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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루살렘에 남아있는 자에게 대한 경고 (겔 33: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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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서 제일 기가 막히고 원통하고 분한 일은 내가 지금 누구에게 기만을 당하고 있는 일입니다. 속아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느낄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 가운데서도 내가 제일 사랑하던 사람, 믿었던 사람 제일 가까운 사람에게 기만을 당하고 배신을 당할 때 받는 충격은 가장 큰 충격 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가장 믿던 자기 남편에게 기만을 당하고 속았다는 것을 깨닫고 충격을 받아 자결을 한 사람도 입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에 게 가장 가까운 친구에게 배신을 당하고 충격을 받아 몸에 병이 생겨 입원 한 사람도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이 누구겠습니까? 그것은 아마 내 남편도 아니요, 아내도 아니요, 나 자신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나 자신에게 스스로 속아 살고 있고 기만을 당하 고 있다는 생각을 해 보십시요. 그것은 내 남편이나 내 아내나 내 친구에 게 기만당하는 것보다 몇 배 더 큰 충격을 받아 분하고 원통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 겔 33:21-29말씀에 예루살렘에 남아있는 유대 거민에 게 신앙의 각성을 위하여 경고하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경고의 말씀을 유대인의 신앙생활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즉 자기 기만에서 만족 하고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 스스로 속아 살면서도 그것 이 참인줄 알아서 안심하고 만족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가장 불쌍하고 가련한 인간상입니다.

1. 그가 받은 거룩한 인상과 영향력은 이 비극적 소식을 듣고 견 딜 준비를 해 주었습니다 22절 “그가 오기 전에 여호와의 손이 내게 임하여 내 입을 열어”라고 했습니다. 예언자는 입을 열었습니다. 에스겔은 지난 3년간 친구처럼 그들에게 계속 말을 했고 이전에 말했던 것을 다시 상기시켜 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영감 받은 예언자로서 말한 것은 “여호와의 손이 그에게 임한”지금이 처음인 것 같습니다. 여호와의 손이 임함으로 그의 사명이 갱신되었습니다. 새로운 지시가 주어졌습니다. 그래서 “입을 열었습니다”, “그가 해야 할 말”을 더욱 담대히 전할 수 있었습니다.

2. 그가 받은 메시지는 아직 유대에 남아있는 자들을 위한 것 이 었습니다 24절에 “이스라엘 황무한 땅에 거한 자들이 말하여 이르기를 아브라함 은 오직 한 사람이라도 이 땅을 기업으로 얻었나니 우리가 중다한즉 더욱 이 땅으로 우리에게 기업으로 주신 것이 되느니라 하는도다”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본국에 남아있는 사람들이 스스로 믿고 있는 것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은 이 땅에서 복을 받았다 그런데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에게 축복하시고 허락하신 땅을 버리지 아니하고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많으니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시지 않겠느냐고 믿었습니다. 그들 스스로 위로를 받고 만족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자의든 타의든 간에 조국 을 버리고 자기 혼자 살겠다고 애굽이나 바벨론이나 앗수르 같은 나라에 이민을 갔지만, 우리들은 어려움을 당하면서도 조국을 지키고 예루살렘 성전을 지키고 있으니 축복해 주실 것으로 믿었습니다. 저들은 스스로 생각하기를 아브라함의 자손된 것을 마음 든든하게 생각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조상 아브라함에게 약속으로 주신 땅만 밟고 있으면 자연히 복을 받을 줄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의 공기만 호흡하고 살면 아브라함에게 축복하신 그 축복을 받을 줄 알았습니다. 이제 예루살렘에 남아있는 백성들의 생활이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죄가 무슨 일 을 하는가 보십시오. 이스라엘의 도성들이 이제 폐허가 되었는데 이 모두 죄의 결과였습니다.

3. 그들은 아직 교만하여 하나님을 거역하고 우상을 섬겼습니다 25절에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가 피 있는 고기를 먹으며 너희 우상들에게 눈을 들며 피를 홀리니 그 땅이 너희의 기업이 될까보냐”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저들이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을 지키지 아니했다는 말입니다. 저들에게는 하나님의 율법이 생명이었습니다. 문자 하나도 빼지 않고 그대로 지키는 것이 저들의 신앙입니다. 그런데 피 있는 고기를 먹는 것은 저들의 신앙이 타락된 것을 말합니다. 신앙이 희미해졌다는 말입니다. 신앙이 변질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에 복을 받을 줄 안다고 했습니다. 레 3:17, 17:10-14, 신 12:16, 삼상 14:32-34에 피를 먹지 말라고 금지시켰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눈은 우상에게 돌렸던 것입니다. 우상을 섬기는 죄는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제일 큰 죄입니다. 십계명 제 1계명과 제 2계명은 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고 너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저들은 우상을 섬기면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에 복 받는다 고 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너희 우상들에게 눈을 들며 피를 홀리니 그 땅이 너희 의 기업이 될까 보냐”라고 외쳤습니다. 다시 말하면 “너희들이 아무리 조 국을 지키고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을 지킨다 할지라도 우상을 섬기면서 신앙이 다 변질되었으니 축복을 받을 줄 아느냐”는 말입니다.

