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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세바의 반역 (삼하 2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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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전쟁이 있게 마련이지만 그 중에는 민란이란 것이 또한 있습니다. 고대 전제 군주국가에서는 민란을 무조건 왕에 대한 반역행위로 물아 엄히 다스려왔지만, 역사기의 공정한 평가로 볼 때 그것은 왕권의 청포에 대한 민중의 봉기로써 이를 민주회복의 민권운동이라고 보아 오히려 높이 평가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본장은 이른 바 세바의 반란에 대하여 기술하고 있습니다. 세바의 난의 경우, 그 성격상으로는 민란이라고 할 수는 있지만, 이를 순수한 민권운동이라고 규정지을 수는 없습니다. 그 이유는 반란 주동자가 베냐민 족에 속하는 난류에 불과하였으며, 그가 정세판단을 잘못하여 다윗의 정부환도에 따르는 유대와 이스라엘간에 감정의 불일치한 기회를 이용하여 다윗 정부를 도괴하고 정권을 장악하려는 일종의 정치적 야욕에서 유발시킨 것으로, 말하자면 다윗 왕권에 대한 반역행위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세바의 난이란 곧 압살롬의 딘 평정 후 전후처리상 차질의 기회를 틈타 야기되었던 또 하나의 반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윗 왕은 이 반란에 크나큰 충격을 받았으며 또한 신임 사령관인 아마사를 잃었을 뿐 아니라 마침내는 이로 말미암아 남북분열이 편 원인을 형성하는 결과를 빚어냈던 것입니다. 유다와 이스라엘 사이의 분쟁은 또 다른 베냐민 사람인 세바의 영도 아래 공개적인 반역으로 일어났습니다. 다윗은 압살롬의 반역군의 사령관이었던 아마사를 신임하여 유다 사람들을 이끌어 요단을 건널 때 자기를 맞으러 모여 들었던 세바와 이스라엘 사람들을 추격케 하였습니다. 아마 다윗은 압살롬의 죽음에 대한 살아있는 원한 때문에 일부러 요압을 무시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어쨌든 요압과 아비새는 아마사가 세바를 추격하는 일에 더딘 것을 보고 다윗의 고용병과 함께 아마사의 뒤를 쫓아갔습니다. 요압은 반역적으로 아마사를 베고 맹렬히 추격을 하여 아벨과 벧마아가의 성읍에서 세바를 포위하였습니다. 그 때 그 성에 살고 있는 지혜있는 여인이 개입하여 성벽 위에서 요압과 담화하면서 만일 그 성읍이 무사하기만 한다면 세바의 머리를 주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그래서 세바 때문에 곤경에 빠진 주민들은 반역자를 처단하고 그의 머리를 성벽에서부터 요압에게 내던졌습니다. 이리하여 그 성읍은 포위가 풀리었고 세바의 모반은 좌절되었습니다. 1. 세바의 반란의 원인(1-3절) 다윗이 예루살렘에 환도하는 일에 유다 지파가 솔선하였습니다(19:14). 이 때문에 이스라엘 열 지파는 불평을 하게 되었습니다(19:41-43). 이것을 틈타서 세바가 다윗에게 대하여 반기를 들은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자의 일은 이런 가운데서도 형통합니다. 다윗의 군대는 세바의 무리를 진압시켰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였던 것입니다. 압살롬의 난 평정 후 다윗 정부의 환도를 계기로 이를 환영하려는 두개의 계열이 있었는데, 이스라엘 족과 유대 족이었습니다. 북방의 왕대한 판도에 산거하는 열 지파를 포옹하는 이스라엘이 선수를 써서 환영준비를 서둘고 있을 때, 다윗은 자신의 출신 지파인 유대가 잠잠함을 보고는 제사장들을 선동하여 왕으로서의 자신의 환도를 환영하도록 주선한 후 이스라엘 족을 전혀 무시한 체 유다 지파만의 단독적인 환영을 받으며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였던 것입니다. 