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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를 택하라 (삼하 24: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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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은 선지자 갓을 통하여 임한 하나님의 세 가지 징계 중에서 하나님의 자비로우신 손 가운데 빠져서 해결받는 것을 택하였습니다. 진실한 신자는 자기가 범죄한 경우에라도 인간적 표준대로(세상 표준대로) 해결을 얻으려 하지 않고,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해결받기만을 원합니다. 인간적 표준은 쉬운 것 같지만 그 표준대로 우리 죄가 해결될 경우에는 도리어 후환이 막심하고 수습될 길조차 없어집니다. 그러나 우리 죄가 하나님의 방법대로 해결되는 경우에는 하나님의 자비가 동반한 해결이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만족하고 복된 열매를 가져옵니다. 다윗이 인구조사한 죄를 즉시 회개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의 죄는 용서하셨지만 이스라엘 민중의 죄는 용서하시지 않았기 때문에 본래 작정 하셨던대로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이 재앙 때문에 이스라엘의 군인 숫자가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언제든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거스려 영광을 얻으려고 하면 도리어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서 수욕을 당하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죄의 길을 갈 때는 하나님은 정반대로 역사하십니다. 여기 본문에는 백성을 계수한 다윗이 자기 죄를 뉘우치고 고백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다윗은 자기 최를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선지자가 그에게 이르기 전에 그는 마음에 자책하였다고 했습니다. 그의 양심은 그가 한 일의 나쁜점을 나타내 주었습니다. 이전에 자기 눈에 보이지 않았던 죄가 나타났고 그 눈에 비친 죄는 악하였습니다. 그는 그 죄를 회상하고 회개했습니다. 사람이 범죄했을 때 그에게 자책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은 다행스런 일입니다. 다윗은 자기 죄를 하나님께 고백했고 그에 대한 용서를 간절히 구했습니다. 다윗은 자기가 교만했기 때문에 이 일을 심히 미련하게 행했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진심으로 회개하는 자는 그 양심이 남이 보지 못하는 죄악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다윗이 자기 백성의 수호를 자랑했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기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였고 비록 그들의 수가 많다고 해도 하나님께서는 곧 다수를 소수의 무리로 만들 수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용서를 바라고 외쳤습니다. “여호와여 이제 간구하오니 종의 죄를 사하소서”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를 예방하기 위해 선지자 갓에게 미리 다윗에게 할 말을 지시하였습니다. 1. 다윗은 다음 세 가지를 당연한 일로 간주했습니다 (1) 다윗은 자기 잘못에 당연히 징계를 받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다윗 자신에게 있어서 이것은 너무나 큰 죄악이며 하나님을 너무 욕되게 한 것이기에 벌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일곱가지 중 첫째 가는 것이 교만입니다. (2) 벌이 죄에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자기 백성의 수를 자랑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죄 때문에 징계받아야 할 그의 심판은 백성의 수호를 줄이는 것입니다. (3) 그 벌은 백성이 대거 연루되는 징벌이 되어야 했습니다.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향해 진노하심 때문입니다. 직접 수문을 연것은 다윗의 죄였으나 홍수가 되게 한 것은 백성 전체의 죄였던 것입니다. 2. 어떤 벌을 받을 것인지 선택하라 하셨습니다(11-12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다윗에게 전쟁, 기근, 역병 이 세 가지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고 명했습니다. 즉 첫째는 전쟁에서 3개월간 대적에게 왕이 쫓기우는 것이요, 둘째는 왕의 땅에 7년 기근이 있을 것이라는 형벌이요, 세째는 왕의 온 땅이 온역(더러운 병)에 전염될 것이라는 형벌로써 이 중에서 하나를 택정하면 그 조건대로 하나님께서 형벌을 내리신다는 내용입니다. 이 세 가지는 전부가 민족을 크게 약화시키는 것입니다. 이같이 하나님께서 선택하라는 의도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자기 죄에 대하여 더욱 겸비하게 하기 위해서 2) 그의 교만심을 견책하시기 위해서 3) 징계 속에서 그를 다소 격려하시기 위해서 4) 그로 하여금 징계의 회초리를 보다 잘 견딜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선지자는 다윗에게 곰곰히 생각해 보고 선지를 보내신 이에게 대답하라고 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심판은 다윗이 병사가 많은 것을 자랑했던 죄였기 때문에 사람을 죽인다는 것이 조건의 결과임은 명백한 일입니다. 7년 동안 기근이 들면 이스라엘 백성이 대부분 식량난 때문에 아귀다툼을 하다가 골육상살을 할 것은 뻔한 일이었습니다. 이것은 안될일 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두 번째 조건으로 임금이 3개월간을 원수에게 쫓기고 보면 130만의 대군은 다 낙오가 될 것이며 대적의 칼에 넘어질 것입니다. 백성의 살아 남은 자라 해도 걸인이 될 것이며 그 비통한 아우성 소리는 차마 견딜 수 없을 것입니다. 더구나 예루살렘이 폐허가 된다고 생각하니 다윗은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세째 조건은 3일 동안 온 땅에 온역이 내리는 형벌입니다. 이 병마에 왕도 백성도 3일 안에 죽습니다. 실은 제일 무서운 형벌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무슨 생각에서인지 온 땅에 3일간 온역이 내리는 형벌을 선택했습니다. 3. 