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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의 종을 보증하시는 하나님 (시 119:12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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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의 종을 보증하사 교만한 자의 손에서 구원하소서(121-122 절) 교만한 자가 압박하나, 겸손한 자는 하나님께서 보호하십니다. (1) 겸손은 미덕의 왕입니다. 아무리 근면해도, 정직하여도, 겸손하지 않으면 공경하고 존경할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세상에 사람을 겸손케하는 것 만큼 어려운 일은 없습니다. 청빈결백을 자랑하는 사람이라도 겸손한 자리에 오르려면 오히려 크게 결핍된 자가 있습니다. 기독교는 특별히 겸손을 가르치는 종교입니다. 사람으로 하여금 그 마음에 자신을 완전 타락된 존재로 시인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평화는 바로 나는 부족하고 죄인된 사람이라고 하는 데서 옵니다. (2) 주임은 겸손의 교사이십니다. 주님은 우리들에게 겸손을 가르쳐 주시는 최대의 교사입니다. 친히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너희도 이렇게 하라 스승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도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피와 물과 모든 것을 다 주시며 우리를 위해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만일 당신이 예수 앞에서 겸손하지 않았다면 아직 당신은 예수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당신이 실을 잃어 멸망에서 헤멜 때 하나님은 독생자를 보내시고 당신의 길을 찾아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당신을 위해 낮아지신 것처럼 당신도 예수 앞에서 낮아지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놀라운 사랑을 의식하는 것은 자기의 죄를 의식하는 것보다도 더욱 우리들을 겸손케 합니다. 주께서 우리들에게 갈보리를 묵상케 하여 주시면 우리는 더 겸비한 사람으로 변하게 됩니다. 십자가 밑에서 교만은 설자리가 없습니다. (3) 겸양은 최고의 덕입니다. 신앙인 가운데는 시기와 분규적 기분을 가진 부족한 인물들이 있습니다. 자기 세력, 자기 사업, 자기 교회만이 큰 것으로 보고 타인을 무시하며 자기 한 몸만을 위하여 교회를 손상시키고, 민족적 수치를 여지없이 들어내는 추태를 부리는 자가 종종 있습니다. 우리는 겸양을 배우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는 많은 은사를 간절히 사모하되 무엇보다도 겸손의 은사를 사모해야 합니다. 2. 주의 종에서 율례를 가르치시사 주의 증거를 알게 하소서(123, 125절) 하나님께서 선민 이스라엘에게 율례를 가르치시면서 요구를 하셨습니다. 그것은 의와 긍휼과 겸손을 요구하시며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가를 증거하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은 우리에게 의를 요구하십니다(고전 1:30절). 우리의 도덕이나, 수양이나, 모세의 율법이나, 양소의 기름을 요구하심이 아니라 의를 요구하십니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마 5:20에 “너희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라고 했습니다. 또 렘 5:1에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멸망치 않겠다”고 했습니다. 벧후 3:13에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에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의를 적절하게 요구하십니다. (2) 긍휼을 요구하십니다(엡 4:23절). 미가야 선지자는 믹 6:1-8에서 당시 부호들에게 빈민자를 압세하는 것을 보고 긍휼하심을 가질 것을 호소합니다. 상아 침상에 누워 악을 꾀하고, 명일이면 그 악을 행하며, 타인의 발을 타하여 억지로 탈취하며, 선을 기뻐하지 않고 악을 기뻐하며 가죽을 벗기고 살을 베어서 긁으며 두목들은 뇌물을 위하여 재판하고, 제사장은 제물의 고기를 원하고, 선지자는 점을 친다고 개탄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 7:12에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딤후 2:24에 “주의 종은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하는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긍휼 베풀기를 좋아하고, 용서하기를 기꺼히 행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바로 이 긍휼입니다. (3) 겸손을 요구하십니다(빌 2:6절).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인자가 이 땅에 온 것은 남에게 섬김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겸손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내리시고 종말에 높이십니다. 주께서 겸손하셨듯이 우리도 그 겸손을 본 받아서 겸손해야 합니다. 3. 사랑의 세 가지 방면(126-128절) (1) 말씀을 정금보다 더 사랑합니다. 다윗은 성경 말씀을 사랑하기를 돈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사랑했습니다. 그는 정금보다 더 사랑했습니다. 금 만큼 우리 눈을 현혹시키고 매혹케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이 정금보다 더 나음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께로 향하는 영혼을 풍요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금보다 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했습니다. 금이 할 수 없는 것을 말씀은 이루어 주었으며, 세상의 부요함이 그를 실망시킬 때도 말씀은 그를 위로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2) 사랑은 진실히 해야 합니다. (3)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해야 합니다. 사랑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 그 특성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러나 사랑을 행해야 할 사람들이 도리어 악을 행할 때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의 조그마한 이익을 포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인간의 부정직한 모습은 예수의 새 마음을 받지 못하면 극복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새 마음을 받아야 합니다. 인간이 예수의 새 마음을 받지 못하면 죄악을 미워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 새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역사로만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우리는 늘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중에 성령의 역사를 받아야 합니다. 히 12:4에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존 번연은 말하기를 성경 한 말씀을 어기는 것이 수만의 군대가 쳐들어 오는 것보다 더 무섭다고 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법도를 사랑하고, 거짓 행위를 미워해야 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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