그 때 베냐민 족에 속하는 세바란 자가 분노한 군중들을 선동하여서 이른 바 세바의 반란을 일으켜 다윗 정부에 대하여 정면으로 딴기를 들고 일어났던 것입니다. 세바가 전 왕 사울의 출신족인만큼 사을 왕 실각 이래 다윗과 그의 정부에 대하여 오래도록 반감을 품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겠지만, 무엇보다도 유대 족으로 하여금 환영의 기선을 잡게하려는 다윗의 계획 때문에 일종의 소외감을 느낀 민중들의 분노의 기회를 틈타서 봉기한 것은 극히 지능적이라 할만합니다. 그러므로 세바의 난의 발생원인을 전적으로 다윗에게 책임을 돌릴 수는 없다 하더라도 책임상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 수습대책 (4-13절) 급보를 접한 다윗은 서둘러 수습대책으로 반란토벌 대장에 군사령관 아마사를 임명하여 3개월내로 모병를 끝내고 반란을 진압하다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모병차 나간 아마사가 이유도 없이 정한 기간 내에 아무런 소식이 없었으므로 다윗은 장군 아비새에게 반란 토벌대장을 경질 발령하였고, 아마사를 대신하여 요압 휘하의 전 장병들과 기타 모든 용사들을 인솔하고 기브온까지 진군했는데 거기서 모병길에서 돌아오는 아마사와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요압은 아비새와 같이 세바 반란 토벌 전에 출전 중이었습니다. 요압은 새로 임명된 아마사 장군과 인사를 나누는 척하면서 아마사의 급소를 찔러 즉사케 하고는 자신이 친히 정부군을 인솔하여 세바를 추격하였던 것입니다. 아마사 장군의 참상은 요압의 시기와 질투에서 기인된 것입니다. 여기서 다윗의 군대 내부의 군기가 문란해진 사실을 보게 되는데, 여하튼 지휘봉은 또 다시 요압의 손에 쥐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요압 장군 지휘하의정부군은 단숨에 벨마가 아벨까지 진격하여 드디어 세바가 은거하는 성을 포위하고 성벽을 파괴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마침 그 성에 사는 한 지혜로운 여인이 출현하여 요압의 침략행위를 규탄하자 이에 요합 장군은 우선 스스로가 침략군이 아님을 설명하고 뒤이어 반란군 두목 세바를 잡으려는 것이라고 공격하는 이유를 전하자, 이 말을 들은 여인은 자신이 세바의 목을 잘라 양도할 조건으로 성벽파괴를 일단 중지할 것을 요구하여서 상호간에 이를 약속한 후 즉시 그 여인은 반란군 두목인 비그리의 아들 세바의 목을 베어 성벽 위에서 그 머리를 내어던졌습니다. 이에 요압은 전투 종결의 신호나팔을 불고 군대를 철수하여 예루살렘으로 개선하였습니다. 일방 다윗은 이번 세바의 난을 평정함에 있어서 역시 우수한 정치력과 명장의 솜씨를 발휘하였습니다. 다윗이 여기서 세바의 딘의 진압을 서두른 이유는 비록 그것이 압살롬의 난 보다는 그 규모에 있어서 작았지만, 성격상으로는 더욱 악질적인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압살롬의 난 역시 반란이기는 마찬가지지만, 그러나 그것이 성공했을 경우는 정권이 교체되는 것으로 끝나는 성질의 것이지만, 세바의 난의 경우는 나라가 남북으로 분열할 계기를 내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정확한 정세 판단을 하였기에 가급적 단시일 내의 평정 방침을 세우고 이를 즉각 진압시켰던 것입니다. 이리하여 다윗의 통일 왕국은 솔로몬대까지 지속되어 영화의 꽃을 피웠지만 마침내 르호보암대에 가서는 3대만에 남북을 분열시키고야 말았으니, 이 사실은 예언자들을 통하여 선왕들의 범죄의 결과라고 지적하고 있는데, 그 원인이 되는 것이 바로 세바의 난입니다. 실로 죄란 무서운 것입니다. 죄는 시간적으로 성장하고 공간적으로 팽창하기 마련입니다. “고로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하여 아비의 죄가 3, 4대까지 미친다”는 계명의 말씀과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는 야고보의 죄과의 타당성을 옳게 인식해야 하겠습니다. 3. 반란의 결과와 교훈(14-22절) 세바의 반란을 쉽게 진압한 것은 아벨 성에 있던 한 여인의 지혜 때문이었습니다. 