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성도의 구원을 위해 간구함 (애 03:55-66)

첨부 1


하나님은 필사적인 인간의 청원에 응답하십니다. 그 응답이란 무엇입니까? 두려워 말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제자들에게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도 따르는 이들에게 이와 똑같은 권고를 합니다. 딤후 1:7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심하는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신약에 있어서와 같이 구약의 하나님의 최고 용서는 창조적인 용서인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이 바벨론 군에 함락되기 이전에 방백 스마댜와 그다랴와 유갈과 바스홀의 모해를 받고 왕궁 시위대 뜰에 있는 구덩이에 던짐을 받았다가 환관 에벳멜렉의 도움과 시드기야 왕의 배려로 살아난 경험을(렘 38:1-13) 유대 멸망에 비유함으로써 자신이 구덩이에서 구원받은 것처럼 조국 유다도 구원받게 될 것이라는 믿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레미야는 공의로 원수들에게 심판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1. 망국의 절망속에서 하나님을 의뢰하는 예레미야

(1) 예레미야는 고난중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55절에 “여호와여 내가 심히 깊은 구덩이에서 주의 이름을 불렸나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의 구름으로 인하여 그들의 기도가 상달할 수 없는 것 같았음을 두려워하게 되어 있었지만(44절) 그들은 다른 방법으로 두 번째의 생각으로서 적어도 더 깊은 시련으로서 하나님이 기도를 들으시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헛되이 찾지 말라” 그들이 깊은 구렁이에 있을 때 마치 죽은자들 가운데서 산자처럼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들의 울음이 방해되지 않았습니다. 여호와를 향하여 하나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는 자의 기도를 하나님은 들어 주셨습니다.

(2)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56절에 “주께서 나의 음성을 들으셨사오니 이제 나의 탄식과 부르짖음에 주의 귀를 가리우지 마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예레미야가 심 히 깊은 구덩이에서 주의 이름을 불렀고 그 부르짖음을 하나님이 들으시고 “두려워 말라”고 위로해 주셨습니다. 예레미야가 심히 깊은 구덩이에서 하나님을 불렀다는 것은 큰 수욕과 고난속에서 주의 이름을 불렀다는 뜻입니다. 그 가운데서 절망하거나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주님께 부르짖어 간구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긍휼히 많으셔서 성도의 부르짖는 음성을 들어주시고 원수의 손에서 구원해 주십니다. “주의 귀를 가리우지 마옵소서”라는 말은 원본에 “당신의 귀를 숨기지 마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예레미야의 기도는 재를 무릎쓰고 하던 욥의 기도와 같고, 물고기 뱃속에서 부르짖은 요나의 기도와 같습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의 이러한 기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위에서의 기도와 관계가 있습니다. 절망적인 감정을 주목하는 길은 믿음의 기도 밖에 없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이미 그의 기도를 들으셨다고 말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은 결코 멸망하지 않을 것이며 70년 후이면 바벨론에서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말씀으로 응답하신 것입니다(렘 29:10).

(3) 하나님은 그들의 공포를 평안하게 해 주었습니다. 57절에 “내가 주께 아뢴 날에 주께서 내게 가까이 하여 당신은 당신의 나타내심으로 나를 은혜롭게 안심시키고 두려워 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순종의 길로 하나님께 가까이 할 때 그가 자비의 길로 우리에게 가까이 오시는 것을 우리는 믿음으로 볼 수 있을 것에 유의합시다. 58절에 “주여 주께서 내 생명의 원통함을 펴셨고 내 생명을 속하셨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내 생명을 취하여간 자의 손에서 내 생명을 구원하였다는 말입니다. 당신이 나를 죽음에서부터 내 영혼을 구원하였으니 나의 발을 타락에서 건지실 것을 확신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평안을 주십니다.

2. 하나님의 공의로운 보응을 호소하는 예레미야

(1) 대적들의 모해를 알고 계시는 하나님 59-60절에 “여호와여 나의 억울을 감찰하셨사오니 나를 위하여 신원하옵소서 저희가 내게 보수하며 나를 모해함을 주셔서 다 감찰하셨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자기의 생명을 속해 주시고 원통함을 감찰해 주시고 억울함을 풀어 주실 줄 믿고 소망을 가지고 기도했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인간들의 삶을 감찰하고 계십니다. 예레미야의 억울한 누명을 주께서 아시고 구원해 주신 것처럼 유대 백성들이 이방인들에게 당하는 억울함을 감찰하시고 구원해 달라는 호소입니다. 하나님은 억울한 자들의 피를 반드시 신원해 주시는 분이십니다(사 51:22, 단 7:22, 계 18:20).

(2) 공의로 심판해 주시기를 기대합니다. 61-63절에 “여호와여 저희가 나를 훼방하며 나를 모해하는 것 곧 일어나 나를 치는 자의 입술에서 나오는 것과 종일 모해하는 것을 들으셨나이다 저희가 앉든지 서든지 나를 노래하는 것을 주여 보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원수들이 자기를 종일 훼방하며 모해하는데 대하여 예레미야가 호소했습니다. 하나님이 알아주시면 문제없습니다. 원수들은 언제나 어디서나 예레미야를 빙자하면서 노래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보시고 신원하여 주실 것을 예레미야는 믿고 호소하며 기도했습니다. 64-66절에 “여호와여 주께서 저의 손으로 행한대로 보응하사 그 마음을 강퍅하게 하시고 저주를 더하시며 진노로 저희를 군축하사 여호와의 천하에서 멸하시리이다”라고 했습니다. 예레미야가 이렇게 기도한 것은 원수를 미워하여 앙심을 품고 원수를 갚기 위한 기도가 아니고, 하나님이 공의로 심판해 주실 것을 믿고 하는 기도입니다. 원수들의 마음이 강퍅하여 하나님을 거역하고 성도를 핍박하여 저주의 길로 나아가므로 하나님이 마침내 진노하셔서 그 원수들을 쫓아내 버리고 멸절하실 것을 알고 예언적 기도를 한 것입니다. 그 예언대로 바벨론은 망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심판하십니다. 이 심판은 하나님의 공의의 활동 입니다. 미워하기 때문에 심판하는 것이 아니며 고통이나 상처주기 위해서 심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은 본성이 공의로우시기 때문입니다. 죄악을 결코 용납할 수 없는 거룩한 성품 때문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심판에는 용서를 한다거나 형량을 줄인다거나 하는 일은 없습니다. 반드시 행한대로 받는 것이며 선악간에 심판하시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심판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판은 참되시고 의로우십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학대받는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키 위해 하심이요,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