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압살롬의 야심 (삼하 15:1-6)

첨부 1


압살롬은 궁전에서 자기의 지위가 회복되자 마자 왕위에 오르고자 하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고통 속에서 겸손할 줄 몰랐던 압살롬은 자신의 고통이 끝났을 때 교만이 트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그는 왕자라는 명예와 왕인 아버지의 후계자가 된다는 기대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당장 왕이 되고 싶었습니다. 압살롬의 어머니는 왕의 딸이었습니다. 그래서 압살롬은 자신을 높이 평가했으며 이새의 아들에 불과한 아버지를 경멸했는지도 모릅니다. 그의 어머니는 이방신을 섬기는 왕의 딸이었습니다. 그것이 이스라엘의 평화에 대해 무관심하게 하는 이유였는지 모르겠습니다. 다윗은 이방 불신자와의 이질적인 결혼으로 불행의 벌을 받았던 것입니다. 압살롬이 왕의 총애를 다시 받게 되었을 때 그가 만약 고마운 생각을 가졌다면, 어떻게 아버지께 은혜를 보답하며 그를 기쁘게 할까를 생각하고 노력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어떻게 하면 왕을 약화시킬 수 있을까를 음모했습니다. 압살롬이 민중의 존경과 환심을 일시에 끈 것은 두 가지 입니다. 하나는 위대하게 자신이 보여지게 하는 것이요, 또 하나는 자신이 선한 사람으로 보여지게 한 것입니다. 1. 압살롬이 위대하게 보여짐(1절) 압살롬이 그 출입에 있어서 위엄을 보여 민중들에게 인기를 끌었습니다. 본문 1절에 “이후에” 라는 때는 다윗이 압살롬을 불러서 입을 맞추며 부자의 정을 나눈 다음입니다. 부자의 정은 정대로 나누고 법은 법대로 처리 하여야 했을 터인데 그렇게 하지 못했기에 압살롬은 자기 죄책을 갖지 못한 것이 분명합니다. 죄책을 분명히 하지 않은 채 저들의 화해는 더 큰 불씨를 갖게 된 것입니다. 압살롬이 귀국을 원한 것이나, 아버지를 뵈옵기 원한 것은 다 자기 일을 하려는 속셈에서 찾은 것이 분명합니다. 자식이면 아버지를 위하여, 국민이면 국가를 위하여, 우리 신앙인으로서는 하나님을 위하여 라는 등등의 생활관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압살롬은 “자기를 위해서” 산다는 생활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빌 2:4에 “각각 다른 사람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고 했으며, 롬 15:2에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즉 남을 위한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요, 이웃을 기쁘게 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압살롬은 자기를 위해서 병거를 예비하였고 말들을 준비하였습니다. 압살롬은 이스라엘 왕이 못 가게 하는 그술 땅에서 피난시절을 보내면서 자기 아버지가 타는 초라하게 보이는 암나귀보다 자기를 돋보이게 장식할 멋진 말을 번식시키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압살롬은 예루살렘에 있을 때 보다 장엄하고 화려하게 보여 백성들은 그를 왕으로 삼으려 했습니다. 사무엘은 그가 임금이 되면 어떤 정책을 사용할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삼상 8:11에 “너희를 다스릴 왕의 제도가 이러하려니와 그가 너희 아들들을 취하여 그 병거와 말을 어거케 하리니 그들이 그 병거 앞에서 달릴 것이며” 라고 했는데, 이것이 압살롬의 정책입니다. 압살롬은 자기 앞에 호위하는 자들을 50명이나 세워 그 위엄이 당당하게 보였습니다. 그런 행렬은 왕궁을 장식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다윗은 그것을 묵인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나뿐 욕망보다 교만에 의하여 압살롬은 반란을 일으켰고 훗날 파멸 당한 것입니다. 2. 압살롬이 선하여 보여짐(2-6절) 압살롬의 이중인격을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송사 때문에 왕을 찾아오는 자들을 직접 이끌면서 친절을 베풀었습니다. 그는 백성들 앞에서 재판장으로 자처하였고 그에게 오는 자들을 붙들고 입맞춤으로 그들의 마음을 도적질하였습니다. 그는 이와 같은 활동에는 자기에 대한 거짓 선전, 민중을 속임, 그들에게 아첨하는 불의가 가득하였던 것입니다. 모든 거짓된 지도자들은 언제나 자기의 야욕을 채우기 위하여 이와 같이 간교한 수단을 씁니다. 다스릴 줄 아는 자는 복종할 줄도 아는 사람입니다. 선한 재판관이 되고 좋은 임금이 되려고 꾸미는 것은 자기를 속이고 남을 속이는 것 뿐입니다. 진실로 선한 사람은 남의 입장에서 선한 척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처지에서 선한 것입니다. 압살롬은 평온한 위인처럼 살 수 있었고 원하는 모든 즐거움과 화려함은 다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것들로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한 나라의 권력을 취고 싶었던 것입니다. “내가 재판장이 되고”란 말을 한 압살롬은 정치 야욕심을 노골화하여 드러낸 것입니다. 그가 소원 성취하여 아버지 다윗 왕에게 자기를 재판장으로 등용해 주기를 원한다면, 자신의 법률에 관한 것을 찾으려고 노력했더라면(출 18:21) 그는 확실히 재판장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과정을 무시하고 또한 다윗 왕이 자기의 소원을 거절할 것으로 알았기 때문에 여기에 불만을 품었던 것입니다. 압살롬은 자기를 찾아 송사하려고 온 사람들을 재판하고 싶었습니다. 송사하러 온 모든 사람들이 어떤 문제를 가지고 왔는지를 생각도 하지 않고 주관하려고만 했습니다. 그저 도와줌으로 민중에게 자기를 지지자로 삼게 했습니다. 크던 작던 송사자가 있으면 “네 일이 옳고 바르다”라고 인정을 해 주었습니다. 한쪽 말만 듣고 처리하는 이가 어찌 좋은 재판관이 될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그가 모사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가 나뿐 동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좋은 재판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백성들에게 압살롬은 “우리의 선한 재판관이라”는 말을 많이 듣게 되었습니다. 압살롬은 일찍 일어나서 다른 왕자들을 설득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는 재판정 성문 곁에서 공사를 급히 행하고 열성으로 공의 베풀기를 쉬지 않았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호기심을 가지고 노력했습니다. 그는 송사하러 온 사람들에게 2절에 “너는 어느 성 사람이냐” 하고 자기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을 표명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어떤 사람이건 그에게 절하러 가면 친구처럼 5절에 나타나 있듯이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야심있는 행위는 자주 겸손한 모습을 보이며 사람을 속입니다. 그리하여 압살롬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의 다윗 향한 마음을 도덕질하여 자기 백성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압살롬은 시 10:9-10에 있는 말씀처럼 “사자가 그 굴혈에 엎드림 같이 저가 은밀한 곳에 엎드려 가련한 자를 잡으려고 기다리며 그 강포로 인하여 의로운 자가 넘어지리이다”고 한 사람에 해당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저에게 빼앗긴 그 마음들이 언제인가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