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밧세바 사건 (삼하 11:1-27)

첨부 1


다윗에게는 헷 사람 중에서 고용한 우리야 라고 하는 계급이 높은 고용 장교가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밧세바라는 히브리 부인이 있었습니다. 우리야의 집은 넓은 정원이 있는 전형적인 동양식 집이었고, 밧세바는 저녁 때 그 정원에서 목욕을 하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옥상에서 산책 하다가 목욕을 하고 있는 밧세바를 보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밧세바에 대한 욕정이 일어나 간음을 하였습니다. 밧세바가 잉태하게 되자 자기의 범죄 결과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였습니다. 다윗은 전쟁 상황의 보고를 듣는다는 핑계로 암몬 사람과의 전쟁에 가 있는 우리야를 본국으로 불러 집에 자도록 마련하였습니다. 그러나 전쟁 중에는 성교를 피한다는 무사의 서약을 지켜 우리야는 왕의 문전 궁터에서 자고 집으로 가지를 않았습니다. 이 첫번 시도에 실패하고 나서 다윗은 우리야를 만취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또 다시 자기 목적을 성취하지 못했습니다. 우리야는 요압 장군에게 자기를 전쟁 한복판에 놓아 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지참하고 요압에게로 돌아갑니다. 이 계략은 성공해서 우리야는 살해되었고, 밧세바는 아들을 낳았습니다. 다윗의 소행은 하나도 용서받을 만한 요소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다윗의 여생에 있어서 그의 가정에 임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힘의 극한 점이 있기 마련입니다. 본 장은 다윗의 능력이 극한 점에 이른 장면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다윗은 이미 사방에서 난동하는 강적들을 격파하고 그의 외전에서의 최후의 전쟁인 암몬 전쟁에 임하였으나, 이제 그 수도 람바의 함락이 눈앞에 있어 암몬전쟁에서 이미 승리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같이 왕으로서 권위를 세계에 떨치게 된 순간 그는 영광의 정상에서 심연의 구렁텅이로 전락하고야 말았습니다. 사 14:12에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는고” 라고 했고, 마 11:23에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고 했습니다. 행 13:22에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라고 왕으로 선택받은 당시 여호와께 영합되었던 다윗이었는데, 본 장 마지막 절에 보면 “다윗의 소이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더라” 라고 추상같이 준엄한 경고를 내리고 있으니, 이 얼마나 대조적인 일입니까? 오늘은 세칭 “밧세바 사건”이라 불리 우는 다윗의 생애의 가장 추악한 일면을 노출하는 범죄사실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다윗의 계획이 악했습니다( 1-l7절) 2절에 “그 곳에서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워 보이더라”고 했습니다. 백주몽중에서 깨어나서 왕궁 옥상을 산책하던 이 태만한 왕의 눈에 비친 것은 목욕하는 미녀의 나체이었습니다. 일찌기 에덴에서 금과(禁果)를 바라보던 여인을 미혹하여 타락케 한 저 옛 뱀 사단은 이 태만한 왕의 눈을 나부(裸婦)의 알몸에도 초점을 모으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이 눈앞에서 목욕하는 미녀를 바라보았다는 것이 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여인을 보고 음욕을 품는 것”이 죄가 되는 것이며, 나아가서 그를 유치할 계획을 세운데서 결정적 범죄의 단계로 전락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범죄의 과정은 생각하고 (아름답다 생각함), 느끼고(사모함), 유혹하려는(결심함), 즉 이성과 감정과 의지가 단계적으로 작용하여 범죄가 형성되게 마련입니다. (1) 지능적인 범죄(2-13절) 다윗은 미인 나부를 보자 순간적으로 정욕이 발동하여 즉각 그를 유치하는 공작을 개시하였는데 그것은 지능적 범죄의 계획이었습니다. 그는 우선 사람을 보내어 그녀의 신분을 확인하여 보았는데, 그녀는 지금 암몬 전선에 출정 중인 헷 사람 우리야 장군의 아내로서 이름이 밧세바 였는데, 우리야 장군이야말로 자신의 충복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밧세바를 단념했어야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자신을 제어하기에는 그의 힘이 너무 약하였던 것입니다. 이에 다윗은 즉시 사자를 보내어 그녀를 불러다가 동침한 후 일단 귀가시켰으나 얼마 후 그녀가 잉태하였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에 놀란 다윗은 자신의 범죄행위를 은폐키 위한 비상책을 강구하였는데, 그 첫 단계로 우리야를 전장에서 소환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표면상 전황보고를 받는다는 형식을 취하고는 그를 귀가시키며 “편히 쉬어 전장의 노독을 풀도록 하라”고 부드러운 어조로 말한 다음, 뒤따라 식물까지 선물도 보내주었습니다. 아무런 내용을 모르는 우리야로서는 성은이 망극할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야는 애국자이며, 충신이었기 때문에 왕궁문전에서 신복들과 같이 자고 이틀이 지나도록 집에는 들리지도 않았습니다. 