찬양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본문 말씀에 보면 그들은 승리 의 기쁨에 들떠서 기뻐해야 하는데 그러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앉아서 대 성통곡 하였던 것입니다(2절). 이제 이스라엘 12지파에서 한 지파가 사라 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죄에 대한 진노를 심판으로 펴시는 공의의 하 나님이십니다. 그러나 구원의 길을 항상 마련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이 이 땅에서 끊어지지 않도록 섭뢰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 총 회는 이미 전쟁전에 맹세를 결의한 바 있습니다. 그들의 내용의 심각성에 대한 말씀입니다. (1) 우리 딸을 그들의 아내로 주지 아니하리라는 총회결의 입니다. 이제 남은 베냐민 지파 군사 600명에게 이스라엘이 딸을 주지 않으면 베냐민 지파는 완전히 진멸될 수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의 총회결의를 후회했던 것입니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마 5:33-34에 “ 옛 사람에게 말한 자 헛 맹세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회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 이요 ” 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총회 결의를 이스라엘 백성은 반드시 지켜야 하므로 이스라엘 딸들을 베냐민에게 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 이스라엘은 모두 맹세를 한 바 있기에 베냐민 지파가 이제 끊어질 것을 통곡했습니다. (2) 그들은 미스바 총회에 참석 하지 않은 자도 죽일 것이라고 맹세 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미스바 총회를 연 것은 그들 나름대로 정의감에서였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잘못된 정의감은 많은 사람을 죽입니다. 총회는 베냐민 지파에게 여인들을 주지 않기로 결의 할 목적으로 모인 총회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중에 베냐민 장정에게 여인을 주고서라도 베냐민 지파를 멸절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한 자들이 있 었습니다. 그런데 총회는 베냐민을 도와주는 자도 죽어야 한다고 맹세한 것입니다. 전쟁이 끝난 지금에 와서 이스라엘은 싸움도 후회했지만 그들 의 맹세 자체도 후회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하여 감정적으로나 주 관적으로 섣불리 맹세하거나 일을 처단해서는 아니되며 오직 모든 일에 주 님뜻을 의뢰해야 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3. 이스라엘 백성의 잔인성(8-12절) (1) 베냐민 지파에 행한 잔인성 이스라엘 백성은 기브아에 군사를 매복시켜 놓고 베냐민 군사들이 성읍 을 나와 이스라엘과 싸우는 틈을 타 그 성읍의 가축과 만나는 모든 사람을 다 칼날로 쳐서 죽여 버렸습니다. 그리고 닥치는 성읍마다 다 불살라 버려 습니다.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정의감보다 감정이 우선되었습니다. 그들은 무자비했습니다.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 상관없다는 생각은 진정한 정의감이 아닙니다. 그들의 타락된 마음의 표출이며 무자비한 감정에 앞서 잔인한 행동입니다. 그들은 부녀자와 어린 아이까지 남긴없이 무참히 죽였습니다. 이것은 아무리 전쟁중이라 하나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비무장한 부녀자와 어린아이는 죽일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현대 전쟁에도 포로는 죽이지 못하게 국제법으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하물며 같은 형제 이스라엘 백성간에 이런 행위를 저지를 다는 것은 도덕으로 얼마나 타락된 백성인가를 보여줍니다. (2) 야베스 길르앗 거민에 대한 잔인성 이스라엘은 미스바 총회에 야베스 길르앗 거민이 한 사람도 참석하지 않 았다는 이유로 그들을 죽이고자 했습니다. 1) 경솔한 맹세 때문에 그들을 죽여야 했습니다. 2) 그들을 죽임으로 그들의 딸들을 공출하여 베냐민 장정에게 아내 로 주기로 하는 목적으로 그들을 죽였습니다. 베냐민 남은 자를 위해 아내 를 구해 주고자 하는 데도 이런 잔인한 방법이 동원된 것입니다. 이것은 신앙의 타락으로 인한 이스라엘 백성의 비극입니다. 4. 이스라엘 백성은 자기 소견대로 하나님을 섬기고, 자기 소견대 로 베냐민 지파의 행악을 처리했습니다(13-25절) 본문은 사사기 마지막 부분으로서 이스라엘 백성이 고통받는 근본적인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고통은 하나님을 떠나므로부 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백성이 편안할 때 하나님께 감사하지 아니하고 우상섬기면서 하나님의 행복은 떠나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서 그의 손 을 옮기실 때 이스라엘은 이방 민족의 손에 붙이시므로 고통을 내리신 것 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든 일을 각기 자기 소견의 옳은대로 행했습니 다. 이것은 하나님을 모르는 자의 삶의 방법 입니다. 그들은 나름대로 자기 의 소견이 옳다고 생각하며 행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잠 14:12에 “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의 소견이 하나님 말씀보다 옳은 것 같이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이 필경은 사망의 길일 수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 중에 행악자를 제거하고자 하는 것은 옳은 듯 하였으나, 그들 소견대로 행한 결과는 엄청난 인명의 손실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로지 우리의 삶은 우리의 소견대로가 아니라 주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모든 우리 의 죄악을 담당하셨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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