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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다윗의 용사들 (삼하 23:8-39)

첨부 1


본문에 다윗의 영웅들에 관한 두 번째의 목록이 나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포함된 것은 다윗이 아둘람의 요새에 피난하였던 초기시대로 되돌아가는 매력있는 이야기입니다. 다윗은 블레셋 사람들이 점령하고 있는 도성 베들레헴의 우물에서 나는 샘물을 갈망했습니다. 그들의 충성과 사랑에 감동되어 다윗은 그 귀한 물을 하나님께 대한 희생물로 땅 위에 쏟고 마시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자기 무사들이 취한 희생적 모험을 생각할 때 그 물이 그의 눈에는 피와 같이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히브리 사람들에게는 피는 생명의 요소를 함축한 것이므로 언제나 하나님 앞에 쏟아버려야 하고 이를 결코 소비해서는 안되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상 11:10-41에 영웅들에 대한 똑같은 목록이 있는데 이것보다 본문이 더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1. 제 1급의 세 용사의 업적(8-12절) 본문의 세 용사는 다윗의 용사 중 제 1급에 속합니다. 이들이 하나님에게 받은 것은 체력과 용맹이었습니다. 세 용사의 이름은 첫째가 다그론 사람 요셉 밧세벳이요, 둘째가 아호아 사람 도대의 아들 엘르아살이요, 세째가 하랄 사람 아개의 아들 삼마인데, 이들이야말로 다윗의 군부의 최고의 용사들입니다. 요셉 밧세벳은 다윗의 12군단 중 제 1군장으로써 (대상 27:2) 단번에 적군 800인을 타살한 무공을 빛내고 있습니다. 다음 엘르아살은 제 2 군단장으로써 이는 이스라엘이 블레셋 군대에 패한 때에도 홀로 서서 칼이 손에 붙어 떠나지 않기까지 싸워 마침내 여호와의 도우심으로 전세를 만회케 하였으므로 백성들이 돌아와서 노획물을 취하도록 한 그야말로 최후일각까지 싸운 끈기있는 용장입니다.(9-10절). 그리고 삼마 역시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패하여 병사들이 모두 도망친 후에도 녹두나무가 무성할 밭에서 벌떼처럼 모여오는 적군을 맞아 홀로 버티고 서서 여호와의 도우심으로 큰 승리를 거둔 용사입니다.(11-12절). 특별히 더 귀한 일은 이들의 공로가 무한히 크면서도 그 승리의 영광을 오직 여호와께 돌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다윗의 군대의 정신이며 승리의 비결이기도 합니다. 2. 세 용사의 의리(14-17절) 블레셋과의 전쟁은 또 다시 일어나 다윗은 고지산성에 있고 블레셋 진영은 베들레헴 저지에 있는 계곡 르바임에 표진했는데, 다윗은 산성에서 자기의 고향 베들레헴을 내려다보면서 사모의 정에 끌어올랐으며 더구나 성문 곁에 있는 우물물을 단 한 번이라도 마셔보고 싶은 갈증을 느끼었습니다. (1) 용감스럽게 물을 길어왔습니다. 때는 추수기여서 날씨는 더웠고 몸은 피곤하고 갈증은 심했습니다. 마실 물이 산지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베들레헴의 우물물을 단 한모금이라도 마셔보았으면” 하고 간절히 바랬던 것입니다. 그래서 세 용사는 다윗의 갈증을 해결해 주기 위해 생명을 내놓았습니다. 