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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의 율례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시 119:3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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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의 율례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33절에 “여호와여 주의 율례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끝까지 지키리이다”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그를 가르치시는 자가 되어 주실 것을 진지하게 기도합니다. 그의 주위에는 예언자들과 현자들과 제사장들이 있었고 그리고 자신이 하나님의 법을 잘 배운 자였지만 그는 하나님의 가르침을 간구합니다. 욥 36:22에 “누가 그 같이 교훈을 베풀겠느냐?”라는 욥의 고백을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율례에 대한 개념이나 언어가 아니라 “율례의 도”를 배우고자 갈망했습니다. 율례의 도를 따라가는 방법과, 율례에 의해 자신을 다스리는 길을 배우고 싶었습니다. 사 30:21에 “주의 율례가 가르쳐주는 나의 의무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 모든 의심스러운 경우에 나로 하여금 주께서 내게 하시고자 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시며 나로 하여금 이것이 정도니 너희는 이리로 행하라는 주의 말씀에 가까이 하게 하소서”라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도 그런 길을 그에게 가르쳐주지 않았고 여호와만이 그에게 해답을 줄 수 있음을 다윗은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것은 은총의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평화 운동에 이런 능력과 재능을 사용하도록 해달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실하게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배워, 주의 법도를 준행합시다. 나의 생의 마지막까지 주의 법도를 지킬 것을 약속합시다. 2. 주의 계명의 첩경으로 행케 하소서(35절) 35절에 “나로 주의 계명과 첩경으로 행케 하소서 내가 이를 즐거워함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또한 하나님에 대한 의무를 인식하고 그에 대해 실수하지 않도록 깨우쳐 줄 것을 하나님께 간구하였습니다. 하나님께 의무를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실 것을 간구합니다. “나로 행케 하소서 모든 선한 행실을 위해 내게 힘을 주소서”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연약하고 세상은 험악하기에 하나님의 은총에 의존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풍족함이 내려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성령을 우리 안에 두시고 우리를 붙드시사 우리로 하여금 그의 율례를 행케 하십시다. 다윗은 이 점을 간구한 것입니다. 우리가 계명을 지키려는 것은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우리 자신이 의무에서 멀어지려 하면 할수록 우리는 더욱 더 그 은총을 진지하게 갈망합니다. 3. 주의 말씀을 주의 종에게 세우소서(38절) 38절에 “주를 경외케 하는 주의 말씀을 주의 종에게 세우소서”라고 했습니다. 주의 종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누구입니까? 성경에 하나님의 사람에 대해서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사람은 선지자들입니다(신 33:1, 삼상 9:6, 왕상 131), 둘째는 천사를 가르키는 칭호입니다(삿 13:6), 바울이 디모데를 향하여 “너 하나님의 사람아”라고 하였습니다(딤후 3:17).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다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딤전 6:11-12에 하나님의 사람의 의무가 무엇인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1) 피할 것 딤전 6:11에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심산궁곡에서 맹수나 도적을 만나면, 용기를 다하여 피하려고 힘쓰지만 그 보다 더 무서운 죄악이 전신을 해하되, 피하기는 고사하고 도리어 환영합니다. 육신과 영혼을 영원한 멸망의 구렁으로 잡아 넣는 죄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위험물입니다. 세상에서 무엇보다도 무서운 것은 죄입니다. 이것을 박멸치 않으면 인생은 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 이단설이 우리 정통 신앙을 흔들어 놓으려 하는 데 우리는 이 이단을 피하여야만 합니다. 전설에 의하면 옛 사도 요한은 목욕탕에 들어 갔다가 그 안에 이단자가 있는 것을 보고 소리 지르며 나왔다고 합니다. 시 1:1에 “악인의 꾀를 쫓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라고 했습니다. 질투와 분쟁과 훼방과 악평을 피하여야겠습니다. 정욕과 탐을 피하여야겠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여! 이것들을 피하십시오. (2) 좇을 것 딤전 6:11에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라고 했습니다. 1) 하나님의 사람이 쫓을 것은 의인입니다. 예수의 보혈로 구속함을 받아 의롭게 되지 않으면 하나님에게 속한 자가 아니라 마귀의 사람이니, 의는 하나님의 것이요, 죄는 마귀의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사람은 경건을 쫓아야 합니다. 기독교는 경건의 종교입니다. 기독교는 경건으로 이끄는 진리입니다. 경견의 모양만 있을 것이 아니라 경건의 생활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3) 신앙을 좇아야 합니다. 히 11:6에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라고 했습니다. 성결하신 하나님과 죄인된 인간이 서로 밀접히 연관 갖게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의 신앙이 합치됨에 있습니다. 4) 사랑을 좇아야 합니다. 요1서 4:8에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고 하였으니,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발휘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입에 발린 사랑은 사람에게 유익을 주지 못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못합니다. 중심에서 끊어 오르는 사랑이 실행으로 표현될 때 비로서 사랑의 가치는 천하고 더불어 평가하는 내 생명보다도 귀하게 됩니다. 사랑은 자아를 희생하고 타인을 유익하게 하는 일이니 봉사에 입각한 하나님의 사람들이여! 사랑을 좇아야 합니다. 인내를 좇아야 합니다. 롬 5:3-4에 “환란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낳는다”고 했습니다. (3) 취할 것 딤전 6:12에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취할 것은 영생입니다. 우리가 취할 것이 무엇입니까? 금전입니까? 명예입니까? 이것은 벌써 분토와 같이 없어져 버리기에 돌아 볼 필요가 없습니다. 어떤 국왕이 어떤 목사를 만나서 “그대는 하나님의 양떼를 쳐서 무엇을 얻느냐”고 물었습니다. 목사는 “폐하와 똑 같이 얻습니다.”고 대답하므로 그 왕은 그 이유를 물으니 “폐하여! 나는 양떼를 쳐서 천국과 지옥을 만드는 데 폐하께서 나라를 다스려도 이외에 더 얻는 것이 또 있습니까?”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과연 이 목사의 말은 진리입니다. 이 세상에서 무엇을 하던지 결국은 천국의 영생과 지옥의 멸망 밖에 취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천국입니까? 지옥입니까? 영생입니까? 멸망입니까? 영생을 취함에는 이에 상응한 노력을 요합니다. 곧 선한 싸움을 힘써 싸워야 합니다. 우리는 선한 싸움에 임하기 위해 전신갑주를 입고 신앙의 방패와 성령의 검을 취하여 마귀와 더불어 싸워야겠습니다. 내가 바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바른생활을 하기 위하여 여호와여! 주의 율례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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