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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참 금식의 뜻 (사 5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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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에 나오는 권고는 예루살렘이 망하기 전에 나타났던 예언자들이 들려준 그 예언의 강렬성과 형벌 선고와 비교가 됩니다. 참 예배란 무엇을 말하며, 날마다 시민으로서 해야 할 사회적 생활에는 그 종교의 영향을 조금도 나타내지 아니하고 그저 그들의 신에게 기쁨을 드리는 방법은 예배의식에만 참석하는 것이라는 종교적 천박성을 거부하는 문제를 여기에서 취급하고 있습니다(사 1:10-20, 암 5:21-24, 마 6:1-8). 그러나 여기에 나타난 내용은 참신하고 충격적이며 또 독창적인 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형식이 대체로 권고형이요, 설명형의 문장을 쓰고 있음을 보여 주는데 비해서 이사야서의 처음 예언에서 취급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죄에 관한 것은 하늘의 재판관의 칙령이 하나님의 대리자로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리시는 심문과 그 판결의 문장 형식을 보여 주어 피차에 대조가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이스라엘의 죄를 보이시며 이스라엘을 책망하신 것입니다.

1. 이사야 선지자는 복음을 외치라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1절에 “크게 외치라 아끼지 말라 네 목소리를 나팔 같이 날려 내 백성에게 그 허물을, 야곱 집에 그 죄를 고하라”고 했습니다. 여기 크게 외치라는 말은 히브리 원어로 “케타 메카론”이니 “힘차게 부르짖음” 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그 가르칠 말씀이 너무 중요한고로 힘있게 말하라는 뜻입니다. 곧 그 백성의 허물을 지적하여 고치도록 하는 것이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이렇게 부탁하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들의 허물을 지적하는 지도자를 미워하지만 사실상 허물을 지적하여 주는 자만이 그 허물있는 자들을 회개케 하여 살려 주는 자입니다. 이사야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솔직히 말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 야곱의 집이라는 명예로운 이름을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들에게 아첨하지 말며 오히려 그들에게 그들의 죄와 범죄를 낱낱이 보여주며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라도 죄가 있으면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노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왕왕 자기의 죄를 간과하기 쉬웠고 보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그들의 죄를 보여줄 필요가 있었고, “너희는 이러 이러한 일을 행한다”고 말해줄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는 이 일에 열렬해야 합니다. 나팔 같이 날려야 한다고 본문은 말하고 있는데, 내게 있는 시간, 물질, 기술, 건강을 다 기울여서 복음을 전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나를 선지자로 대하여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목적으로 외쳐야 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증거하는 일은 천사도 부러워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나를 택하여 사명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므로 충성스럽게 외쳐야 합니다. 사람의 생명을 사랑하는 목적으로 외쳐야 합니다.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대 앞에 좋은 보고를 할 목적으로 외쳐야 합니다. 복음을 외치려면 비방들을 각오를 해야 합니다. 완고한 자들에게 핍박받을 각오를 해야 합니다. 복음 전도자는 사생활이 죄악과 타협하지 않고 깨끗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창조주로 전능하신 분, 영원부터 영원까지 알파와 오메가이시며 사람의 무한하신 하나님이시며 우리는 죄인으로 하나님은 우리 죄인을 구속하시려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낌없이 보내 주셨다는 복음을 외쳐야 하고,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으면 영생을 얻는다는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 한국 교회는 국내 민족 복음화와 세계 선교를 위해 복음을 전할 때가 왔습니다. 이런 사명을 감당할 자는 파숫군의 심정으로, 의사의 심정으로, 목자의 심정으로, 양들을 사랑하는 심정으로, 청지기의 심정으로 이 사명을 감당해야겠고 하나님께 전도하는 입이 열리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2. 유대 종교의 타락상