이 세용사의 의리는 용감스러운 행위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만용이 아니고 성령의 감동에 의한 것이며, 하나님의 뜻을 앎으로 움직여진 것입니다.(대상 12:18-23). (2) 다윗은 거절할 것은 용감스럽게 거절했습니다. 때마침 다윗의 심정을 이해한 충성된 세 용사는 화살이 빗발치듯하는 적진에 뛰어들어 적군과 충돌하면서 성문 곁 우물물을 길어다가 다윗에게 바쳤을 때, 다윗은 그 우물물을 마시기를 거절했습니다. 심히 목마른 사람이 자기 앞에 있는 물을 거절하기란 어렵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생명을 내걸고 길어온 물을 받아들고 “이는 물이 아니라 자기 생명을 돌보지 않고 갔던 용사들의 피라”고 느껴져서 감히 마시지 못하고 여호와께 부어 드렸더니 피는 사람이 마실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분깃이라(레 17:10-16)는 율법의 규례를 따라 하나님께 드릴 제물로 삼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은 거절할 것은 언제나 깨끗이 거절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들의 왕에 대한 충성심은 모든 군인들의 사표가 되며 특히 그리스도의 정병으로서의 오늘의 신자들에게 하나의 본보기가 되는 것입니다. 군인들에게 있어서 절대불가결의 요소는 충성심인 것입니다. 3. 제 2급의 용사의 업적(18-23절) 이 부분에 기록된 삼 인의 다윗의 용사 중 제 2급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다윗을 위해 생명을 내걸고 물을 길어온 용사입니다. 첫째 용사는 요압의 아우 아비새로서 저는 다윗의 제 4군단장(대상 27:7)이며 여기 삼 인 용사 중에 두목입니다. 아비새는 투장의 명수로써 일거에 300인을 사살한 용장입니다. 둘째 용사는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로써 이는 일찌기 모압아리엘의 아들들을 죽였고, 눈이 오는 겨울에 함정에 빠진 사자를 쳐 죽였으며 창 대신 막대기를 가지고 애굽인을 쳐 죽인 무용에 빛나는 자입니다. 세째 용사는 그 이름이 생략되었으나 이상의 두 용사를 보아 이도 역시 두 사람과 비견할 수 있는 용사임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이상에서 언급한 3조의 세 용사 중 첫 세 용사가 제 1급으로 충, 용, 지(忠勇知)를 겸비한 자들이라면, 둘째 세 용사는 불타는 자들이며, 세째는 용감무쌍한 자고서 부각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왕되신 주님은 오늘도 충, 용, 지, 덕(忠勇知德)을 겸비한 용사의 출현을 고대하고 계십니다. 4. 삼십인의 용사(24-38절) 본문 마지막 부분에서 32인의 용사들의 얼굴을 또한 보게 됩니다. 하지만 이를 통칭 30인 용사라고 부릅니다. 이 30인 용사는 다윗의 군단장을 위시하여 각각 개인적인 특기를 자랑하는 유능한 용사들인 것입니다. 24절에 “요압의 아우 아사헬은 삼십인 중에 하나요 또 베들레헴 도도의 아들 엘하난과”라고 했습니다. 아사헬에 대해서 삼하 2:18, 대상 11:26-41에서 “아사헬의 발은 노루같이 빠르더라”라고 묘사하고 있으며 아브넬에 대해서는 2:23에서 “아브넬이 창 뒤 끝으로 그 배를 찌르니 창이 그들을 뚫고 나간지라”라고 했습니다. 엘하난은 삼하 21:19에 보면 골리앗의 아우 라흐미를 죽인 사람으로 나옵니다. 