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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스라엘과 앗수르의 운명 (사 17: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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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장의 마지막 부분은 세계 만민들이 헌화하는 소리와 바다의 소리를 비교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의 내용은 앗수르의 군대와 그 여러 조공 국가에서 모집한 각색의 군대들에 의하여 유다가 공격을 받을 것을 말합니다. 이사야는 그들이 바람에 날리는 겨와 같이 불려가서 속히 망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의 연대는 주전 701년 이 후이며 아마 산헤립의 두 번째 침공과 관련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1. 이스라엘와 앗수르의 운명(8-11절) 9절에 “그 날에 그 견고한 성읍들이 옛적에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버린바 된 수풀 속의 처소와 작은 산꼭대기의 처소 같아서 황폐하리니” 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의 견고한 성읍들과 요새를 믿고 견고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사야는 이것이 마치 원수들이 광야를 진군하는 것처럼 더 이상 소용이 없으리라고 경고한 것입니다. 단순히 이스라엘 백성에게 옛날의 한 본보기를 상기시켜 하나님의 능력 에 반대되는 모든 방비가 얼마나 헛되며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은 심한 책망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께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배하게 하기 위해 그들에 게 그 땅을 세습권을 통하여 주셨으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그 땅을 소유하게 하기 위해 그들의 원수를 몰아내셨다고 생각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들은 자신들의 배은망덕함 때문에 그와 같은 큰 은혜를 받을 자격을 잃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그와 같은 은혜를 박탈 당 하게 되었을 때 이들은 이전의 축복과는 반대되는 고통을 느껴야 할만한 이유가 된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옛날의 그 은혜를 언급함으로써 이 백성의 배은망덕과 은혜를 쉽게 잊어버리는 것, 그리고 배역함을 책망하여 이들로 하여금 그 들이 마땅한 벌을 받고 있음을 인정하고, 그 벌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벌이며, 이전에는 그들 자신이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던 그 원수들에게 의와 같이 쫓김을 당한다는 것을 깨닫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줄 모르고 이방 종교와 풍 속을 좇아갔기 때문입니다. 죄악이 관영한 자들로 벌을 받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감사할 줄 모르는 자도 마찬가지로 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10절에 “이는 네가 자기의 구원의 하나님을 잊어버리며 자기의 능력의 반석을 마음에 두지 않은 까닭이라 그러므로 네가 기쁨하는 식물을 심으며 이방의 가지도 이종하고” 라고 했습니다. 구원의 하나님이란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이 늘 체험하는, 구원하여 주 시는 하나님을 가리키는 바 구원하지 못하는 생명없는 우상과 반대되는 참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능력의 반석” 이라는 것은 택한 백성의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을 의미하는데 이 명칭은 구약에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와 같이 하나님을 잊어버리며 마음에 두지 않은 것 은 배은망덕하는 죄악입니다. 이 죄악이 그 나라 파멸의 원인이 되었던 것 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기뻐하는 식물을 심으며” 라고 했습니다. 다음에 징벌 이 따르는데 이것은 그들로 하여금 이와 같은 배은망덕이 벌을 받지 않고 지나갈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이들은 모든 좋은 것의 원칙이신 자를 저버렸기 때문에 비록 이들이 먹을 것을 얻으려고 했을지라도 그들은 기근과 굶주림으로 소진되리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애 써서 얻어진 것은 원수가 와서 전부 가져가거나 파멸시키기 때문입니다. 