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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다윗과 아히도벨 (삼하 17: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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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새가 노련한 정치가로서 그가 아비도벨의 모략을 파하여 전세를 역전시킨 사실만으로도 그의 정치적 수완은 가히 짐작히 갈 일입니다. 다윗은 감람산 마루턱에서 후새를 만나 그의 고령으로 인하여 피난길에 누가 되리라는 것을 이유로 후새에게 말하기를 “그대는 즉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압살롬의 신하로 가장한 후 이로 말미암아 아히도벨의 모략을 깨고 제사장들과 의논하여 반란군의 동향을 알려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15:32-37). 이에 후새가 다윗의 명령으로 압살롬에게로 되돌아 갔을 때 바침 압살롬은 참모회의를 열고 작전계획을 세우던 중요한 순간이었습니다. 거기서 아히도벨은 그의 신출귀몰하는 제 2의 계략을 꾸며내고 있었습니다. 아히도벨이 압살롬에게 이르기를 “나에게 12, 000명의 병력을 준다면 오늘밤 당장 다윗을 엄습하여 백성을 이산시키고 그를 고립시켜 타살한 후 백성들은 모두 압살롬에게 귀순시키겠나이다” 라고 제안했습니다. 이 사실이야말로 아히도벨의 기발한 책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바로 이 때 후새는 압살롬이 자기의 의견을 묻는 기회를 이용하여 태연히 말하기를 “왕도 아시는 바와 같이 왕의 부친은 명장이요 그의 추종자들도 용사이니만큼 용사들은 격분하여 있고 부친은 병법에 능한 자인즉 기습작전이란 위험한 일로서는 성공율이 희박한 일입니다” 라고 역설한 후 “이제라도 전국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에 군사를 급모하여, 이를 왕이 친히 인솔하고 우세한 군세로 저를 엄습한다면 능히 전멸시킬 것입니다” 라고 진언하여 허영심이 강한 압살롬의 마음을 움직여서 군사를 모집하는 지연작전을 써서 다윗 일행을 안전한 곳으로 피신케 하고 그동안 병력을 강화하여 역습하도록 충분한 기회를 갖게 하였습니다. 아히도벨은 다윗이 지치고 낙담하였을 때에 기습하여 그를 죽이자고 논하면서 군대를 모아 빨리 다윗을 추적할 것을 압살롬에게 조언합니다. 그러나 압살롬은 이 건전한 아히도벨의 조언에 대해 의심을 품고, 한편 역도들의 계획을 전복시킬 목적으로 다윗의 보냄을 받은 후새에게 의견을 물었습니다. 후새는 전쟁에 대한 다윗의 경험을 강조하면서 신속한 추격을 조언한 아히도벨의 의견에 반대하였습니다. 다윗의 호위병은 잘 훈련 되었으므로 압살롬이 다윗을 납치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오히려 압살롬의 훈련받지 못한 군사가 함정에 빠져서 크게 살육 당할 것이며 그런 결과는 압살롬의 추종자들의 사기를 저하시킬 것 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후새는 충분히 승리를 거둘 수 있는 큰 군대를 이스라엘 전체에서 모을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하였습니다. 오직 많은 숫자만이 다윗의 경험있는 군대를 패주시킬 것이라는 것입니다. 압살롬은 즉시 이에 응하였고 따라서 후새의 계략은 성공하였습니다. 압살롬이 아히도벨의 좋은 조언을 무시한 사실은 여기에 하나님의 역사가 작용한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14절). 이리하여 후새는 이를 제사장에게 통고하였고 제사장은 다시 발이 빠른 아히마아스로 하여금 다윗에게 전령을 보내어 당장 요단강 도하작전을 감행케 하여 이로 말미암아 아히도벨의 계략을 파하고 위기일발에서 다윗 일행을 구출하였던 것입니다. 한편 아히도벨은 자기의 계획이 좌절된 것을 비관하여 고향으로 가서 스스로 목매어 자결하고 말았습니다. 후새야말로 유능한 정치가이며 또한 훌륭한 책략가일 뿐 아니라 무엇보다 그는 다윗 왕의 충신이었습니다. 본문에 나타나 있는 다윗을 둘러싼 인간들의 모습이야말로 실로 천태만상이었습니다. 