그런데 이들의 공통점은 베들레헴 사람입니다. 25절에 보면 “하롯 사람 삼훗과 하훗 사람 엘리가와” 라고 했습니다. 하롯은 삿 7:1에 “기드온과 그를 쫓은 모든 백성이 일찌기 일어나서 하루 샘곁에 진쳤고”라고 했습니다. 길보아산 서북쪽에 있는 곳이요 거기 동굴에서 나오는 샘이 큰 못을 이루었고 요단강으로 흐릅니다. 그 곳 사람 삼훗은 대상 27:8에 “오월 다섯째 장관은 이스라엘 사람 삼훗이니” 라고 하였습니다. 또 26절에는 “발디 사람 헬리스와 드고아 사람 익게스의 아들 이라와”라고 했습니다. 발디는 사울의 딸 미갈의 남편되었던 사람의 이름이기도 한데 (삼상 25:44) 30인 용사 중의 하나로 지명이 되었습니다. 또 거기 출신 헬레스가 30인 중 일인이 되었습니다. 드고아(삼상 14:2)는 슬기있는 여인의 출신처요, 선지자 아모스의 고향(암 1:1) 이기도 합니다. 27절에서는 “아나돗 사람 아비에셀과 후사 사람 므분내와” 라고 했습니다. 아나돗은 예후와 예레미야의 출신지 (대상 12:3 렘 1:1)인데 아비에 셀도 이곳 사람으로 그는 대상 27:12에서는 “구월 아홉째 장관은 냐민자손 아니돗 사람 아비엘이니”, 라고 설명합니다. 또 후사는 용사를 많이 낸 곳입니다. 삼하 21:18에는 “후사 사람 십부라가 장대한 자의 아들 중에 삽을 쳐 죽였고”라고 했는데 십부라는 므분내와 동일한 사람입니다. 28절에 “아호와 사람 살몬과 느도바 사람 마하래와” 라고 했습니다. 아호아는 9절에 나왔습니다. 여기도 많은 용사가 나왔습니다, 느도바는 갈렙 자손의 살던 곳(대상 2:54)으로 예루살렘에서 22키로미터의 거리에 있는데 스붑바벨 때 귀환자들의 거주지요 거기서 노래하는 자가 나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느 12:18에 “노래하는 자들이 예루살렘 사방들과 느도바 사람의 동리에서 모여오고” 라고 했습니다. 거기서 마하래 같은 용사가 나왔습니다. 29절에서는 “느도바 사람 바아나의 아들 헬렙과 베냐민 자손에 속한 기브아 사람 리배의 아들 잇대와” 라고 했습니다. 느보아에서도 인물이 많이 나왔습니다. 바아나란 사람은 성경에 여러명이 나오는데 여기서도 헬렙의 아버지로서 나옵니다. 기브아는 베냐민 영으로 그 곳 사람 리배의 아들 잇대를 말합니다. 30절에 “비라돈 사람 브나야와 가아스 시냇가에 사는 힛대와”라고 했습니다. 비라돈에서는 사사 압돈이 나왔습니다. 삿 12:13에 “비라돈 사람 힐렐의 아들 압돈이 이스라엘 사사이었더라”고 했습니다. 브나야는 여호야 다의 아들 브나야와 다른 사람으로 대상 27:14에 보면 “십일월 열한째 장관은 에브라임 자손에 속한 비라돈 사람 야나” 라고 했습니다. 가아스 시냇가는 수 24:30에서 보듯이 “가아스 산 북” 그 산에서 내려오는 시내인 듯합니다. 거기사는 첫대가 30인 용사 중에 끼었습니다. 31절에 “아르바 사람 아비알본과 바흐훔 사람 아스마과”라고 했습니다. 아르바는 수 14:15에서는 “헤브론의 옛 이름은 기럇 아르비라 아르바는 아낙 사람 가운데 가장 큰 사람이었더라” 라고 했습니다. 아르바는 헤브론을 가리키는 것이며, 아비알본은 아비엘입니다. 대상 11:32에서 “아르바 사람 아비엘과”, 삼하 3:16에서 “바르흠은 혹바우림” 과 같은 지방입니다. 32절에 “사알본 사람 엘리아바와 야센의 아들 요나단과”라고 했습니다. 사알본이나 엘리아바는 이곳 밖에 나타나지 않으며, 야센은 대상 11:34 에 “기손 사람 하셈”과 통하는 이름입니다. 32절에 “하랄 사람 삼마와 아릴 사람 시랄의 아들 아히암과”라고 했습니다. 삼마는 삼하 23:11-12에 “백성들은 블레셋 사람 앞에서 도망하되 저는 그 발 가운데 서서 막아 블레셋 사람을 친지라 여호와께서 큰 구원을 이루시니라”고 했습니다. 