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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사로서 사무엘 출현 (삼상 07: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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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궤는 기랏여아림에 20년간 머물러 있었습니다. 이제 실로에서 미스바로 장면은 바뀌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일신인 하나님을 버리고 가나안 이교적인 종교를 타락하여 가나인의 바알(남신)과 아스다롯(여신)의 다산 종교를 예배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이리하여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 “ 회개하라 ” 고 외치며 예루살렘 북쪽 5마일쯤에 있는 미스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소환하였습니다. 예언과 기도는 예언자에게 소속된 것입니다. 실로에서 제사장이 되기 위해 훈련을 받았던 사무엘은 여기서는 예언적인 지도자로서 나타납니다. 미스바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이게 되자 이스라엘 국력의 가능한 회복을 항상 경계하고 있던 블레셋 군사도 또한 운집하게 되었습니다. 겁을 먹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부터 사무엘을 사사로 모시고 그의 격려를 받게됩니다. 예언자요, 제사장이요, 사사인 사무엘은 필경 군사적인 전쟁의 시작으로써 번제를 드려 자기 동포들의 공포심을 진정시키려 했습니다. 이제 전쟁이 시작되었는데 무서운 폭풍이 블레셋 사람들을 뒤덮어 패주시켰습니다. 7:10의 우뢰 소리는 천둥 소리입니다. 그리고 당시에는 이천둥은 여호와 자신의 직접적인 개입이라고 해석했었습니다. 사무엘은 승리의 지점에 승리의 돌을 세웠는데, 즉 에벤에셀이라 부르는 기념돌단입니다. 태평한 세대가 돌아오자 사무엘은 규칙적으로 연례적 순회를 하기 위해 라마를 중심으로 하여 벧엘과 길갈과 미스바를 통과하여 다니면서 사사 통치를 하였습니다. 이같은 사사는 전쟁의 지도자나 억압받는 백성의 옹호자도 되지만 참된 통근자라고 이해되었습니다. 사무엘은 공의로 다스렸습니다. “ 시대가 영웅을 낳느냐 ”, “ 영웅이 시대를 낳느냐 ” 는 문제는 오늘도 역시 하나의 수수께끼이지만 아놀드 토인비의 말을 빌릴 것 없이 역사의 흐름이란 흥망이 유수한여 어쩔 수 없이 옛 시대는 가기 마련이요, 새 시대는 오기 마련이요, 그리고 옛 사람은 사라지고 새 사람을 낳기 마련임이 역사 추이의 불가피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로 사사시대 말기의 복잡한 비운 속에서 어린 사무엘이 하나님의 은혜 속에 조용히 자라면서 기회를 기다리다가 이제 비로소 새 시대를 맞아 새 인물로 나서게 된 것입니다. 사울이 실각하자 다윗이 등장하였고, 세례 요한이 사라지자 예수 그리스도가 출현한 것 같이, 제사장 엘리가 죽은 후 사무엘이 나서게 됨은 세대 교체상 필연적 사실이었습니다. 이런 세대 교체와 인물 교체가 이루어지는 역사 흐름 속에서 이 모든 것을 맡아 인도하시며 섭리하시는 이가 바로 여호와이신 것입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을 여호와께로 인도해 줄 지도자를 요구하는 갈망심이 절실하게 일어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언제나 민중은 영웅들의 출현을 기다리게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극단적으로 인류의 역사는 곧 영웅의 역사라고까지 칼 라일은 밝힌 바 있습니다. 이는 마치 목자없는 양은 살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지만, 목자란 양이 없으면 그 존재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민중없는 지도자란 무의미하며, 지도자 없는 백성 역시 방향을 못찿고 흩어지게 마련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도자를 구하여 여호와를 간절히 사모할 때 훌륭한 인격과 덕망을 갖춘 신앙적 지도자 사무엘이 나서게 되어 민중의 호소에 응하게 되는 것은 결코 우연의 일치는 아닐 것입니다. 실로 사무엘은 하나님께서 그 시대를 위하여 준비하신 그 시대의 영웅이었던 것입니다. 유대 사회에서는 인간이 하나의 독립적 인격으로 나서는 연령을 30세로 보았던 바, 동양의 성현 공자는 “ 30세에 입지를 세운다 ” 라고 논한 바와 일치합니다. 사무엘의 출생으로부터 오늘까지에 이르는 30여년의 기간은 이스라엘 역사상 패배와 치욕의 시대였지만, 이는 또한 구시대가 가고 신시대를 맞는 기간이었으며, 옛 사람은 가고 새 사람이 출현하는 하나의 과도적인 기간이기도 했습니다. 그 때 사무엘은 미스바에서 국민 총회를 열고 비로소 사사로 취임하고 자신만만한 정견을 발표하여 그야말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구국집회로 회개를 촉구하신 것입니다. 저들의 마음은 우상숭배 때문에 산산이 흩어져서 여호와께로부터 멀어졌으며 그야말로 망각의 지대에 버림받고 있었는데 이제 사무엘은 여호와를 중심한 총화단결을 호소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우상을 버려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 우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며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 만 섬기라 ” 고 호소하였습니다. 그리하면 이스라엘의 오랜 숙원인 블레셋을 이기고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적인 내용으로 국민들이게 호소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들은 미스바로 모여야 했고,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부어 맹세의 표를 삼아야 했을 뿐 아니라 오직 금식하며 통회자복해야 했던 것입니다. 