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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두려워 말라 (사 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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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모든 믿는 자들에게 권면하시기를 “너는 두려워 말라”고 하셨습니다.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글자 그대로 공포의 시대입니다. 공포심이라는 것은 본래 우리 인간의 본능입니다. 하나님께서 두려워하는 본능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우리의 감정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고 유익하게 하기 위해서 공포라는 감정을 주신 것입니다. 이 두려움을 우리 인간 생활을 도와주고 생명을 보존하는데 유익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본능 중의 하나로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죄악으로 말미암아 타락한 이 후에는 모든 본능이 그 본래의 지경을 지나서 도에 넘게 되고 또한 변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땅히 두려워 할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을 세상의 것을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공포심이 사람에게 생명 보존에 요소로 전략하고 말았습니다. 이 공포심이 사람의 생명에 있어서 심리적 생활 육체적 생활에 대해서 해독을 끼치는 것은 오늘날 과학자들이 많이 연구하였는데 그 결과는 대강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1) 심리적 영향을 먼저 살펴보면 공포에 쌓이면 볼 것을 바로 보지 못하고 들을 것을 바로 듣지 못하여 말할 것을 바로 말하지 못합니다. 바로 심리상태가 마비되는 것입니다.

(2) 육체적 생활, 건강의 영향을 살펴보면 질병을 가져오게 합니다. 병은 질병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오는 것입니다. 소화기계통, 신경계통의 병이 바로 이런 공포심에서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악 가운데서 부르신 것은 건강하고 깨끗하게 살게하기만 위해서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이 공포심을 이기고 평안한 마음으로 하나님이 주신 평강으로 기쁘고 즐겁게 살도록 하시려고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그런데 믿는 사람 중에 아직 이런 지경에 들어가지 못한 분이 계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을 읽어보면 하나님께서 우리 약한 인생을 향해서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는 말씀이 참으로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창 15:1에 “아브라함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창 26:24에 “두려워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내 자손으로 번성케 하리라”는 이 말씀은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왕상 17:13에 “두려워 말고 가서 내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하나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고 했습니다. 3년 6개월간 유대 나라에 비가 오지않을 때 사르밧에 사는 과부에게 엘리야를 통해 주신 말씀입니다. 사르밧 과부는 마지막 있는 밀가루와 기름 몇 방울을 하나님의 사자 엘리야에게 떡을 만들어 봉사하였는데 이상하게 밀가루 통에 계속해서 밀가루가 생기고, 기름병에 기름이 3년 6개월간 가뭄이 다 지라도록 만나 공급의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엘리사를 지키는 하나님은 왕하 6:16에 “두려워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저와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고 했습니다. 사 41:10에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가 참으로 나의 의로운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우리에게 두려워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마 10:31에 “두려워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고 하셨습니다. 눅 12:32 “적은 무리여 두려워 말라 아버지께서 하늘나라를 너희에게 주는 것을 기뻐하신다”고 했습니다. 계 1:17-18에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노라 볼지어다 이 때 세세토록 살아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두려워 말라고 하셨습니다.

1. 우리는 왜 두려워 말아야겠습니까?

(1) 우리는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홀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물이며, 또한 자녀입니다. 주님이 내 안에 거하시고 내가 주님 안에 거하여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소유주가 누구냐에 따라 그 가치가 결정됩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를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를 위하여 피흘려 죽게 하신 것은 바로 하나님의 소유된 우리 영혼을 위하여 하나님 스스로 구원의 손길을 펴지 아니하시면 우리는 모두 마귀에게 끌리어 지옥으로 가게 되기에 천국의 영광의 자리를 다 버리시고 낮고 천한 인간 세계에 오시어 멸시와 고초를 당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소유물인 줄을 믿습니까? 이를 믿는 성도는 세상의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롬 8:25에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란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냐” 라고 담대하게 바울은 선언하고 있습니다.