5. 너희는 너희의 힘을 믿으면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섭리를 믿지 도 않고 하나님은 안중에도 없는 교만을 경고했습니다 26절에 “너희가 칼을 믿어 가증한 일을 행하며 각기 이웃의 아내를 더럽히니 그 땅이 너희의 기업이 될까보냐”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예루살렘에 잔류자들은 세상적인 힘이나 완력을 믿고 정치의 힘이나 경제의 힘이나 세상적인 힘을 가지고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한다는 말입니다. 사실 폭력주의, 완력주의, 물리적인 힘이라고 하는 것은 말로 설득시킬 수 없을 때 사용합니다. 이것은 동물적인 방법이요 비신앙적이요 비인간적인 방법이요 비윤리적인 방법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힘보다 사람의 힘을 더 의지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더 가증한 일 을 행하되 이운의 아내를 더럽혔다 했습니다. 이 말씀은 저들의 도덕 생활 이 타락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기업을 차지할 수 있겠느냐고 경고했습니다.

6. 이스라엘 땅은 가장 영광스러운 땅이지만 이제 유대인의 죄로 극히 황무하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28절에 “내가 그 땅으로 황무지와 놀라움이 되게 하고 그 권능의 교만을 그치게 하리니 이스라엘의 산들이 황무하여 지나갈 사람이 없으리라”고 했습니다. 이 모든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그들이 범한 가증 한 일로”인한 것입니다. 나라로 황무지가 되게 하는 것은 바로 죄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죄를 “가증한 일”이라 칭합니다. 저들이 교만할 것이 무엇입니까? 나라는 망하고 국론은 분열되었습니다. 백성들은 원수의 나라에 인질로 잡혀가고 예루살렘은 함락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무엇을 가지고 교만할 것입니까? 이처럼 6가지 죄를 짓고서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도리어 교만했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말세 교인이 가진 신앙이었습니다. 저들은 피 있는 고기를 먹으면서도 우상을 섬기면서도 폭력을 휘두르면서도 이웃의 아내를 더럽히는 죄를 범하면서도, 교만의 죄를 범하면서도 아브라함의 자손들이기 때문에 예루살렘 땅만 밟고 서 있으면 복을 받는 줄 알았습니다. 시온성의 공기만 마셔도 축복받는 줄 알았습니다. 이것은 완전히 자기를 기만하고 속이는 신앙이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저들이 지금도 속고 있다는 것을 경고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옛날 에스겔 선지자 시대 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도 자기 기만의 신앙이 있습니다. 스스로 속고 있으면서도 속는 줄 모르고 살아가 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을 얻는 것은 우리의 생활이나 우리의 행동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는 줄 아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행함으로 구원 얻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로 십자가의 보혈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습니다. 이 진리를 믿기 때문에 한 주간 동안 세상에 나가서 일할지라도 거리낌 받지 않습니다. 한 주일에 한 번씩 교회에 나와서 예배만 드리면 천당갈 줄 믿습니다. 예배당 땅만 밟고 비 없는 구름처럼 주일날 한 번 왔다가는 것으로 만족하는 신앙이 있단 말입니다. 그리고 안심하고 자족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무슨 짓을 했든지 간에 예배당 공기만 호흡하면 자연히 축복받는 줄 아는 것은 완전히 자기를 속이고 있는 자기 기만의 신앙입니다. 종교개혁 직전에 로마 가톨릭 교회가 신앙의 초점을 물질과 돈에다가 맞추었습니다. 죽어서 연옥에 가 있는 영혼이라도 돈을 드리면 그 속전으로 인하여 낙원으로 옮겨간다는 신앙을 고조시켰습니다. 그래서 몇 년 전만 해도 죽은 부모를 위해서 속전을 드리고는, 오늘부터 연옥에 가 있는 우리 부모들이 낙원에 가 계시겠다고 안심하고 평안한 마음으로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긁어모은 돈을 가지고 로마에다 세계에서 제일 큰 성당을 지었습니다. 영국에서는 웨스터민스터 성당을 지었고 불란서에서 는 노틀담사원을 지었습니다. 이런 신앙이 자기 기만의 신앙입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을 하게 된 것이 아닙니까? 오늘 우리의 신앙을 물질세계에다 초점을 맞추려는 것은 잘못된 신앙입니다. 우리나라가

6.25전쟁으로 인하여 상처를 입은 우리 민족에게 희망 과 위로와 용기를 주기 위해서 부흥회를 자주 열었습니다. 그 때 많은 목사들이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특별히 선택하신 민족이라고 고조했습니다. 거기까지는 좋았으나 성경을 잘못 해석하며 자기 마음대로 성서를 풀이합니다. 성경에 횐 두루마기를 입은 무리들이 생명수 강가에 서있는데 그것이 곧 우리 한민족이라고 확고한 답을 정하고 서슴없이 말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흰옷 입은 백성은 우리나라 백성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목사는 더운 여름에도 휜 두루마기를 입고 강단에서 설교를 했습니다. 횐 두루마기와 구원이 무슨 상관있습니까? 전도관의 박태선은 자기가 성경에서 말하는 감람나무라고 했습니다. 통일교의 문선명은 문은 영어로 (Moon) 즉 달이라는 뜻이고, 선은(Sun) 태양인데 자기는 달과 해와 같이 밝은 빛을 이 땅에 전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가 자기 부하라고 했습니다. 우리 민족은 하나님이 특별히 세운 선민이기 때문에, 감람나무가 우리 가운데 있기 때문에, 해와 달처럼 빛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 민족을 축복하실 것이라고 믿는 것은 자기 기만의 신앙입니다. 이런 신앙은 어리석은 신앙입니다. 이런 신앙은 자기를 속이는 신앙입니다. 이런 신앙은 열매 없는 나무와 같고, 물 없는 우물 같은 신앙입니다. 에스겔이 우리에게 주시는 경고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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