신 28:33에 “네 토지 소산과 네 수고로 얻은 것을 네가 알지 못하는 민족이 먹겠고” 라고 했습니다. “네가 기뻐하는 식물을 심으며” 라는 말은, 이스라엘 민족이 가장 좋아하는 과실나무를 심었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영적인 의미를 지닌 것으로 곧 이방인의 가지를 심었다는 것입니다. 이방 종교를 가져다가 이스라엘 종교 가운데 이식하였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떠난 자가 취하는 행동인 것입니다. 11절에 “네가 심는 날에 울타리로 두르고 아침에 너의 씨로 잘 발육하도록 하였으나 근심과 심한 슬픔의 날에 농작물이 없어지리라” 고 했습니다. 사람이 자기 생업을 위하여 수고하는 것은 영원한 일이지만 수고한 뒤 에 참으로 복된 수확을 얻는 것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 국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수고하여 농사한 것의 수확을 거두지 못할 것이라고 선지자는 말합니다. 전시에는 전쟁터로 농장이 못쓰게 되었고, 한재와 같은 천재가 겸했기 때문에도 그렇게 됩니다. 이처럼 빨리 약탈 당할지도 모르는 것들을 보물이라 고 쌓아 두어서는 안되며, 우리는 결코 빼앗기지 알을 유익한 것들을 쌓아 두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2. 이스라엘과 앗수르의 멸망(12-14절) 만일 앗수르 사람들과 이스라엘 사람들이 유대를 침입하여 약탈한다면, 다시 말해서 만일 앗수르 군대가 하나님의 백성을 포로로 잡아가고 그 나 라를 황폐케 만든다면, 그 멸망이 바로 그들의 소득과 분깃이 되리라는 것 을 그들로 알게 할 것입니다. 12절에 “슬프다 많은 민족이‥‥‥” 라고 했습니다. 앗수르 군대는 자기들의 많은 수효를 신뢰했습니다. 그 군대는 여러 민족으로 구성되었습니다. 그것은 “많은 민족”이었는데, 그들은 그 민족들의 힘으로써 목적을 달성하리라고 기대했던 것입니다. 12절에 “많은 민족이 소동하였고 파도의 뛰노는 소리같이 그들이 소동하였고 열망이 충돌하만으로 큰 물의 몰려옴 같이 그들도 충돌하였도다” 라고 했습니다. 본문에 “소동“이라는 말이 두 번 나오고 충돌이라는 말도 두 번 나옵니다. 하나님을 공경하지 않는 세상의 세력은 떠드는 것을 그 특징으로 하 지만 실상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그것은 이기고 심판하는 자는 결국 천천히 흐르는 실로의 물과 같이 고요한 여호와의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 상 세력이 왕성할 때는 그것이 제일인 것 같이 보이지만, 그것은 메뚜기 같이 성하여 잠간 있다가 사라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본 절에 소동 하며 떠드는 기세를 가진 세력에 대하여 진술하는 선지자는, 사실상 그것 이 멀지않아 맥없이 사라질 것을 암시해 주는 것입니다. 13절에 “열방이 충돌하기를 많은 물의 몰려옴과 같이 하나 주께서 그 들을 꾸짖으시리니 그들이 멀리 도망함이 산에 겨가 바람 앞에 흩어짐 같겠고 폭풍 앞에 떠도는 티끌같을 것이라” 고 했습니다. 세상 세력은 떠들므로 극히 무서워 보여도 하나님은 그것을 쉽게 정복하십니다. 그는 그것 을 꾸짖으시므로 진정시킵니다. 다시 말하면 그는 말씀 한마디로 그것을 없애버리신다는 것입니다. 이사야는 이스라엘에게 있어서는 그들의 공격이 무서운 것일지라도 하 나님 앞에서 그들은 마치 “겨”와 같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아무런 힘도 들이지 않고 그들의 모든 군대를 흩어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가장 작고 고요한 처리 방법 앞에서도 세상의 큰 세력은 여지없이 패배를 당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기서 이사야는 말하기를 “그 들이 멀리 도망함이 산에 겨가 흩어짐 같겠고 폭풍 앞에 떠도는 티끌같을 것이라” 고 말합니다. 이것은 물론 앗수르가 하나님의 간섭 앞에서 여지 없이 패배할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14절에 “보라 저녁에 두려움을 당하고 아침 전에 그들이 없어졌나니 이는 우리를 노략한 자의 분깃이요 우리를 강탈한 자의 보응이니라” 고 했습니다. 저녁에 두려움을 당한다는 것은 유대인들이 앗수르의 침략 때문에 잠간 동안 두려움을 당할 것을 가리킵니다. “아침 전에 그들이 없어졌나니” 란 것은 앗수르 군대가 하나님의 간섭하시는 권능 앞에서 여지없이 패배할 것 에 대하여 예언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노략한 자의 분깃” 이라는 말은 이스라엘을 침략한 앗수르가 당할 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를 핍박하던 자들의 최후가 어떻게 되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우리가 그들의 분노에 맡겨져서 그들이 우리를 찟고 약 탈하며 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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