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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파수군의 경고 (사 21: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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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본문에 “두마” 사람들이 “세일” 이라는 산상에서 파숫군을 향하여 “파숫군이여 밤이 어떻게 되었느뇨? 파숫군이여 밤이 어떻게 되었느뇨?“ 하고 두 번이나 반복하여 질문하고 있습니다. 이 심각한 질문에 파숫군의 답변은 “아침이 오나니 밤도 오리라 네가 물으려거든 물으라 너희 돌아올지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들의 대화 내용은 현시대에 살고있 는 우리들에게도 매우 심각한 의미와 교훈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1. 두마에 대한 역사적 배경

(1) 두마 민족은 팥죽 한그릇에 장자의 기업을 팔아 먹은 물질주의 자에서의 후손들이 형성한 나라입니다. 여기 두마는 에돔인데 당시 상업 이 매우 발달했고 광대한 영토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2) 암석이 많은 산악지대에 살고 있었습니다. 두마라는 이름의 뜻은 “죽은 자와 같이 침묵하다” 라는 의미인데 이는 매우 쓸쓸하고 황량함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3) 여기의 밤이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재난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성서학자들은 이 밤에 대하여 위기의 밤, 환란의 밤, 멸망의 밤이라고 합 니다. 이와 같이 두마 사람들은 국가적인 위기와 민족적인 환란과 멸망의 밤을 맞이하게 되자 불안과 공포와 절망의 상태에서 역사의 주가 되시는 하나님의 선지자요 이스라엘의 파숫군인 이사야에게 그 시대상에 대하여 좀 알려 달라고 호소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나타나는 두마 사람을 20세기 말엽에 직면한 현대인으로 생각하여 볼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을 잃어버린 현대의 두마 사람. 둘째, 물질 문명의 노예가 되어진 현대의 두마 사람. 셋째, 육체의 안일과 쾌락에 도취된 현대의 두마는 위기의 밤. 환란의 밤을 맞이 했습니다. 분명히 현대문명은 암흑기를 맞이했습니다. 우리는 본문에 나타난 파숫 군의 경고인 “아침이 오나니 밤도 오리라 물으려거든 묻고 속히 돌아오라” 고 한 말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2. 파숫군의 사명 파숫군은 하나님의 성음을 지키는 자요, 하나님의 백성을 감시하며 돌보는 자요, 하나님의 메세지를 민중에게 전달하며 경고하는 자입니다.

(1) 파숫군을 세우는 이유 밤이 있고, 대적과 원수가 있기 때문에 백성들의 안전보장을 위해서 파 숫군을 세우는 것입니다.

(2) 파숫군의 임무 감시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숙직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경고의 나팔 불 사명이 있습니다. 파숫군은 암흑한 시대의 사람입니다. 그 시대의 역사의 선각자들이며, 그 시대의 운명을 걸머진 자들이라고 하겠습니다. 그 시대 에 안식을 누리느냐, 환란을 당하느냐, 사느냐, 죽느냐 하는 이 중대한 운명을 걸머진 자가 바로 파숫군인 것입니다.

(3) 파숫군의 자세 깨어 있어야 합니다. 정신을 차리고 모든 사물을 바로 분별하고 취사 선택을 적당히 수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신앙의 점에서 깨어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정신을 차려서 삼가 조심해야 되며, 모든 사물을 바로 분별하고, 선과 악을 바로 분별하며, 신앙과 불신앙을 바로 분별하며 취사 선택을 바로 해야겠습니다. 파숫군은 높은 망대에 올라가야 합니다. 이 말은 고상한 이념을 가지라 는 말입니다. 고상한 사역을 담당하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머리를 들고 하늘을 바라보면서 하늘의 것을 사모하고 하늘의 것 을 추구하는 고상한 신자가 되어야TH습니다. 또한 환전무장을 갖추어야 합니다. 파숫군은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만날지 모르기 때문에 완전무장 을 하여야 되는 것입니다.