(2) 하나님이 나화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말은 나의 사랑을 한 가지도 빠짐없이 다 아신다는 것입니다. 시 139편에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되 모르시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하시었습니다. 나의 앉고 서는 것, 내가 생각하는 나의 마음 속, 나의 입술이 말을 하나도 잊지 아니하시며 나의 가는 길, 행위, 슬픔, 탄식, 고통 그리고 눈물까지도 모두 아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이유는 우리를 돕기 위해서 함께 하십니다.

(3) 하나님은 진실하시기 때문입니다. 진실하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은 곧 법이요 변개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믿을 것이 하나도 없지만 우리가 끝까지 신뢰하고 의지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뿐이십니다. 십자가에 높이 달리우신 구주 예수님만은 우리가 확실하게 믿을 수 있는 분입니다.

2. 진실하신 하나님 말씀인 “두려워 말라”고 하심은 우리의 삶과 시간 속에 주시는 말씀입니다.

(1) “두려워 말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너희들의 과거에 대하여 두려워 말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자신의 과거를 두려워하지 않아야겠습니다. 사람이 살아온 선상에서 지난 시간을 과거라고 한다면 우리들은 누구나 다 과거를 지니고 있습니다. 대체로 과거를 말하게 되면 인간은 죄책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인간과의 관계를 생각할 때에 부족과 잘못을 느끼게 되는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확신하면 죄책으로부터 해방되어 하나님은 나의 구원자이심을 확신하게 됩니다. 사 55:7에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면 하나님은 의롭고 미쁘시사 우리의 죄를 사하시며 기억지도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 이 시간 우리가 분명하게 해야 할 것은 하나님 앞에서 범죄한 사실을 기억나는대로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용서해 주십니다. 과거의 죄에 매여 해방되지 못하면 그르시도 안에서 자유를 누리는 자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가장 귀한 축복은 죄의 속박으로부터 해방되는 체험과 확신인 것입니다. “두려워 말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너희들의 현재에 대하여 두려워 말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이 지상에서 살아갈 때 가장 현실적인 시기는 현재인 것입니다. “지금 여기에서” 라는 이 사실이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현재란 어떤 내용을 채울 수 있는 가능성이라는 뜻에서는 축복의 시간이지만, 시련이 다가 온다고 할 때 현재란 고통과 시련의 시간이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현재의 삶에서 패배하지 않고 살아간다고 하는 것은 대단한 용기와 신앙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주어진 현실과 현재를 직시할 때에 결단코 평안한 행복의 시간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전쟁과 갈등, 착취와 억압, 권모와 술수, 거짓과 허풍, 불의와 부정, 그리고 부패가 있는 전쟁터와 같은 것이 현재요, 현실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현재를 두려워 말라고 하십니다. 두려워 말라고 하신 말씀은 보호하신다는 약속이며 또한 싸울 수 있도록 힘 주시고 도와주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도와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단 하루도 우리들의 뜻대로 살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3) “두려워 말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너희들의 미래에 대하여 두려워 말라”는 말씀입니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이기 때문에 미지요, 불확실성의 차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통례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장차올 새 하늘과 새 땅을 대망하는 종교입니다. 그러기에 사도바울은 “현재의 당하는 고난은 장차 받을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고 하였습니다. 장차 올 미래에의 꿈과 비젼은 너무나 확실하다는 것이 기독교의 복음입니다. 사실 기독교는 장차 되어질 미래의 약속을 현재에서 바라고 확신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확실한 미래의 승리가 이미 약속되어 있기 때문에 어렵고 괴로운 현실을 이기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장차 오는 천국의 주님처럼 우리도 부활하는 사실을 확신시키며, 주님은 “두려워 말라”고 소망을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은 우리에게 두려워 말라며 격려를 주시고 계십니다. 끝으로 우리 믿음의 사람이 두려움을 당할 때 우리는 두려워하기 보다는 기도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낙심하기 보다는 하나님 안에서 새 소망을 가지고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이 내게 임하여지기 위하여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주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낙심만 한다면 시간만 낭비할 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기도로 자신이 처한 형편을 아뢰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생활 속에 구원 얻고, 또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크게 쓰임받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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