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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미련한 자의 죄와 정직한 자의 은혜 (잠 14: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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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슬기로운 자와 미련한 자
8절에 “슬기로운 자의 지혜는 자기의 길을 아는 것이라도 미련한 자의 어리석음은 속이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먼저 자기의 갈 길을 바로 알고 행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남들에게 대한 봉사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우리 인생 길가는 나그네의 관심은 도중에 잠시 맛보는 재미에 음미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자기 길을 아는 것은 길에 있는 위험을 살피고 그 길의 난관을 피하고 그 것을 돌파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미련한 자의 어리석음은 속이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미련한 자는 곧 하나님을 무시하는 자로서 어리석은 생각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속입니다. 단 6장에 보면 다니엘을 모함한 저들은 지혜를 가진 것 같으나 마침내 저희 올무에 저희 자신이 걸려 죽임을 당했습니다. 행 5장에 아나니아와 삽비라도 사도들을 속여 사람들 앞에서 명예를 얻으려 했으나 멸망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은 행동은 무엇이든지 어리석고 또 남들과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입니다. 2. 미련한 자의 죄와 정직한 자의 은혜 9절에 “미련한 자는 죄를 심상히 여겨도 정직한 자는 은혜가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잠 10:23에 “미련한 자는 행악으로 삼는다”고 했습니다. 미련한 자는 이렇게 악행을 즐거워함은 진리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진리는 다른 것이 아니고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미련한 자는 죄를 알지 못하고 도리어 그것을 즐거워하게 됩니다. 잠 28:26에 “미련한 자는 자기의 마음을 믿는다”고 하였습니다. 렘 17:9에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을 믿지 않은 것은 결국 죄를 믿는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미련한 자는 영감에 대해서 알지도 못하고 또 하나님도 모릅니다. 미련한 자는 죄를 심상히 여겨 회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직한 자는 은혜가 있습니다. 그들은 회개하기 때문에 은혜가 있습니다. 눅 15:7에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잠 28:18에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눅 5:32에 주님께서 오신 것은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고자 오셨기에 누구든지 회개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실 것입니다. 3. 마음의 고통과 즐거움 10절에 “마음의 고통은 자기가 알고 마음의 즐거움도 타인이 참예하지 못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남의 마음속에 있는 고락의 내용을 모릅니다. 그러나 인간을 체휼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그것을 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시는 유일하신 분이십니다. 주님께서 인간을 체휼하셨다고 하는 것은 그가 하나님이시면서도 친히 인간이 되셔서 인간의 모든 질고를 아시며 인간의 죄 짐을 져주셨고 영원토록 신자들과 함께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인간을 깊이 체휼하시고자 낮아졌을 때에 하나님은 그를 권능으로 높이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를 믿는자는 마음에 즐거움과 평안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4. 정직한 자와 악한 자의 흉망 11절에 “악한 자의 집은 망하겠고 정직한 자의 장막은 흥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현세에 되어지는 일만 가지고 말한 것이 아니요 최후의 심판까지 안중에 둔 말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악인들이 일시 동안 흥하는 것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내세에는 멸망의 심판을 받습니다. 정직한 자란 죄를 자복하여 회개하고 주님을 믿어 그의 의를 받은 자를 가리킵니다. 장막이란 말 속에 내세를 은근히 암시하고 있습니다. 정직한 자는 이 세상을 임시적인 것으로 살고 내세 중심적인 신앙생활을 행하며 살아갑니다. 고전 15:19에 사도 바울은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 뿐 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니라”고 한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입니다. 그러니 만큼 하나님은 그의 기쁨이며 내세는 그의 것이므로 정직한 자의 장막은 흥하는 것입니다. 눅 16장에서 거지 나사로는 내세 중심주의 생활이다. 그는 아브라함의 v품에 돌아갔으며, 잠 14:32에 “의인은 그 죽음에도 소망이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점에 있어서 우리가 명심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현세에도 인간들이 선악간에 심판받는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5. 자기 기만의 종국 12절에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잘못된 길을 걸으면서도 자기의 소원을 성취하려고 그 길이 옳은 길이라고 오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그 소원성취의 길은 악이니 만큼 망하는 길입니다. 악은 종종 선의 탈을 쓰고 사람을 속입니다. 사람은 그런 길을 따라 가다가는 망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큰 죄악을 범하면 망할 줄 알면서도 죄를 계속해서 조금씩 범하는 행동은 무방한 줄 착각합니다. 죄가 쌓이고 쌓이면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니 그 길은 멸망의 길입니다. 인간은 하나님께 의존해야 할 자이고 자기의 사고방식대로 행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은 우주 만물의 창조자가 아니고 하나의 피조물로써 죄인이기에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인도를 따라가야만 생명을 얻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간구하는 주님의 참된 성도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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