3. 파숫군에게 묻는 애원 “밤이 어떻게 되었느뇨?” 라고 물었습니다. 인간은 금수와 달라서 장래의 새 소망을 추구하게 되는 것이요, 또한 영원한 새 세계를 동경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생은 누구나 극심한 고통 중에서 새 세계를 바라게 되는 것입니다. 이 부르짖음은 현실에 불만을 느끼므로 말하는 것이고, 밤은 그 때 사람들이 살던 죄 많고 괴로운 시대를 비유합니다. 이 물음은 또한 “죄악의 밤이 어떻게 되었느뇨?” 라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죄로 인하여 쫓겨난 이래 세상은 날이 갈수록 더욱 더 죄악이 관 영해가고 있습니다. 죄는 병과 같은 것이어서 개인이나 국가를 막론하고 그 양상이 점점 심화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파숫군이여 밤이 어떻게 되었느뇨?” 라고 한 질문은 어두움에 속한 자의 것이 아니라 빛에 속한 자의 것입니다. 이것은 앞날을 내다보고 준비하는 자의 더듬는 소리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도 그 제자들에게 마 16:2-3에 “시대를 분별하라” 고 하셨습니다.

4. 파숫군의 대답 파순군은 묻는 자에게 대답하기를 “아침이 오나니 밤도 오리라” 고 했습니다. 곧 앞으로 새 시대가 오기는 하지만 역시 밤중과 같은 죄악이 동반한다는 것입니다. 이 뜻은 밤은 또 영속치 않는다는 뜻입니다. 캄캄한 밤이 지루하지만 그러나 이 밤도 한도가 있는 것이고 영원히 계속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에서 70년간을 포로생활로 잡혀있을 때 울기만 했으나, 이 고통의 때도 그치는 날이 오지 않았습니까? 사람이 생활고에 시달릴 때 그 괴로움은 옵니다. 그리고 경제파탄으로 우는 자도 있습니다.그러나 재기의 기회는 오는 것입니다. 밤이 지나면 아침이 온다고 했습니다. 암흑의 시대는 지나고 광명의 시 대가 온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일시 고통을 당할 때 당면한 고통만으로 위축되어 아침이면 맞이할 그 환희의 때를 잊어버리고 맙니다. 세상에서 가진 비통함으로 울던 사람도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천국의 기업을 받는 날의 기쁨은 말로 다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성서 학자들은 여기 아침은 빛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밝아오는 새 아침을 의미하고, 여기 밤은 예수님의 재림으로 임하는 세상 환란과 심판과 멸망의 이방인이 겪어야 할 밤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즉 예수님이 재림하시게 되면 자은 낮으로 맞이하는 신자들이 있는 반면에, 캄캄한 밤으로 맞이하는 불신자들도 있으리라는 말입니다. 본문의 아침은 성경에 계시된대로 환희의 아침, 새 희망의 아침, 영광의 아침을 의미합니다. 천국 입문의 아침이요, 영생의 축복을 누리는 아침인 것입니다. 이 파숫군의 대답은 불변의 진리요, 경고의 나팔 소리이기도 합 니다.

5. 파숫군의 경고 “돌아오라”고 하였습니다. 파숫군은 “물으려거든 물으라” 고 권면했습니다. 어려운 일을 당할 때 혼자 고민하지 말고 하나님의 종 선지자에 게 물어보라고 하였습니다. 이사야는 물으려는 그들의 중심문제를 해결해 주었습니다. 그것의 최후 의 경고로 그리스도에게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돌아온다는 말은 복귀를 의미합니다. 회개와 헌신을 의미합니다. 이제라도 죄를 회개하고 그 잘못된 방향에서 돌아서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복귀하면 구원의 새 아침, 희망의 새 아침, 환희의 새 아침을 맞이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새 세계가 돌아오기 전에, 주님 재림의 때 전에, 하나님 앞에 완전히 돌아오라고 했습니다. 인생의 행복은 시대가 바뀌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 바뀌어지는데 기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회개함에 민첩해야겠습니다. 참되게 주님을 위하여 사 는 사람은 모두 이렇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죄를 떠나는 것은 단번의 행동으로는 완성되기 어렵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 인생들에게는 너무 죄가 많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시 40:12에 “내 죄가 머리털보다 더 많다” 고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매일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기 위해 회개하여야 됩니다. 주님은 그 것을 가리켜서 애통이라고 했습니다(마 5:5). 또 말씀하시기를 “만일 네 오른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매어버리라” 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 역시 회개라는 것은 일면 고통스러운 일도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회개를 상한 심령이라고 하였습니다(시 51:7). 회개는 이렇게 괴롭지만 역시 단맛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스펄죤은 말하기를 “회개는 쓰고 단것” 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회개하는 것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의 애통, 여러분의 회 개가 진정한 하나님의 복으로 연결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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