이 소문을 전해들은 왕이 그 이유를 묻자 “여호와의 언약제와 모든 장병들이 영채 가운데 있으며 총사령관 요압과 왕의 신복들이 모두 바깥들에 유하는데 내 어찌 귀가하여 가족과 같이 식물을 먹고 아내와 동침하겠는가" (12절) 라고 대답하였습니다. (2) 잔인한 범죄(14-17절) 이로써 첫 계획에서 실패하자 두 번째는 악독한 지능적 살해책을 계획하였으니 즉 2일 후 전선으로 귀대하는 우리야 편에 편지를 보내어 우리야를 맹렬한 전투의 선두에 세우고 적을 공격하다가 불시에 장병으로 후퇴케 하여 그를 고립시켜 죽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 천인공노할 계획은 드디어 명중되어 우리야는 마침내 다윗의 간계에 빠져 천추의 한스러운 암몬전선에서 이슬로 사라졌던 것입니다. 그 후 다윗은 밧세바의 몽상(夢想) 기간이 지나기를 기다려 합법적인 결혼형식을 취하여 세상의 이목을 속이고 불법으로 부하의 아내를 취하였던 것입니다. 이상에서 언급한 이른 바 밧세바 사건에서 다윗의 지능적인 잔악행위를 추려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간음행위(4절, 27절) 부하의 아내를 취한 것. 2) 지능적인 은폐책(6-8절):우리야를 위로하는 형식을 가장한 은닉책. 3) 살해책(14-15절). 계획적으로 죽이려고 한 것은 고사하고 그 계략을 지시하는 편지를 본인인 우리야에게 지참하여 전달케 한 행위는 잔악의 극치라 할 수 있습니다. 4) 잔학성(15-17절). 자신의 부하를 적군에 손에 죽게 한 죄입니다. 이리하여 이스라엘의 승패가 달린 최후 최대의 전쟁인 암몬 전선에서 이스라엘의 적인 암몬인의 손에 자기의 충용 무비의 신복을 죽게 만든 시실, 이것이야말로 국가의 반역행위로 온 국민들에 규탄을 받아야 할 대역죄가 아닐 수 없습니다. 5) 마비된 양심(27절) 다윗이 우리야의 전사 소식을 듣고 이를 사자에게 “걱정하지 말라 칼은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죽이니라”고 말하고는 합법을 가장하여 밧세바와 결혼하고 아무런 뉘우치는 기색이 전혀 없던 것은 그의 양심이 마비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밧세바 사건에서 다윗의 범죄행위에서 죄의 확대성과 발전성 내지 성장성 등을 보게 됩니다. 2. 악한 인간관계 (1) 밧세바와의 관계에서(1-5절) 밧세바의 인격과 신앙에 대하여 잘 알 수는 없지만 대단한 미모를 갖춘 여자라는 것이 성경이 보여주는 드러난 인상입니다. 하지만 그인 육체적인미모만이 다윗의 연모의 대상이 되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녀가 적어도 장군의 아내였으니 만치 식견도 있고 품위도 갖춘 이상형의 여인이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다윗이 왕궁 옥상에서 그녀의 육체미를 식별할 수 있었을 정도라면 바로 왕궁과 가까운 곳에 집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밧세바는 또한 지나칠 정도로 순종형의 사람처럼 느껴집니다. 당시의 전제 군주국가에서는 왕명을 어길 수는 없다 하더라도 그녀는 자신의 정조마저 유린하려는 타락한 왕에 대하여 아무런 반항도 없이 이에 응하고 있음을 볼 때 지나친 맹종의 태도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2) 우리야 장군과의 관계에서(6-16절) 다윗의 범죄의 잔악성은 우리야 장군의 충성과 애국심과 선량한 품성 때문에 더욱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우리야는 임금에게 충신이며, 나라에는 애국자이며, 사명에는 충성했고, 동료에게는 의리가 있는 자였습니다. 우리야는 자기를 죽이라는 왕의 시달문을 자기 손으로 들고 가면서도 왕의 친서라고 이를 읽어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만큼 우리야는 다윗의 충복이 었던 것입니다. (3) 요압과의 관계에서(14-21절) 요압 장군 역시 밧세바의 사건에 협력자이었습니다. 그가 다윗의 충복이라는 점은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가 우리야 암살계획을 알고 있었는데, 그것은 다윗의 지시를 받은 사실로도 짐작이 가지만, 21절에서 우리야의 전사 소식을 전하려 할 때 전령에게 지시하는 말 가운데 “왕이 우리야와 동시에 죽은 병사의 소식을 듣고 격노하면 우리야도 죽었다 전하라”고 한 지시 사실로 미루어 그는 모든 것을 알고서 우리야 살해의 하수인이 된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요압과의 관계에서도 역시 잘못은 다윗에게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다윗은 요압의 성을 이용하여 자기 개인의 향락을 취하는 도구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흔히들 다윗의 범죄를 시각을 통하여 순간적인 범죄로 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리 신앙의 사람일지라도 미모의 여인 앞에서는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요 9장에 예수님에게 많은 무리들이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들린 여인을 데리고 와서 돌로 치려 할 때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죄 없는 자가 먼저 돌을 들어 치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모인 무리들이 다 슬금슬금 달아나 버리고 말았습니다. 생각해 보니 자기들도 다 그러한 죄를 범하고 있었으며, 또한 죄를 범할 가능성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누가 다윗을 향하여 돌을 들어 칠 자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오직 이러한 범죄에 빠지지 않도록 항상 기도해야 하며 그러한 환경에 있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