그 여인의 지혜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대중을 구원하기 위한 담력 그는 군인들에게 자기의 말을 들어보라고 출선하면서 간곡한 대화를 청하였습니다(16-17절). 이것은 대중을 살리려는 사랑에 불타서 담대해진 자의 지혜입니다. (2) 역사적인 성을 진멸하려고 침공함에 대한 항거 그는 아벨 성이 옛적부터 “어미같은 성”인데 무슨 이유로 이 성을 멸하려 하는지 그 이유를 알기를 원하였고, 또 평화로운 해결방법을 찾지 않는 정부군의 과오를 지적하였습니다(18-19절). 이것은 그들이 신 20:10에 “네가 어떤 성읍으로 나아가든지 먼저 평화를 선언하라”고 한 계시된 말씀대로 실행하지 않았으므로 받은 책망입니다. (3) 불의한 한 사람을 제거함으로 온 성을 무사하게 한 지혜 그녀는 성읍 사람들을 설득시켜 세바를 죽이도록 하였습니다(21-22절). 대중을 설득시키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녀가 말할 때에는 그 시점에서 붙잡아야 할 의가 무엇인지 밝혔을 것입니다. 그녀는 다윗을 배반하는 일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악이라고 확신하였던 것입니다. 최후에는 의가 이긴다고 확신하는 자는 담대해지는 법이고, 마음이 평안해져서 마땅히 행할 일을 바로 제시하게 됩니다. 잠 14:1에 “지혜로운 여인은 집을 세운다”고 했습니다. 여하튼 요압은 세바의 난 토벌전에도 역시 혁혁한 전과를 올린 다윗 정부의 공신이었습니다. 더구나 그가 지혜로운 여인의 도움으로 반란군 두목 세바의 목을 받아 들고는 일단 전투를 끝내고 대량 살해를 피한 전술은 역시 우직한 그로서 지혜로운 면을 보여준 것입니다. 비록 요압의 흉검은 아마사 외 몇 사람의 장군을 살해하기는 하였으나 그도 역시 하나를 희생하여서 대량 살륙의 참상을 피할만한 지혜를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역시 무관으로서의 요압의 칭찬받을만한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바의 난의 경우에서도 가장 원칙적인 죄는 역시 다윗에게서 찾아야 합니다. 유대 족속만을 편중한 그의 경솔한 행동이 아마사 장군을 죽게 하였고, 요압을 살인자로 만들고, 세바의 목을 베는 유혈참극을 빚어내고야 만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도자의 그릇된 판단의 결과는 정말 무서운 것입니다. 다윗이 아무리 훌륭한 왕이라 하더라도 그도 역시 인간이므로 그의 성격상 결함도 있고, 그의 왕국 역시 많은 모순을 지니고 있기 마련인 것입니다. 4. 다윗 정부의 최고 지도자들(23-26절) 23절에 “브나야는 그렛 사람과 블레셋 사람의 장관이 되고”라고 했습니다. 일설에 그렛 사람은 블레셋 남쪽에서 온 용사들이고, 블렛 사람은 블레셋에서 귀화한 용사들을 가리킵니다. 브나야는 이들을 다스리는 장관이 되었습니다. 24-26절에 “아도람은 감역관이 되고”라고 했습니다. 감역은 세금을 의미하므로, 감역관은 세관장으로 생각됩니다. 사관은 수상 혹은 총리를 의미하고, 서기관은 기록하는 관리를 의미하고, 대신은 비서관을 의미합니다. 다윗 정부의 각료 명단에는 전에 볼 수 없었던 감역관이 있는데 세금도 걷으며 토목공사를 책임도 지고 백성을 동원시켜 노동을 감역케 합니다. 이것은 다윗 왕국의 왕권 확립을 과시하기도 하지만 한편 전쟁으로 말미암은 폐허된 경제, 건설을 회복하기 위해 무거운 조세와 가혹한 노동을 부과키 위해 설치된 조직이기도 합니다. 다윗에게 가장 아름다운 것은 오직 그의 신앙입니다. 그의 찬란한 업적과 그의 왕국도 영화도 카 지나간 꿈에 불과하지만 오늘까지도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은 오직 그의 신앙뿐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다윗에 대한 총괄적인 평가는 그가 성공한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오직 신앙의 사람이라는 점에서 그의 가치를 발견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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