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히스기야의 부흥운동 (대하 29:1-36)

첨부 1


히스기야는 남조 유다의 20왕 중 14대 왕입니다. 히스기야가 왕으로 등극할 무렵 국내외 정세는 매우 어지러웠습니다. 북조 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망국의 쓴잔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앗수르는 대세를 몰아 유다를 삼키려 했습니다. 히스기야는 블레셋의 공격도 받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정치적 위기에 히스기야는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나라의 정치적 군사적 안정보다 먼저 국민의 종교개혁부터 단행했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즉위 원년 정월 초하루에 굳게 닫힌 하나님의 성전문을 열었습니다. 성전문은 그동안 폐쇄되어 있었습니다. 히스기야 왕의 아버지 아하스는 성전문을 닫은 자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지 못한 자요 바알의 우상을 부어 만들고 흰놈의 아들 골짜기에 분향했습니다. 이방인의 가중한 것을 본받아 자녀를 불살라 제사를 드리고 성전기구를 불사르고 성전문을 폐쇄한 자였습니다. 이제 유다 나라에는 전쟁 이 그치지 아니 했고 군인이 전사했고 아내와 자식들은 포로에 잡혀 갔습니다. 기근이 오고 재난이 덮쳤습니다. 유대는 이웃나라의 조롱거리고 되고 비웃음을 거리가 되었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이 원인이 백성들의 신앙적 타락에 있다고 보았습니다. 하나님을 저버리고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우상과 다른 신을 섬기고 하나님의 성전문을 닫고 제단의 불을 끈 연고라고 생각했습니다. 히스기야는 유다의 살길은 우상을 제거하고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왕이 되자마자 성전문부터 열었던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개인적인 헌신부터 시작했습니다. 2절에 "히스기야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그는 우선 자기 자신을 하나님 보시기에 바르게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의 부흥운동이 온전한 것이 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참다운 개혁은 개개인의 변화로부터 시작됩니다. 개개인의 진정한 변혁이 없이 단지 하나님 운동으로 시작되는 부흥은 말 그대로 운동으로 끝날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 한 사람의 성품이 변화되고 그러한 변화가 모여 개혁의 물결을 이룰 때 그 개혁은 어느 누구도 막지 못하는 그리 고 오랜 세월을 이어 계속 되는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영을 내려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을 하나님의 전 동편 뜰에 모이게 했습니다. 첫째로 자신을 성결케 하고 둘째로 하나님의 성전을 성결케 하라고 명령했습니다. 레위인들이 먼저 일어났습니다. 레위인 중 그한 자손, 므라리 자손, 아삽 자손, 헤만 자손, 14 사람이 자발적으로 나섰습니다. 그들은 먼저 자기 자신을 성결케 했습니다. 그리고 레위인의 담당 구역인 성전 뜰을 청소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14사람은 성소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성소 안은 제사장만이 출입하는 곳이었습니다. 성소는 성전 뜰보다 더 불결했습니다. 청소를 담당해야 할 제사장들은 레위인만큼 열심을 내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도 레위인은 성소 안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제사장들이 스스로 열심을 내어 성소의 더러운 것을 밖으로 끌어내기 까지 기다렸습니다. 부흥은 혁명입니다. 그러나 부흥은 조용히 일어나야 합니다. 먼저는 자기를 깨끗히 하고 자기 본분을 다하고 자기의 더러움을 토해내기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성전에서 내가 맡은 몫을 열심히 깨끗이 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남의 영역에 침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 성전 청소는 조용히 해야 합니다. 먼지 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청소 잘못하면 청소 안함만 못합니다. 구석과 골방에서 묵은 먼지가 샅샅이 쓸려 나오기까지 입구에서 빗자루 들고 서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히스기야 부흥운동을 성공적으로 이끈 주인공들은 레위인 14명입니다. 