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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전능자 하나님께 영광 찬양 (시 77: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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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의 1-9절은 괴로워하는 심령으로 부른 밤의 노래이며, 10-20절은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찬양입니다. 전자는 고난시 형식이요, 후자는 찬양시 형식입니다. 찬양에 있어서 바다, 구름, 창공, 들개바람, 천둥, 번개, 흔들리는 땅, 등 대자연의 위력을 하나님의 구원과 관련시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시는 인간의 내면성 깊은 데서 출발하여 대 우주의 넓은 공간과 더불어 시를 쓰고 있는 광대 무변한 세계로 뻗어나감을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1-9절은 한 영혼이 하나님께 집중적으로 쏟아 놓은 고백의 화살이라고 한다면, 다른 하나는 한 영혼으로부터 위대한 하나님이 하신 구원사에 대한 찬양의 깃발을 하늘과 땅과 바다에 휘날리고 있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전자는 밤의 어둠 속에서 부른 슬프고 괴로운 노래라 한다면, 후자는 찬란한 별 빛이 반짝이는 밤의 영광 속에서 장엄하고 신비하고 놀랄만한 하나님의 역사를 찬양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본문을 통하여 모든 영광을 돌리기 위해 어떻게 해야 되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연약한 나 자신 10절에 “나의 연약”이라 고백하였습니다. 시인 자신이 영적 지식에 있어서 어둡다는 고백입니다. 이 시인은 역경을 당하여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이해하지 못하여 고민하다가 자기의 지식적 연약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연약이라는 것은 믿음을 방해하는 사상의 경향과 성품입니다. 인간으로서 이런 연약성이 있음을 모르고 사는 것은 스스로 속이는 것입니다. 병자들 중에서도 제일 위험한 병자는 자기에게 병이 있는 줄 모르는 자입니다. 특별히 정신병자가 그러합니다. 정신병자는 자기가 미친 줄도 모르고 그런 미친 짓을 합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제일 먼저 자기 자신에 대해 올바로 인식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인간들이 자신의 올바른 생을 영위할 수 있도록 자각해야 할까요? 누가 우리의 인생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습니까? 세상에서 가장 현명하다는 인물들도 인생 문제의 해결에 대해서는 자기의 무식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자기의 무식을 아는 것이 지혜라”고 하였으며, 플라톤은 하나님과 선을 동일시하고 하나님의 인격을 무시하였습니다. 그러나 플라톤은 우선 신관과 국가관에 있어서 잘못 되었습니다. 임마누엘 칸트도 기독교를 단순한 도덕적 종교로 이해하였으며 이적이 있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공자 선생도 인생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죽음”의 문제에 대하여 모른다는 의미에서 “현세의 생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데 죽은 후의 일을 어찌 알리요”라고 하였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이렇게 오늘까지 인생에 대한 진리를 알지 못한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타율, 곧 하나님의 계시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기독교가 계시종교로 인간에게 나타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며 죽어가는 병자를 고치는 의사와 같습니다. 인간은 자기가 아는 것보다 높은 지식의 세계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인간이 항상 새 것을 조금씩 찾아내는 것을 보아서도 확실합니다. 들에서 풀을 뜯어 먹으면서 들판을 감상하는 것과 인간이 초원을 보고 감상하는 것과는 다른 것처럼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는 질적 차이가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셔야만 우리가 가진 인생 문제가 온전히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연약함을 솔직하게 인정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가오시며 우리는 그의 은총을 발견하게 됩니다. 2. 자율 세계에서 타율 세계 신앙으로 그러나 이 시인은 처음에는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자율 세계 신앙으로 하나님께서 긍휼과 사랑, 은총을 우리에게서 영영 베푸시지 않으시고 버리시지나 아니하실까 하고 하나님을 의심도 해봅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단념이 일시적이 아니고 영구적이라 생각할 때, 그의 고민과 그의 슬픔은 더 크고 깊을 것이며 그렇다면 하나님은 잔인하신 것입니다. 그의 사랑을 중단해 버린다면 하나님은 그 성실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고난을 통하여 보다 높은 지식과 은총을 주시고자 한다는 사실을 저자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말 속에 들어있는 의심은 하나님에 대한 강한 신앙을 표현하기 위한 것일 뿐입니다. 따라서 이 시인은 강한 부정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가 자기 위에 임하기를 사모하게 된 것입니다. 3. 목자되신 주께 찬양 시인은 하나님께서 언제나 긍휼과 은혜, 관용과 사랑을 베푸시고 수난 중에 있는 자기를 건져 주실 것을 믿기 때문에 “큰 소리를 지르며 하나님을 찾는다” 고 밝혔습니다. 13절에 “이스라엘과 하나님과 비교할만한 신은 없나이다” 14절에 “그는 전능하신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16절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 앞에서 홍해를 가르셨습니다” 17절에 “그는 애굽 군인을 멸하였습니다” 20절에 “주의 백성을 양무리 같이 인도하신다”고 말하면서 이 시를 끝맺고 있습니다. 그는 이 시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언제나 인도해 주신다는 신앙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우리의 환경이 어려울지라도 과거에 우리에게 행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낙심하지 맙시다. 하나님은 우리의 부르짖음을 들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체험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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