(1) 유대인의 종교생활은 외견상으로는 선했습니다. 2절에 “그들이 날마다 나를 찾다 나의 길 알기를 즐거워함이 마치 의를 행하여 그 하나님의 규례를 폐하지 아니하는 나라 같아서 의로운 판단을 내게 구하며 하나님과 가까이 하기를 즐겨 하며” 라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의 외식자들은 외부적으로는 경건의 격렬함을 보여 줍니다. “날마다” 라는 말씀이 그들의 열심을 보여주며, “즐거워하며” 라는 말씀도 그러합니다. 그러나 그 즐거움은 종교적인 것이 아니라 육체적인 것입니다. 교회 예배의식에서의 즐거움이 아니라 교회적 사업, 교회 음악회 같은 것으로 즐거움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진실한 성도는 온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다 해도 혼자서도 구원의 즐거움으로 기뻐하며 하나님 한 분이 알아주시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유대 백성들은 외견상으로는 얼마나 선하게 보이는지 인식해야만 합니다. 하나님은 사실은 사실로 인정하십니다. 그래서 외식하는 자도 선한 것을 행하는 한 그것에 대한 칭찬은 거절하시지 않으십니다. 그들은 경건한 모양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인정되고 있습니다. 그들은 선한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는 것 같고, 그들은 종교적 행사를 크게 기뻐하는 것 같고, 그들은 하나님과 가까이 하기를 즐거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점은 대상이 하나님이 아니라 종교의식의 즐거운 분위기나 사교나 축제를 위해서 입니다. 이 점을 하나님은 가증히 여기신 것입니다. 즉 그들의 실상은 형식 뿐이었고 내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2) 내부적으로는 타락했습니다. 3-5절에 이르기를 “우리가 금식하되 주께서 보지 아니하심은 어찜이오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주께서 알아주지 아니하심은 어찜이니까? 하느니라 보라 너희가 금식하는 날에 오락을 찾아 얻으며 온갖 일을 시키는도다 보라 너희가 금식하면서 싸우며 다투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도다 너희의 오늘 금식하는 것은 너희 목소리로 상달케 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찌 나의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으며 이것이 어찌 사람이 그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이 되겠느냐 그 머리를 갈대 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것을 어찌 금식이라 하겠으며 여호와께 열납될 날이라 하겠느냐”고 하였습니다. 외식하는 종교인들은 자기들의 공의를 주장하며 그것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별달리 받을 듯이 생각합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금식하는 것을 하나님이 보아주시지 않는다고 원망합니다. 그들은 종교적 규례를 외식으로 지킵니다. 사람이 금식하는 목적은 육체의 쾌락을 금하며 심령을 괴롭게 하여 기도하기 위함인데 그들은 금식하면서 오락을 취하니 겉으로만 금식하고 속으로는 육체의 쾌락을 취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외식입니다. 종교적 규례를 지킴은 하나님과 사람에게 대한 사랑을 증진시킴이 그 목적인데 그들은 금식하면서 남들을 제압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금식한다면서 사람을 학대하였습니다. 그것은 참된 경건이 아닙니다. 진정한 종교는 핍박을 받을지언정 남을 핍박하지는 않습니다. 유대인들은 금식하면서 서로 다투었습니다. 금식기도 하면서 개인만 다투는 것이 아니라 단체적으로 당파싸움이 일어난 것입니다. 사람이 교만하면 다투고, 욕심을 부리면 싸우게 됩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섬긴다는 모양을 모든 종교행사로 나타내면서 그것을 빙자하여 윤리 도덕을 등한히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신앙의 의식을 이용하는 유대인들 역시 열납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금식기도 하면서 사악한 길로 계속 행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조롱하고 자신을 기만하는데 불과하다는 점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사야 선지자는 겉은 형식만 남고 속에는 악독이 가득 찬 유다의 종교를 향하여 외쳐야 하는 것입니다. 비방듣고 매맞고 죽음을 각오하고 외쳐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고 생명을 건지기 위하여 듣든지 아니 듣든지 외쳐야 합니다. 우리 성도는 눈을 감으면 기도가 나오고, 눈을 뜨면 하나님의 섭리를 찬양하고, 불신자를 만나면 전도가 나와야 합니다. 우리 입이 성령의 능력으로 열려져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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