압살롬의 반역이 있고, 다윗의 진실이 있으며, 시바의 참소가 있고, 시무이의 저주가 있으며, 그리고 아히도벨의 배신이 있고, 후새의 충성이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후새는 압살롬의 반란 진압의 공로자 이며 다윗 왕국의 충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본문을 통해서, 처음에는 다윗의 고문이었으나 압살롬 반란이 발생하자 압살롬의 고문으로 변절한 아히도벨에 대해서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히도벨의 뜻은 “어리석은 동생” 이란 뜻입니다. 그는 헤브론 근처인 길로 출신입니다. 아히도벨은 다윗 왕의 모사였습니다. 그는 다윗 왕이 헤브론에서 지난 6년 동안 유다를 다스릴 때 왕께 충성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왕도를 예루살렘으로 옮긴 후 다윗 왕이 남북조를 통치할 때도 얼마 동안은 왕의 특별보좌관으로써 충성을 다했습니다. 당시 다윗 왕의 행정부 요원을 살펴보면 선지에 나단이요, 제사장에 엘리아살과 이다말이요, 찬양대에 아삽, 헤만과 여두둔이요, 요압은 군대장관이 되고, 다윗의 아자비 요나단은 서기관이 되고, 후새는 왕의 벗이 되고, 다윗의 아들들은 대신이 되고, 아히도벨은 모사가 됐습니다. 그 중에서도 아히도벨의 인기가 높았던 것은 그가 신앙도 좋았고 두뇌도 명석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판단력이 정확한 분이었습니다. 그 분에 대해서 성경은 말씀합니다. 삼하 16:23에 “아히도벨이 베푸는 모략은 하나님께 물어 받은 말씀과 일반이라”고 했습니다. 선지자의 말씀과 같이 아주 정확하다는 말씀입니다. 더우기 다윗 왕 시대에는 외적의 침략이 계속되던 때였습니다. 블레셋, 모압, 소바, 수리아, 에돔, 암몬, 수리아, 블레셋 순으로 평생을 전쟁을 했습니다. 다윗과 이스라엘은 그 때 그 때마다 아히도벨에게 물어서 전쟁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촉망을 받던 모사가 아히도벨이 왜 어찌하여 나귀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가 자기 집을 정리하고 스스로 목매어 죽었습니까? 그가 실패한 약점을 이 시간에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1. 아히도벨은 다윗 왕의 모사로써 다윗 왕 곁을 떠났습니다 아히도벨은 인생 전반기를 다윗 왕의 곁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인생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왕의 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가 떠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아히도벨은 밧세바의 조부였기 때문입니다(삼하 23:34,삼하 11:3). 다시 말하면 다윗이 우리야를 죽이고 손녀 밧세바를 취한 일에 대하여 아히도벨은 아주 못마땅하게 여기었다 라는 해석이 지배적입니다. (2) 교만 때문입니다. 인간은 연약하기 때문에 높은 지위에 오래 있으면 교만한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아히도벨은 왕을 우습게 어졌습니다. (3)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믿음이 떨어지니 하나님의 충종인 다윗이 밉게 보였습니다. 그는 결코 다윗의 곁을 떠나지 않았어야 합니다. 다윗의 곁을 떠난 것은 타락의 시작이 된 것입니다. 옛날 고라는 레위의 증손이었는데, 고라는 성질이 오만불손하고 명예욕이 강했기 때문에 모세의 곁을 떠나 결국 하나님의 진노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모세의 곁을 떠나지 않고 있더니 모세의 후계자가 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신자 중 교역자를 멀리하다 죄악된 세상으로 타락하는 분들을 자주 보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눈의 아들 여호수아 같이 모세의 곁을 항상 같이 하시기 바랍니다. 아히도벨이 하나님의 충종 다윗의 곁을 떠난 것은 큰 손실이었습니다. 2. 아히도벨은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종을 죽이려 했습니다 불량자 압살롬은 아버지의 왕권에 도전을 했고, 다윗의 모사였던 아히도벨은 압살롬과 손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아히도벨은 악한 모략을 베풀었습니다. (1) 아버지 후궁들로 동침하소서(삼하 16:21). 