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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민족의 시련과 그 교훈 (애 0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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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피고 잎피던 화창한 긴 봄날이 지나가고 아카시아 향기 그윽한 5월이 지나면 나뭇잎들의 연한 푸른색이 짙어가는 6월이 됩니다. 8.15의 해방의 기쁨과 꿈이 정치적 혼란으로 무엇이 무엇인지 분간하기도 전에 한많은 1950년 6월 25일은 우리 민족 사상 최악의 비극이 시작된 날입니다. 태평 양바다를 건너온 민주주의 물결과 북에서 내려덮은 유물사상인 공산주의는 캄캄한 암흑철야 같았던 일제의 잔학하고도 야만적인 악정에 시달렸던 남쪽은 이것도 저것도 분간하고 판단하고 소화하기도 전에 민족사상 최악의 비극인

6.25동란을 기구한 운명의 장난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한스러웠습니다. 38도선에서 한발의 대포소리로

6.25는 터지고 말았습니다. 무성한 풀잎을 스쳐온 작은 총한발로 시작된 이 사건이 그렇게도 큰 비극의 운명과 피의 역사를 만들어 줄이야 아무도 몰랐습니다. 피의 역사 붉게 물들인 삼천리 금수강산의 이 땅과 이 흙을 검붉은 피로 물들일 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정말 되새기고 싶지 않은 한많은 사연들이 많다할지라도

6.25의 비극만큼 되새기기도 싶지 않은 사건은 없는 줄 압니다.

6.25때의 처절한 시신을 다시 보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 인간은 생명이 살아있는 한 역사 의식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폐허가 된 땅에는 고층건물이 들어섰고 시체가 썩어 흰뼈들이 쌓인 산들이 울창해지고 한스럽던 고개길은 불도저로 밀어 포장된 고속도로가 쭉뻗어 있지만, 우리 민족뇌리 속에 깊이 간직된 정신적 상처는 씻을 수가 없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마음의 상처도 아물어지지만

6.25 비극만은 잊을 수 없으며 싸맬 수 없습니다.

6.25을 통해서 우리는 너무나도 많은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생명의 존엄성, 순결의 가치, 의리와 신의, 신뢰성, 이웃사촌의 두터운 인정은 모두 잃어버렸습니다. 이로 인해 신흥종교는 많이 발생했고 전통적인 것 다 송두리채 잃어 버렸습니다. 기독교는 공산주의와 공존하지 않습니다. 변위된 기독교라면 몰라도 하나님과 바알세불을 같이 섬길 수 없으며, 유신론과 무신론이 공존할 수 없음 같이 공산당은 기독교인에게 있어서 사단의 사자임을 알아야 합니다.

1. 고요한 주일 아침 공산주의자들의 습격은 언제든지 민주진영의 휴일을 선택하였습니다. 주일은 성일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성일을 택하여 공격하여 왔으니 십자가의 원수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들은 1950.

6.25 새벽 4시 기해서 일제히 공격하여 온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반역이요 국민과 신도들에게 이보다 더 큰 배신은 없습니다. 요새 젊은이들 가운데 공산당도 우리와 같을 것이라면서 중대하게 생각 하지 않음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내가 알기에는 현 국민의 70%가

6.25에 대한 실감이 없는 국민입니다. 당시의 피해 상황을 보면 국군이 141, 956명 잔상, 민간인 사망 224,763명, 전쟁 고아59,000명, 부상 229,625명, 유엔군 사망 123,987명, 납치 84,532명, 행방불명이 363,212명이며 피해액은 무려 4조원 이상이었다 합니다. 우리 국가의 개국 이래, 최대의 전쟁이요, 가장 큰 피해인 것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북괴는 지금도 철저한 교육으로 남침을 노리고 있고, 우리들은 전쟁의 참화를 잊어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입으로만의 반공은 위험합니다.

2. 우리가

6.25를 통해 잃은 것도 많지만 배우고 얻는 것도 많습니다

(1) 우리는 시련의 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약 1:2-4에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니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벧전 1:7에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고전 10:13에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할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지 않으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롬 5:2에 “환란은 인내를 인내는 소망을 이루는줄 앎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할렐루야.