이런 공을 세운 이로 첫 삼인 중 한 사람입니다. 아랄에서는 아히암이 났습니다. 34절에 “마아가 사람의 손자 아하스배의 아들 엘리벨렉과 길로 사람 아히도벨의 아들 엘리암과”라고 했습니다. 다윗이 암몬왕 나하스가 죽었을 때 그 아들 하눈에게 조문사절을 보냈더니 도리어 욕을 보인 일이 있습니다. (삼하 10장). 양국의 전쟁시에 암몬이 마아가 왕과 연합전선을 벌였으나 다윗에게 패전하여 점령당한 곳입니다. 이 마아가에서 30인 용사 중 한 사람이 났습니다. 아히도벨은 다윗의 참모이다가 그 손녀 밧세바의 일로 압살롬에게 붙었다가 자기 참모가 통하지 않음으로 삼하 17:23에 보면 “스스로 목매어 죽으매” 라고 했습니다. 그 아들 엘암은 밧세바의 아버지입니다(삼하 11:3). 그는 다윗의 장인이 되었습니다. 35절에 “갈벨 사람 헤레스와 아람 사람 바하래와” 라고 했습니다. 갈멜은 나발의 고향입니다(삼상 25:2). 유다 족이 얻은 땅입니다. 헤레스는 이곳 밖에 안 나옵니다. 아랍은 아라비아 족 중의 이름입니다. 이 지방에 살던 바아래가 용사 중 일인입니다. 36절에 “소바 나단의 아들 이갈과 갓 사람 바니와” 라고 했습니다. 소바도 다윗에게 점령 당만 곳입니다. 그 곳 사람이 다윗에게 용사로 일했던 것입니다. 나단의 아들 이갈이 고했고, 갓 지파 아들 바니를 말했습니다. 다른 곳에는 나타나지 않은 이름입니다. 37절에 “암몬 사람 셀렉과 스루야의 아들 요압의 병기 잡은 자 브에롯 사람 나하래와” 라고 했습니다. 다음으로는 암몬인으로 다윗의 용사 셀렉을 말합니다. 또 나하래를 말합니다. 브에롯 사람은 베냐민 족속입니다(삼하 4:2).이 족속의 나하래도 삼십인 중 일인입니다. 38절에 “이델 사람 이리와 아델 사람 가랍과” 라고 했습니다. 아델은 기럇여아린 족이니 대상 2:53에 보면 “기럇여아림 족속들은 미델 족속과” 라고 했습니다. 이들은 30인 중에 두 사람이 되었습니다. 26절에 익게스의 아들 이라와 본 절의 이라입니다. 가렙도 이델 족입니다. 39절에 “헷 사람 우리아라 이상 도합이 삼십 칠인이었더라”고 했습니다. 여기 기록된 32인에다가 제 1급의 세 용사와 제 2급의 세 용사 중 두 사람을 합쳐서 37명이 됨을 말합니다. 이 37인 위에 총사령관 요합 장군이 있습니다. 요압은 성격이 조급하고 사려가 깊지 않은 자입니다. 그러나 그의 창은 수명의 동료마저 살해하기는 하였으나, 그의 다윗에 대한 충성은 전혀 두 마음이 없는 그야말로 일편단심의 충절을 가진 자입니다. 그가 압살롬을 죽인 후 총사령관 직에서 면직된 후에도 왕에 대하여 추호의 불평이나 원망을 한 일이 전혀 없음을 보면 요압은 확실히 다윗 왕국의 공신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다윗 왕국은 다윗만으로 된 것이 아니며 적어도 37인의 용사와 12군단의 4천의 군대의 충용이 합하여 이루어졌다고 또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말미암아 빛나는 왕국을 건설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됩니다. 오직 다윗에게 위대함이 있었다면 충성된 용사들의 힘과 하나님의 은혜를 한데 묶어 초점을 모으게 한 그의 신앙과 진실이 있을 뿐이며 그의 애국 애족의 숭고한 정신이 있을 따름입니다. 다윗은 이런 면에서 또한 그리스도의 모형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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