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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다윗의 희망과 나단의 예언 (삼하 07: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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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소원은 화려한 성전을 짓는 것이었는데 하나님은 그것을 막으셨습니다. 참 종교의 자격은 종교적인 외부적 사실로써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그 능력으로 결정됩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주신 말씀은 그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해 내실 때도 어떤 사실에 좌우됨이 없이 그 모든 능력의 역사를 행하셨다고 했으며 이 시점에서 “다윗의 때”로 장막도 족하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주께서 백성 가운데 오셔서 그들을 체휼하시며 낮아지셔서 그들을 구원하시는 구속운동의 특징입니다. 신약시대에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오신 것도 역시 장막에 거하시는 것으로 비유되었습니다. 요 1:14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라는 말씀이 있는데, 여기 “거하시매”란 헬라어는 “장막을 쳤으매” 라는 뜻입니다. 여기 장막을 친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성전을 가리킵니다. 1. 다윗이 여호와의 집을 세우려는 계획(1-2절) 다윗은 국외 적을 평정하고 국내 정치가 안정되면서 선지자 나단에게 말하기를 2절에 “나는 백향목 왕궁에 거하는데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 있도다“ 라고 하며 송구함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얼마 전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셔드리기는 했지만 동분서주하며 전쟁터로 다니다 보니 법궤 영입 당시 지녔던 감격마저 다 사라지고 이를 천막 속에 방치해둔 채 오늘에 이른 것입니다. 2. 여호와의 집을 세울 자(3-7절) 이 때 다윗은 여호와의 집을 세우려는 계획을 품고 자기의 친밀한 벗이며 신앙과 정치의 고문 격이었던(왕상 1장)나단 선지에게 고하여 여호와께 물어 영감을 통하여 신의(神意)를 알고자 했습니다. 이에 나단은 일단 자신의 개인적인 의견으로 찬의를 표하고 여호와께 물었던바 뜻밖에도 나단의 귀에 들려진 여호와의 음성은 “다윗의 계획의 중지”라는 것이었습니다. (1) 하나님의 뜻에 가납된 자라야 합니다. 출애굽 이 후 지금까지 줄 곧 장막과 회막에 거하며 오늘에 이르렀지만, 그는 한 번도 백향목 집을 건축하라고 명한 일이 없었으며, 지금도 역시 건축하지 말라는 것이 하나님의 대답이었습니다. 여호와의 영광은 장소나 건물 여하에 따라서 감축되거나 증대되는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는 그 자체의 영광과 권위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리심산이나 시온산이나 장소에 구애 없이 신령과 진리의 예배자를 찾으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요4:19-24). 반면에 여호와께서 도리어 다윗의 집을 세워 주시리라는 것입니다. 즉 인간이 하나님을 위하여 무엇을 하려는 것 보다는 그가 나를 위하여 무엇을 하시려는가를 옳게 분별하여 이를 믿음으로 순종하는데 더 큰 축복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성전 건축에 앞서서 다윗과 그 자손에게 바라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과 진실이었으며, 복종과 신뢰였습니다. 그러므로 성전 건축을 위한 계획은 좋으나 그것이 이루어지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뜻을 옳게 분별하여 신앙적 기반이 확립되어야 할 것과 또는 적당한 시기 선택과 오랜 준비로써 성취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이런 기본 요소가 확립되기 전에 성전 건축을 강행한다면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기 보다는 오히려 가리워지기 마련인 것입니다. (2) 참된 평화의 사람이어야 합니다(대상 22:8-10). 