6.25시 민족과 교회가 입은 피해는 하나하나 열거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우리가 직접 경험하였고 또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시련을 통해서 더 강한 민족이 되게 하고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온 백성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2)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이 무엇인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인류 역사를 살펴볼 때 범죄한 민족에게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징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모처럼 해방된 민족이니 정신을 차려서 서로 돕고 협력하여 아름다운 나라를 건설해 나가야 할터인데 오히려 우상숭배, 당파싸움 등으로 시기, 질투, 모략중상, 탐관오리, 사치, 부정부패 등 그 정도가 지나쳤던 것입니다. 우리는 죄의 값이 무엇임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까닭없이 시련만 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멸망할 때에도 이사야 선지는 목메어 외쳤습니다. 패역하고 부패하였던 것입니다. 종교적으로 도적적으로 타락한 그들은 의식과 외식으로 꾸민 하나님께 대한 예배는 오히려 하나님을 분노케 하였으며 귀족들과 고급 관리들의 부패상은 분에 넘쳤습니다. 뇌물로 재판을 그릇쳤으며 사치와 방탕으로 그들 의 삶을 장식하고 자랑했습니다. 가난한 자와 약한 백성을 압제하고 예루살렘 부녀자들의 사치는 나라의 멸망을 초래했던 것입니다(사 3:16-26). 거짓 선지자들은 왕과 백성들의 귀를 어둡게 하였고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고 오히려 참예언자 이사야의 경고를 비웃고 권력과 음모와 술책으로 박해했습니다. 이사야는 목메어 외쳤으나 듣지 아니하므로 사 1:2에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고 하면서 그들에게 땅과 하늘을 증거삼아 외쳤습니다. 끝내 회개치 않던 그들은 주전 721년에 앗수르에게 망했습니다. 북왕국의 멸망은 남왕국 유대에 대한 큰 경종이었으나 남왕국 역시 조금도 회개치 않고 하나님의 공의를 행치 않다가 결국 주전 586년에 바벨론에게 망했습니다. 이 슬픈 통곡의 선지자는 예레미야임을 잘 알고 있으며 눈으로 볼 수 없었던 예루살렘의 참상을 그의 눈물로 나타냈습니다. 이 슬픈 노래가 예레미야 애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뜻을 거역하고 범죄할 때에는 하나님을 모르는 앗수르나 바벨론 등을 들어서 징계하신 것과 같이 우리 민족을

6.25사변으 로 징계하신 것으로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개인이나 국가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범죄하면 징계받습니다. 히 12:6에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사랑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직질 하심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매맞고 있는 우리는 회개하고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3)

6.25는 우리로 하여금 항상 깨여있을 것을 경고해 주는 교훈입니다.

6.25동란은 예고 없이 닥쳤습니다. 아무 준비 없이 당했습니다. 칼 야스퍼의 말과 같이 “전쟁이란 인간의 한계상황”입니다. 아무리 큰 소리를 쳐도 전쟁이 일어나면 어떻게 할 수 없이 꼼짝 못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한계상황 중에 병과 죽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순신 장군의 말과 같이 “有備無患”은 어느 때나 진리입니다.

6.25는 민족적인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의 매로 알아야 할 것이며 우리 민족에게 축복을 주시려고 단련시키시므로 받아들여 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6.25는 항상 준비하고 깨여 있을 것을 경고하는 신호탄으로 알고 이 를 교훈삼아 신앙생활을 영위 하여야겠습니다.

3. 우리가 얻은 것

(1)

6.25는 기독교에게 큰 각성을 주었습니다.

6.25는 공산당과 기독교의 전쟁입니다. 공산당에게 경찰, 국군은 임시 표적입니다. 공산주의는 무신론주의 자들입니다. 기독교는 공산군에게 영원한 표적입니다. 공산당의 원수는 정치인도 아니요, 교육가도 아니요, 재벌들도 아니요, 기독교인입니다. 기독교가 있는 한 자유주의 순이 싹트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유와 평화의 통일된 운명으로 민족의 운명이 존속되려면 기독교가 부흥되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기독교는 영원히 자유를 위하고, 평화를 위하고, 통일을 위하여 존재하는 종교입니다. 우리나라는 국토 보존과 함께 보존되어야 할 것은 민족의 가슴속에 성서의 신앙이 뽑히지 말아야 합니다.

6.25로 교회 각성운동은 공산세력에게 정복되어질 수 없는 교회로 부흥되게 하였고 세계 선교의 대열에 낄 만큼 크게 자라게 했습니다.

6.25는 우리 민족의 불행한 운명을 뛰어 넘는 역사적인 계기가 되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나는 여러 번 생각합니다. 만일에

6.25가 없었다면 아직도 이 땅에서는 공산주의들과의 싸움이 계속되었을 것이고 결과는 월남이 공산화된 것 같이 우리도 공산화 되었을지 모릅니다. 우리 백성들의 정신 속을 침투해 들어오는 공산주의 사상이나 유물주의 사상을, 국군이나, 경찰이나, 정치적이나, 경제적으로도 막을 수 없고 학문으로도 막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만이 공산주의를 막을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기독교가 부흥하는 한 공산주의는 성공하지 못할 것입니다.

(2)

6.25로 민족복음화가 이루어졌고 우리 민족이 세계속에 부각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 이승만 박사는 기독교 교인이었습니다. 초대 대통령이 기독교인이라는 것은 우연한 것이 아닐 줄 압니다. 하나님의 섭리 입니다. 군목제도, 교목, 원목, 형목 등의 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이조 500년 동안의 유교사상과 제도에서는 전도의 문이 막혀 있었으나

6.25동란을 통해서 복음을 전할 기회를 주신 것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섭리라고 믿습니다. 우리 민족은

6.25전에는 세계 사람들이, 어느 구석진 곳에 있는지도 몰랐고 기억도 못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나 오늘은 과거와 다릅니다. 한국을 모르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6.25는 우리가 당한 비참한 날이지만,

6.25를 통해서 전세계 이목은 UN을 통해 우리 한국을 알도록 했습니다. 이제

6.25는 지났습니다. 하나님의 채찍은 사랑하는 자식에게 주는 사랑입니다. 시련과 연단을 잘 이겨낸 사람에게는 축복이 올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언제나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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