이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무엘의 호소에 모두 호응하게 되었으니, 이로 말미암아 민족의 활로는 마침내 열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같이 지도자와 민중이 같은 목적으로 합쳐지는 순간, 그 때야말로 역사 창조를 가능케 하는 때인 것입니다. 이제 사무엘을 마지막 사사시대고 총결지어 왕정시대가 막이 오르려는 시대에 활동한 사무엘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1. 사무엘은 기도하는 일을 사명으로 알았습니다. 사무엘은 기도의 선지자였습니다. 그의 어머니 한나가 기도로 사무엘을 임신했고, 그가 세상에 태어나서 어릴 때부터 하나님 성전에서 신앙교육을 철두철미 받았던 것입니다. 기도고 낳은 사무엘이기에 그는 기도의 사람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삼상 12:23에 “ 내가 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서 결코 범치 아니했다 ” 고 사무엘은 그의 신앙을 고백 했습니다. 모세도 기도하는 지도자였습니다. 그는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무릎을 꿇고 여호와 하나님을 찾고 기도했습니다. 여호수아도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다윗 왕도 기도하는 왕이었습니다. 훌륭한 지도자에겐 끊임없는 기도가 있었습니다. 2. 사무엘은 하나님의 선지자였습니다. 선지자란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고 전파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백성에게 하고 싶은 얘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위로하실 때, 책망하실 때, 그리고 멸망을 선포하실 때에도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즉 선지자는 멧센저입니다. 여기에 실로 중대한 사실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그 말씀을 순종했을 때 저들은 안과 밖으로 평안한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만, 반대로 두 눈을 가리우고 두 귀를 막고 목에다 힘을 주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했을 때 저들은 국가적으로 엄청난 위기를 겪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그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정치, 경제, 문화, 예술, 교육, 군사의 근본이라고 확신합니다. 그 터 위에 모든 것이 건립 되어야 합니다. 3.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였습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의 종교, 정치, 군사 문제를 지도하는 사사입니다. 그런데 철두철미하게 그가 민족의 지도자로써 지키고 또 지킨 사실은 “ 살안계신 하나님의 심부름꾼 ” 이라는 원칙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지도의 이념과 철학으로 삼았습니다. 성경에 수없이 많은 인물들이 나옵니다. 저들이 “ 내가 한다 ” 고 했을 때 넘어졌습니다.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하신다고 했을 때 넘어졌다가 일어서고, 물러섰다가 전진했고, 실패했다가 성공했습니다. 한편 블레셋 측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새로운 지도자를 맞아서 융성한 기세로써 국민 총화단결을 기도하며 미스바에 운지하였다는 소문을 듣고는 이에 이스라엘의 배신을 예측하고 이를 미연에 방지하져는 심산에서인지 저들은 블레셋 연방의 연합군을 동원해 가지고, 또 다시 이스라엘을 향하여 침략의 마수를 뻗쳐왔습니다. 그 때 이를 보고 백성들은 전율하며 떨었으나 사무엘은 일단 이를 보고 이것을 안정시키고 어린 양을 취하여 번제를 드리고 계속 기도하여 마침내 여호와께 응답되어 때마침 블레셋 대군이 사무엘의 번제 현장깐지 육박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께서 큰 우뢰를 발하시니 저들의 머리가 모두 어지러워져서 마침내는 전투력을 완전히 상실하고 패주하게 되었는데, 이스라엘은 이를 추격하여 벧갈 아래까지 이르러 완전 소탕하여 그야말로 결정적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리하여 수십년간에 걸친 블레셋에 의한 압제의 멍에를 벗어버리고 지난 날의 수치를 완전히 설욕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후 사무엘 생전에는 한 번도 다시 블레셋의 침략을 받지 않았으므로 이스라엘 온 땅에는 비로소 태평성대가 임하게 된 것입니다. 회고컨데 지난 날의 이스라엘의 패전의 원인은 저들이 여호와를 버린데 있었습니다. 언제나 여호와를 떠나서 범죄하는 곳에 블레셋은 침략해 오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저들이 진심으로 여호와께로 돌아왔을 때 과거의 실패를 만회하고 일대 승리를 거두게 된 것입니다. 사무엘은 이에 승리의 영광을 오직 여호와께 돌리기 위하여 미스바와 센사이에 전승 기념비를 세우고 그 묘비에 “ 에벤에셀 ” 이라 썼으니 이는 “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 는 의미입니다. 바로 20년 전 이 지점에서 블레셋에게 패하고 여호와의 궤마져 빼앗겼던 치욕의 장소에서 (5:1) 이번에는 대승을 거두는 영광을 힘입어 “ 에벤에셀 ” 이란 새로운 동일 지점에서 실패와 승리를 반복케 됨은 오직 신창의 유무로 말미암은 상반된 결과였습니다. 즉 믿음없는 지도자와 백성은 대패하였고, 믿음있는 지도자와 백성은 대승하였던 것입니다. 바라건대 우리 모두는 신앙의 사람이되어서 하나님의 도우심이 여기까지 명실공히 영광의 “ 에벤에셀 ” 이 되어지도록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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