다윗은 온 땅에 3일간 온역이 내리는 심판을 선택했습니다 다윗은 이것을 선택함에 있어서 먼저 신앙으로 선택했습니다. 다윗은 이 형벌의 세 가지 조건을 심중히 생각했습니다. 셋 중에서 하나를 선택 한다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 모릅니다. 기근이 7년 드는 나라의 형편도 생각하고, 3개월 동안 왕과 신하와 온 군대와 백성이 적의 칼 앞에서 쫓기는 경우도 생각했으며, 또 3일간 온역이 와서 온 나라 백성이 병마에 죽어갈 광경도 생각했습니다. 도무지 어느 것도 쉽게 택할 수 없는 처지였습니다. 더우기 다윗 자신의 죄 까닭으로 온 형벌이라고 생각할 때 더 마음이 아팠습니다. 다윗은 선견자 갓에게 지금 내 심정이 심히 곤경에 있다고 하면서 조건을 조건으로 선택했다기 보다는 하나님에게 자신의 태도를 표명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손에 빠지면 빠졌지 사람의 손에 빠지지는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3일간의 온역의 형벌을 선택한 것입니다. 다윗은 숨은 하나님의 공의,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신뢰를 고백한 것입니다. 다윗은 자기의 결심을 갓을 통해 하나님께 알렸을 때 온역은 내려졌고, 3일 안에 7만명이라는 백성이 죽어갔습니다. 그 온역의 법위로는 단에서 브엘세바까지였습니다. 왕국의 이 끝에서 저 끝까지였습니다. 다윗이 이 온역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 온역은 그 날 아침부터 정한 시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몇시간 전만 해도 건강하던 사람이 다 병들어 죽은 것입니다. 장자가 살육되던 때의 유윌절의 애굽처럼 이스라엘 온 땅에 큰 호곡이 일어났음을 우리는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애굽의 장자치는 재앙은 밤에 있었다면 이번 3일간의 온역 재앙은 백주에 있었습니다. 4. 온역 재앙이 중지됨 죽음의 천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때 하나님은 재앙 내리신 것을 뉘우치시고 가는 천사를 만류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지방은 쓴잔을 마셔야 했지만, 예루살렘은 그 찌꺼기를 마셔야 했습니다. 예루살렘은 마지막으로 계수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그 곳은 마지막에 재앙을 입도록 예비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다른 어느 곳 보다도 죄가 더 많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천사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서 심판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 때 여호와께서는 이 재앙 내리심을 후회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향하여 “족하다 이제는 네 손을 거두라 긍휼로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약 2:13). 예루살렘은 법궤를 인하여 목숨을 건지게 된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하나님이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심판을 원치 않으시고 용서하시기를 즐겨하십니다. 이로써 성도는 심판 도증에서도 용기를 얻어 희개하게 됩니다. 5. 다윗은 자기 죄에 대하여 새로이 잘못을 뉘우쳤습니다 17절에 “다윗이 백성을 치는 천사를 보고 곧 여호와께 아뢰어 가로되 나는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삽거니와 이 양 무리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컨데 주의 손으로 나와 아버지의 집을 치소서 하니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자기 잘못을 아무리 뉘우쳐도 모자라는듯이 자기를 고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기도와 이스라엘의 고난을 보시고 재앙을 중지시켰습니다. 온역을 하나님께서 중지시켰던 그 때, 마침 다윗은 여브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에 있었고 거기에 죽음의 천사가 와서 섰을 때 다윗은 하나님을 보고 아뢰기를 내 백성이 죄를 지은 것이 아니니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버지의 집만을 치시라고 간청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책임있고 훌륭한 신앙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고 그 날이 다 가기 전에, 선견자 갓이 찾아와서 여브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 제단을 항고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라고 하였습니다. 그 때 온역은 그쳤습니다. 우리도 이 세상을 살아갈 때 행복한 선택을 할 경우도 있지만, 이렇게 불행한 선택도 할 경우가 허다 합니다. 신앙의 선택을 하지 않은 곳에 신앙생활이 있을리 만무합니다. 자신의 병력을 믿던 다윗처럼 우리는 내 경험의 병력을 믿고 살아온 불신의 자식들입니다. 지극히 작은 일에서 큰 일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우리의 지식과 경험으로 선택하곤 했습니다. 하나님 모르게 일어나는 사건이 이 세상엔 없고, 그리스도와 무관하게 처리될 문제가 없으며, 성경의 역사가 없이 변화되는 일이 없건만, 우리는 오늘날까지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것처럼, 그리스도와 함께 있지 않은 것처럼, 성령이 역사하지 않은 것처럼 자의대로 처리하면서 살아온 자들입니다. 신앙이란 지극히 사소한 일이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일임을 알고 하는 마음을 말합니다. 아무리 거창한 일이라도 사람의 일로 알고 한다면 그것은 불신입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보더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않고 하나님의 손에만 빠진 생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이후로는 어떤 처지, 환경에 우리 각자가 있든지간에 “그 중에서 하나를 택하라 하실 때” 하나님의 손에 빠질 각오를 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됩시다. 그래야 우리는 크리스챤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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