성전 건축 거절의 둘째 이유는 본문에 기록은 없지만, 대상 22:8-10에 “너는 피를 심히 많이 흘렸고 크게 전쟁하였느니라 네가 내 앞에서 땅에 피를 많이 흘렸은즉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한 아들이 네게서 나리니 저는 평강의 사람이라 저가 내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할지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 속에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수 있는 자의 기본 자격을 볼 수 있으니 그것은 피 흘린 손으로 할 수 없으며(사 1:15) 오직 평화의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보면 여호와의 전이란 그 얼마나 신성한 성이 요구되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집은 거룩하니만큼, 그만치 세우는 자의 신성이 요구된다는 것뿐입니다. 교회를 세우거나 성전을 짓거나 하는 자들은 그만치 신성해야 된다는 진리를 이 귀절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3. 여호와 집을 통한 축복(8-17절) 여호와의 집을 세우고자 하는 다윗에 대하여 이상 두 가지 이유, 즉 선지자 나단을 통하여 첫째 이유를, 그리고 직접 다윗에 대하여는 둘째 이유를 각각 들어 그 요구를 거절하셨던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선한 요구가 거절되고 지향하던 목표가 좌절될 때 크게 실망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성전 건축의 실패로 오히려 더 큰 축복이 약속되어 있음을 여호와께 보장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축복은 대략 세 가지 내용으로 열거됩니다. (1) 다윗이 과거에 받은 은혜를 상기시켜줌(8-9절). 여호와께서 다윗으로 하여금 비천한 목동시절에 취하여 하나님의 백성, 즉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아주셨고(8절),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가 다윗과 동행하여 모든 대적을 싸워 이기고 승리케 하여 그 이름을 존귀케 하여 주었습니다(9절 ). 이 사실이야말로 끝없이 감사할 조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윗 뿐 아니라 이런 경우에 누구나 감사할 일입니다. 그러므로 바울도 이 사실을 일생을 통하여 감격하고 감사하였습니다. (2) 하나님의 축복이 장래까지 지속된다는 것입니다(10-13절). 하나님은 다윗으로 하여금 일정한 곳에 영주하게 하기 위하여 이스라엘나라를 세워 다시는 유랑생활을 하지 않도록 할 것이며(10절), 노경에 네 몸에서 낳을 자식(솔로몬)이 대를 이어 축복을 받게 되리라는 것입니다(12절 ). 아비의 이상을 자식이 실현한다면 이는 축복의 지속을 의미합니다. 다윗의 업적이 아들 솔로몬에게 계승되어 축복이 지속, 확대된 것입니다. (3) 다윗 왕조의 영속성을 뜻함(11, 14-17). 11절에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이루고” 라고 한 사실에서 이 경우의 “집”은 왕조를 뜻하는 것으로, 곧 다윗 왕국의 영속성을 의미합니다. 여호와는 아버지가 되고, 솔로몬을 비롯한 다윗의 자손은 아들이 되어 이로 말미암아 부자 관계가 수립됨으로(출 4:22, 신 14:1, 호 11:1), 만일 다윗의 후손이 잘못할 경우 아비가 자식을 징계하듯 징계하는 일은 혹 있을 것이나(14절), 앞서 폐위된 사울 왕가처럼, 왕위를 박탈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며(15절), “네 집과 네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보존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고 왕국의 영원성을 약속해 주신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축복의 보장을 받은 다윗의 왕국도, 사실은 그의 손자 르호보암 때에 남, 북으로 분열하였고 바벨론의 침략으로 말미암아 망국의 비운을 맛보았으며, 귀국 후 얼마 지나 로마 대장 티누수에 의하여 마침내 쇠망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예언의 성취를 어떻게 보아야하겠습니까? 다윗의 아들이란 직접적으로는 솔로몬을 지칭하나, 관계상 의미로서는 메시야에 대한 예언으로써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윗의 왕국은 오늘까지 교회를 통하여 계속되며 마침내 그리스도의 왕국의 세계 지배의 꿈은 그의 재림과 함께 달성되고야 말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저 유명한 성 어거스틴이 그의 명저서 신의 도성 ( city of god )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모든 나라는 다 쇠망할 것이며, 그것이 비록 “불멸의 성은 영원의 성이라”고 자부하던 로마일지라도 쇠망할 날이 오게 되지만, 오직 영원히 쇠하지 않는 나라,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왕국이며 이 왕국의 영원성을 보장받은 자가 바로 그리스도의 조상으로서의 다윗이라는 점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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