그들은 먼저 자기 자신을 깨끗이 했고 다음으로 자기들의 본분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제사장들이 자기 본분을 다하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제사장들의 하는 일을 도왔습니다. 히스기야가 백성들에게 자원하는 제사를 허락했을 때 백성들이 예상 밖에 넘치는 제물을 가져 왔습니다. 그래서 레위인들은 제사장들의 업무가 너무 많은 것을 보고 제사장을 도왔습니다. 성결에 앞장서고 직무에 충실하고 봉사에 협력하는 레위인들이야말로 교회를 부흥케 하는 주인공들입니다. 성전 청결 운동은 보름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정월 초하루에 시작하여 여드레가 되었을 때 성전 낭실에 이르렀습니다. 다시 여드레를 연장하여 16일이 지나자 번제단과 기구와 떡상과 향단과 촛대가 다 제자리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성전 청소가 완료되었다는 보고가 히스기야에게 보고되었습니다. 히스기야는 성읍의 귀인들을 모으고 하나님 앞에 제사드릴 준비를 했습니다. 7수송아지, 7수양, 7 어린양, 7 수염소를 준비했습니다. 제사의 대상은 나라와 성소와 유대를 위하여, 제사의 목적은 번제와 속죄제를 위함이었습니다. 소를 잡아 그 피를 제단에 뿌리고 양을 잡아 그 피를 제단에 뿌리 고 염소를 끌어와 그 위에 안수하고 그 염소를 잡아 백성들의 죄를 속죄 했습니다. 더럽혀진 나라, 더렵혀진 성소, 더럽혀진 백성을 속하기 위해 번제와 속죄제를 드린 것입니다. 제물들의 피와 죽음을 눈앞에 보는 백성들은 머리를 조아리고 서 있었습니다. 제사장은 나팔을 불어 속죄를 선포했습니다. 레위인은 노래와 악기로 구속의 노래를 찬미했습니다. 정말 감격스러운 제사였습니다. 무너진 제단을 다시 쌓고 닫혀진 성전문을 열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이 다시 만났습니다. 오랫만에 하나님의 백성이 돌아와 하나님 아버지께 사죄를 구했습니다. 왕과 백성과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다 함께 꿇어 엎드려 여호와 하나님께 경배를 드렸습니다. 히스기야는 백성들로 하여금 자원하는 제사를 드리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자는 감사의 예물을 드리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코자 하는 자에게 찬양의 제물을 드리게 했습니다. 백성들이 바친 구별된 600소, 3,000양, 70숫소, 100수양, 200어린양이었고 제사장들은 손이 모자라 레위인의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히스기야는 유월절을 선포했습니다. 여로보암과 르호보암이 갈라진 후 남북조가 서로 이국땅이 되었습니다. 히스기야는 북쪽 이스라엘 동족들에게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우리 하나님 앞에서 유월절을 지키라"고 편지를 보냈습니다. 북조 이스라엘은 앗수르에게 나라는 망하고 나라도 주권도 없는 상태였습니다 왕의 친서를 전하는 보발이 불타버린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성읍을 거쳐 스불론까지 이르렀습니다. 예상치 못한 반응이 일어났습니다. 왕의 친서를 가지고 찾아간 보발꾼들을 그들은 조롱하고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아셀과 므낫세와 스불론 중 몇 사람이 스스로 겸비하게 여겨 예루살렘에 올라가 구름떼 같이 모여든 유대인들과 같이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히스기야는 소수를 얻기 위해 대중을 향해 하나님께 돌아오라 했습니다. 대중을 얻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유월절은 성대하게 지켜졌습니다. 왕은 기쁨에 넘쳐 1,000수송아지, 7,000영을 바쳤습니다. 방백들이 1,000 수송아지 10,000양을 바쳤습니다. 성결케된 제사장들이 모여와 제사와 직무를 넉넉히 감당했습니다. 이날 예루살렘에 큰 기쁨의 날이었습니다. 다윗의 아들 솔로몬 이후 처음 보는 기쁨과 희락이 있었습니다. 그때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일어나 백성을 위하여 축복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기도는 하나님께 상달되었습니다. 히스기야의 부흥운동은 하나님의 성전 청결운동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히스기야 부흥운동은 14사람의 레위인들이 선봉을서므로 시작되었습니다. 히스기야의 부흥운동은 닫혔던 성전 문을 열고 제사와 경배를 드림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부흥은 문안에서 문밖으로 번져 나갔습니다. 먼저 안을 깨끗이 하고 사람을 불러 들여야 합니다. 히스기야 왕 때 있었던 예루살렘의 기쁨이 우리 교회에 있을 것을 나는 믿습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