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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압살롬의 죽음 (삼하 18: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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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은 자기 군대를 조직하여 세 부대로 나누어 각각 요압과 아비새(요압의 형제)와 가드 사람 잇대의 지휘하에 진군시켰습니다. 왕 자신도 출전하기를 원했지만 추증자의 강력한 만류 때문에 마하나임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들이 압살롬군을 정벌하기 위해 출발하기에 앞서 다윗은 장군들에게 자기를 생각하여 압살롬에게 친절히 행할 것을 명령하였습니다. 지금은 그 지점을 알아낼 수 없는 요단의 서쪽 지방인 에브라임의 수풀 속에서 큰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압살롬의 군대는 크게 살육되어 패주 당하였는데, 바위있는 지세와 함정이 있는 수풀은 패주하는 군대를 무찌르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압살롬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당황하였습니다. 결국 그는 생명의 종말을 맞이하게 됩니다. 압살롬은 다윗의 신하인 장군들을 볼 때 당황했습니다. 그래서 도망하던 압살롬은 참나무의 갈라진 가지에 목이 걸렸는데, 노새는 그대로 밑으로 달려 나갔으므로 목매어 달려 있게 되었습니다. 압살롬은 그의 자랑인 긴 머리로 인하여 잡히게 된 것입니다. 요압은 자기 손으로 압살롬을 살해시켰습니다. 시체는 함정 속에 던져졌고 그 위에 돌을 쌓았습니다. 압살롬이 자기를 위하여 왕곡에다 세줬던 우아한 무덤과는 너무나도 대조적으로 이것이 압살롬의 무덤이 되었던 것입니다. 반역자의 말로가 이처럼 부끄러운 것임을 산 증거로 보여주었습니다. 이제 압살롬의 최후를 좀 관찰하면서 반역자의 말로가 어떻다는 것을 알아보겠습니다. 압살롬의 머리카락이 수풀에 걸리자 노새는 그에게서 빠져 나갔습니다. 압살롬은 하늘과 땅 사이에 매달려 있었던 것입니다. 하늘에서도 쓸모없고 땅에서도 쓸모없이 양쪽에서 버림받은 사람이 된 것입니다. 압살롬은 부모에게 불효하다가 이런 벌을 받은 것입니다. 10절에 “한 사람이 보고 요압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가 보니 압살롬이 상수리나무에 달렸더이다”고 했습니다. 요압에게 보고가 들어왔는데 압살롬이 상수리나무에 달려 있다는 보고였습니다. 이 압살롬을 본 사람이 압살롬을 살리고 싶은 마음이 있었으면 상수리나무에 걸린 긴 머리카락을 베어 압살롬을 땅에 떨어지게 하고 사로 잡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압살롬을 살릴 생각이 없었기에 요압에게와서 보고한 것입니다. 압살롬을 나무에 달린 것을 보는 대로 처리하였어야 할 터인데 그대로 두고 요압으로 보고만 하였습니다. 11절에 “요압이 그 고한 사람에게 이르되 네가 보고 어찌하여 당장에 처서 땅에 떨어뜨리지 아니하였느뇨 내가 네게 은 열개와 띠 하나를 주었으리라” 고 했습니다. 공을 세우면 은 열게와 띠를 주는데, 이것은 군인의 몸에 장식하는 것으로 공을 사랑하는 버클 고리인듯 합니다. 이런 표창을 할 터인데 그대로 두고 왜 보고하느냐고 반문했습니다. 그러나 그 병사는 압살롬을 대적하는 열심은 대단하였으나 압살롬을 죽이는 일에는 자기 결단으로 행하지 않았습니다. 요압이 말하기를 그를 “당장에 처서 땅에 떨어뜨리라” 했을 때 12절에 “그 사람이 요압에게 대답하되 내가 내 손에 은 천개를 받는다 할지라도 나는 왕의 아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이 보고자는 다윗 왕이 출전할 때에 장군들에게 한 말을 분법하게 들은 것을 상기하여 요압 장군에게 말한 것입니다. 그를 적대하여 싸웠지만 감히 왕의 아들에게 손을 대지는 못할 것으로 여긴다는 고백을 한 것입니다. 그는 다윗 왕의 명을 준수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정에 강하고 의에 약 한 것이 다윗의 약점이며 국가와 민족을 생각할 때, 더우기 도의면을 생각할 때 이런 역적이요 반민족적이요 반국가적인 반역자를 두둔하라는 말은 실언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요압은 다윗 왕에게 말하기를 삼하 19:6에 “만일 압살롬이 살고 오늘 우리가 다 죽었더면 왕이 마땅히 여기실 뻔 하였나이다”고 하였으니 다윗이 한 말은 오히려 망신만 당할 것입니다. 13절에 보고자는 “아무 일도 왕 앞에는 숨길 수 없나니 내가 만일 거역하여 그 생명을 해하였더면 당신도 나를 대적하였으리이다”고 했습니다. 그 보고자의 변명은, 왕을 위한 전쟁에 출전한 나로서는 왕 앞에서 무엇이든지 모르게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만일 왕의 말을 거역하였더면 요압 잠군도 나를 문책할 뿐더러 중벌을 내리실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 말에는 당시의 정치 행정이 다윗이 익숙하게 제반사를 장악하였음을 알아볼 수 있고, 또 요압도 강한 장군으로 그 성장이 과격한 사람임을 보여줍니다. 압살롬에게 손대는 것은 왕에게 거역하는 것이기에 그 집행은 요압 장군이 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요압은 이처럼 신중한 사람을 반대할 수도, 책망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요압은 답변이나 논쟁을 중단하고 서둘렀습니다. 14절에 “요압이 가로되 나는 너와 같이 지체할 수 없다 하고 손에 작은 창 셋을 가지고 가서 상수리나무 가운데서 아직 살아있는 압살롬의 심장을 찌르니”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압이 왕의 명령을 거역한 것을 의롭게 볼 수 있을지 의심스럽습니다. 이것은 압살롬을 너그럽게 대접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요압의 판단은 옳았으며, 이스라엘 군대의 생사를 가르는 전투에서는 바른 판단이었고, 이 판단은 다윗 왕을 위해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관대한 아버지로서의 다윗의 명령은 거슬렸지만 요압은 나라와 왕을 위해서 매우 잘한 것이었습니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나라와 왕에게 위험했을 것이며 온 백성과 다윗 군대는 다윗에게 충성을 하지 아니했을 것입니다. 15절에 “요압의 병기를 맡은 소년 열이 압살롬을 에워싸고 쳐 죽이니라” 고 했습니다. 이제 압살롬은 죽고 전쟁은 끝났습니다. 백성들은 다윗 왕께 충성하였고 피 흘리는 전쟁이나 배반들을 가둘 일도 없어졌습니다. 모든 백성이 자기 분업에 임하면서 왕의 다스림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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