패역무도한 압살롬은 온 이스라엘 목전에서 그 부친의 후궁들로 더불어 대낮에 동침을 했습니다. 물론 나단 선지자가 예언한 말씀이기도 합니다(삼하 12:12). 그러나 아히도벨의 모략은 선함이라고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2) 내가 다윗만 잡아 죽이리이다(삼하 17:1-2). 삼하 17:1-2에 “오늘밤 군사 12,000명만 주시면 내가 다윗만을 쳐 죽이리이다”고 했는데, 이것은 시간을 안 주겠다는 작전입니다. 다윗이 피곤하고 약할 때 야간작전을 하겠다는 모략입니다. 사실상 다윗은 아들 압살롬의 깁작스러운 반란을 피해 예루살렘에서 도망을 했기 때문에 600명과 어린이들의 양식을 못 가지고 나왔습니다. 다윗 왕은 너무나 급해서 신발도 못 신은 채 도망나왔던 것입니다(삼하 15:30). 만일에 아히도벨의 모략대로 정병 12,000명을 거느리고 그날밤 다윗의 뒤를 공격했더라면 다윗은 큰일날 뻔 했었습니다. 그러나 압살롬은 아히도벨의 모략이 옳다고 해 놓고 다윗의 친구 후새의 모략을 또 들었습니다. 그 때 후새는 말하기를 “왕이여 아히도벨의 모략이 선하지 못하나이다 왕의 부친과 그 중자들은 다 용사인데 지금은 새끼를 빼앗긴 곰같이 격분하였고 왕의 부친은 병법에 익은 사람인즉 12,000명 군사로선 불가하나이다 그러므로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많은 군사를 모아 이슬이 땅에 내림같이 저위를 덮고 만일 저가 어떤 성에 있으면 온 이스라엘이 줄을 가져다가 그 성을 강으로 끌어들여서 그 곳의 한 작은 돌도 보이지 않게 해야합니다” 라고 했습니다. 후새의 모략은 다윗 왕을 살리려는 지연작전을 쓴 것입니다. 압살롬은 후새의 모략이 좋은 것으로 여겨서 그 모략을 채택했습니다. 후새는 두 사신을 즉시 다윗 왕에게 보냈습니다. “오늘 밤에 왕야 나룻터에서 자지 마시고 아무쪼록 요단강을 빨리 건너가소서” 이렇게 후새의 모략대로 했더니 에브라임 전쟁에서 압살롬은 요압의 손에 죽었고, 다윗은 승리하여 예루살렘 성으로 다시 입성했습니다. 이는 여호와께서 압살롬에게 화를 내리려고 하석서 아히도벨의 좋은 모략을 파하기로 작정하셨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다윗의 승리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이었습니다. 물론 다윗은 어려서부터 병법에 익숙했고 또 군략가였으나 아히도벨의 악한 모략에는 감당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삼상 15:31에 “여호와여 원컨데 아히도벨의 모략을 어리석게 하옵소서” 하면서 하나님의 도움을 청했던 것입니다. 아히도벨은 악한 자였습니다. 이 세상의 정치적 재능은 좀 있을지 몰라도 지조와 신의는 전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3. 아히도벨은 스스로 목매여 죽었습니다 압살롬이 자기의 모략대로 하지 않음을 보고 앞을 내다 본 아히도벨은 그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자살로 끝내고 말았습니다. 성경을 보면 삼손은 압사 자살했고(삿 16:30),사울 왕은 칼로 자살했고(삼상 31:3), 시므리 왕은 칼로 자살했고(왕상 16:18), 아히도벨과 가롯 유다는 목을 매어서 자살을 했습니다(삼하 17:23, 마 27:5). 아히도벨이 자살한 나이는 60대에서 70대로 계산을 합니다. 여생도 얼마 안 남은 그가 만일 다윗 왕 앞에 무릎을 꿇었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가 자살하는 모습을 성경은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선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고향으로 돌아가 자기 집에 이르러서 집을 깨끗이 정리하고 스스로 목매어 죽었습니다. 그의 시체는 그 아비의 무덤에 장사되었습니다. 성경에는 자살을 허락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로지 영생의 허락만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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