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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스루야의 아들들 (삼하 02: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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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사헬이 아브넬에게 피살됨(18-23절) 아사헬이 아브넬을 생포하려고 하였음은 경솔한 일이었습니다. 아사헬은 다른 사람을 제쳐놓고 아브넬만 추격했습니다(19절). 다윗과 요압의 혈연관계를 자랑하는 아사헬은 자신의 재빠름과 자기 측의 승리의 전리품으로 아브넬을 죽이든가, 생포하는 것 보다 더 좋은 것이 없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생각하기를 아브넬만 처치하면 전쟁도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사헬은 그의 좌우에 많은 사람을 손쉽게 생포할 수 있는 기회마저도 놓쳤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지나치게 노출시켰습니다. 아브넬은 아사헬에게 다른 병사에게 눈을 돌리고 자기를 쫓는 것을 그만 두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아사헬은 아브넬이 자기가 두려워서 그렇게 말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아사헬이 말을 안 듣자 아브넬은 창으로 과녁했는데 아사헬은 교만하게 굴다가 아브넬의 과낙이 되어 창에 맞아 죽게 되었습니다. 모든 군사는 그 자리에 머물렀고, 요압과 아비새만은 오히려 격노하여 아브넬을 추격하다가 해질 때에 그를 좇을 수 없게 되어 그 밤을 쉬었습니다. 2. 양군의 휴전(24-32절) 아브넬은 휴전을 제의했습니다. 전쟁을 시작한 아브넬은 전쟁에 실증을 느꼈습니다. 피 흘리는 것을 장난으로 여기던 사람이 자기 자신이 패배하게 되자 피 앞에 충격을 느꼈던 것입니다. 이같이 사건의 결과는 사람의 마음을 변하게 합니다. 분쟁에 앞장서던 사람이 그 분쟁이 끝나기도 전에 후회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분쟁에 개입하기보다 회피하는 편이 좋습니다. 요압은 침략자이지만 자신의 상관인 다윗이 피 흘리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을 알고 관대하게 휴전제의를 받아들입니다. 요압은 전쟁에 앞장서려는 아브넬을 비난하며 피를 많이 흘린 것에 대해서 책망합니다(27절). 요압은 아브넬을 계속 추격하는 것을 멈추고 원수의 과오를 동정하여 나팔을 불어 추격을 중지시키고 아브넬을 후퇴하게 했습니다(28절). 요압이 피 흘리는 일을 예방한 것은 잘한 일입니다. 양군은 분리되어 밤새도록 행군하여 아브넬 군대는 요단강 건너편 마하나임으로 돌아갔고(29절), 요압과 그의 군대는 다윗이 있는 헤브론으로 돌아갔습니다(32절). 다윗 군대는 아사헬 외 19명이 전사했고(30절), 아브넬 측은 360명이 전사했습니다(31절). 3. 스루야의 아들들(18절) 18절에 “그 곳에 스루야의 세 아들 요압과 아비새와 아사헬이 있었는데 아사헬의 발은 들노루 같이 빠르더라”고 했습니다. 이새는 열 남매를 슬하에 두었습니다. 아들 여덟 형제와 두 딸을 두었는데 큰딸 이름은 스루야이고, 작은딸 이름은 아비가엘이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스루야는 다윗 왕의 누이입니다. 스루야의 아들이 바로 요압과 아비새와 아사헬 삼형제입니다. 성경에 스루야의 남편의 이름은 전혀 나오지를 않습니다. 그 이유는 남편이 일찍 세상을 떠났거나 아니면 그 남편이 너무 유명한 아내의 그늘 밑에서 살았기 때문 인지도 모릅니다. 이 스루야의 아들들은 모두 다윗 왕을 보좌하여 활약하였던 30인 용사들 중에 속하였으며 다윗 군대의 장관들이었습니다. 다윗 왕은 이들을 부를 때마다 개인의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고 스루야의 아들들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면 이 스루야의 아들들을 어떤 인물인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요압(여호와는 아버지시라) 1) 장점은 무엇입니까? ① 백전백승한 장군입니다. 그는 다윗의 총사령관으로서 다윗 왕조의 건국에 크게 공을 세운 사람입니다. 그는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블레셋을 정복했습니다. 모압을 정복했습니다. 아람을 정복했습니다. 에돔을 정복했습니다. 시리아를 정복했습니다. 암몬을 정복했습니다. 압살롬의 반란도 그가 결국 끝냈습니다. 그의 평생 동안 한 번도 패전한 역사가 없었습니다. ② 다윗 왕의 인구조사를 반대한 일입니다(삼하 24:1-8). 다윗 왕은 요압을 불러서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능히 칼을 뺄만한 자를 조사하여라”라고 말하자 요압이 대답하기를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지금보다 백배나 더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내 주 왕이여 이 백성이 다 내주의 종이 아니니이까? 내 주께서 어찌하여 이 일을 명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이스라엘로 죄가 있게 하시나이까?”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왕의 명령이 요압을 재촉해서 하는 수 없이 인구조사를 9개월에 걸쳐 하기는 하였으나 중심은 인구조사 하는 것을 원하지 아니하였습니다. 그 일은 잘한 일입니다. ③ 왕의 지나친 감정을 충고했습니다(삼하 19:1-8). 왕의 지나친 감정이란 압살롬의 죽음에 대한 지나친 애통이었습니다. 삼하 18:33에 “내 아들 압살롬아”란 말씀이 무려 여섯 차례나 기록되어있는 것으로 보아 너무 지나친 애통이었습니다. 국가의 반역자요, 가문의 불효자식인 압살롬이 전사했으므로 오히려 기뻐해야 할 터인데 이 때 요압 장군이 다섯 마디의 충고를 했습니다. 첫째, 왕은 왕 자신과 그 가족을 구원해 준 신복의 얼굴을 부끄럽게 합니다. 둘째. 왕은 자기를 미워하는 자를 사랑하고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미워합니다. 세째, 왕은 압살롬이 살고 충성된 신복들이 죽었으면 좋을 뻔 했습니다. 네째, 왕의 신복들을 속히 위로 하십시요. 다섯째, 만일 왕이 나가서 위로하지 않으시면 오늘 밤에 한 사람도 왕과 함께 머물지 아니할 것입니다. 다윗 왕은 요압 장군의 말대로 시행하여 난국을 수습했습니다. 2) 요압의 단점은 무엇입니까? ① 너무 잔인했습니다. 대상 22:8에 “다윗이 피를 심히 많이 흘렸다”는 말씀이 있는데, 요압 장군이 흘린 피가 많았습니다. 요압 장군이 직접 일선 지휘를 할 뿐 아니라 닥치는 대로 죽였습니다. ② 왕의 가장 사랑하는 자들을 죽였습니다. 첫째. 왕자 압살롬을 요압이 죽였습니다. 다윗 왕은 전쟁하러 나가는 요압에게 “나를 위하여 소년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접하라” (삼하 18:5)고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머리털이 큰 상수리나무에 걸려 매달려 있는 압살롬에게 달려가 작은 창 셋으로 그의 심장을 찔렀습니다(삼하 18:14). 둘째, 사울의 군대장관이었던 넬의 아들 아브넬을 헤브론으로 유치하여 배를 찔러 죽였습니다. 요압은 자기의 세째 동생 아사헬을 죽인 복수를 한것입니다(삼하 3:27). 다윗 왕의 뜻은 회개하고 돌아오는 아브넬 장군을 크게 등용하려는 것이었는데, 그만 요압이 죽여 버렸습니다. 세째. 유다의 군대장관 아마사를 칼로 죽였습니다(왕상 2:32) (3) 아도니아를 왕으로 한 큰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왕위를 이을 자는 솔로몬이었는데, 요압은 제사장 아비아달과 의논하여 아도니아를 왕으로 추대했습니다. 그는 큰 잔치를 베풀고 “아도니아 왕 만세”를 불렀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다윗 왕은 솔로몬에게 유언을 하였습니다. 왕상 2:6에 “네 지혜대로 행하여 그 백발로 평안히 음부에 내려가지 못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솔로몬 왕이 명하시니 브니야가 아도니아도 죽이고(왕상 2:25), 요압도 죽였습니다(왕상 2:35). (2) 아비새(내 부친은 이새이시다) ① 자기 직책을 잘 감당했습니다. 아비새에게서 큰 실수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는 다윗 왕의 호신 장군으로 평생을 지낸 분입니다. 그는 왕을 그림자 같이 따라 다니며 경호의 직책을 잘한 장군이었습니다. ② 왕의 원수에 대하여는 용서가 없었습니다. 한 번은 십 왕야에서 사울 왕과 아브넬 장군이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왕이여 나로 창으로 그를 찔러서 단번에 땅에 꽃게 하소서”라고 했을 때 왕은 삼상 26:9-10에 “죽이지 말라 누구든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치면 죄가 없겠느냐! 사울 왕 머리 곁에 있는 창과 물병만 가지고 가자”고 했고, 또 한 번은 압살롬의 난을 피해 가는 다윗 왕을 향하여 사울 왕의 일가인 시므이는 저주를 하며 티끌을 날리며 돌을 던졌습니다. 이때 아비새는 삼하 16:9에 “이 죽은 개가 어찌 내 주 왕을 저주하리이까 청컨데 나로 건너가서 저의 머리를 베게 하소서” 라고 말을 할 정도로 그는 성격이 매우 급했으나 왕명에 늘 복종하였습니다. 그의 임종에 대해서는 성경에 기록이 없습니다. (3) 아사헬(하나님께서 만드셨다) 그는 30인 용사 중 한 사람이며 넷째 군대장관이었습니다. 그의 발은 들노루 같이 빨랐습니다(삼하 2:181). 그는 사울 왕의 군대장관 아브넬을 죽이려 하다가 도리어 아브넬에게 죽임을 당하게 되었습니다(삼하 2:18-23). 스루야는 아들 셋을 다 장군으로 키운 장한 어머니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쉽게 생각되는 것은 무용과 지덕을 좀 더 신앙으로 키웠더라면 더욱 좋았을 뻔 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스루야의 아들들이 한 번도 하나님께 기도 드렸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한 번도 여호와를 의지했다거나 찾은 일도 없습니다. 그저 다윗 왕의 고백과 같이 왕하 2:5에 “태평시대에 전쟁의 피를 흘리고 전쟁의 피로 자기의 허리에 띤 띠와 발에 신은 신에 묻혔으니”라고 개탄 했습니다.그들의 일평생은 잔인과 복수와 피 흘림 뿐이었습니다. 같은 장군 출신이라도 여호수아는 애굽과 왕야에 있을 때에는 모세를 보좌했고, 요단을 건넌 뒤로는 가나안 칠 족속을 멸하고 열 두 지파에게 기업을 분배해 주는 대과업을 조용히 수행하였습니다. 그야말로 문자 그대로 여호수아는 무용과 지덕과 신앙이 겸전한 장군이었습니다. 우리들은 다 그리스도의 장병들입니다. 스루야의 아들들 보다는 여호수와 장군의 신앙을 본받아 승리의 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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