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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화평케 하는 자의 복 (마 0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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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은 산상보훈 팔복의 일곱번째의 축복인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입니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입니다. 에덴동산 동쪽에서 아담의 아들인 가인과 아벨의 싸움의 시작에서 오늘까지 싸움의 역사는 그치지 않습니다. 1480년부터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 400년의 통계만 해도 국가간의 큰 전쟁이 J. 라이트 교수의 “전쟁사”라는 연구 논문에 의하면 영국에서 78번, 프랑스에서 71번, 서바나에서 64번, 러시아에서 41번, 독일에서 23번, 중국에서 11번, 일본에서 9번이며 그외 소민족간의 싸움은 평균이 모두 300번이며 세계 전쟁사인 제 2차세계대전 이후에도 무서운 전쟁사는 오늘날까지 없는 때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대개의 전쟁국들은 그 전쟁의 명분을 평화를 위한 전쟁이라고 국호를 내세웁니다. 전쟁은 국가간만의 전쟁이 아닙니다. 종교간에, 민족간에, 심지어는 교회간에, 교인간에, 개개인의 증오, 시기, 질투심은 오늘날 극과 극을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평화를 원한다고 해서 평화가 오는 것은 아닙니다. 평화는 말씀아닌 하나님에서 옵니다. 1) 롬 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였습니다. 2) 고후 5:19,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케하시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엡 2:14,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인간의 막힌 담을 헐으사 화평을 가져오시고.” 우리 주님이 오실 때 주님을 모시고 주님의 이 귀한 화평의 직무를 감당하려 노력하는 자가 하나님의 작은 아들들이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땅에 우리 주님이 오실 때 평화가 이루어 질 것입니다. 사 11:6-10의 말씀대로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어린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함도 없을 것이라”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화평케 하는 자입니다. 영국의 정객 코부텐이 명성이 높아질 때 누가 그에게 “영국인으로서 최고의 명예인 죽음 이후 웨스터민스터에 열왕과 같이 묻힐 것이라”하니 “나의 육신은 이러한 전쟁의 사람들 사이에 편히 쉴 수 없다”며 거절하였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평화의 보금자리에만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다고 하신 말씀이 성경의 각국 나라말에 그 뜻이 각각 다르게 기록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화평, 평강, 평안, 화목 등 여러 가지 말로 기록되어 있는데 근본 뜻은 하나인 줄 압니다. 그러나 원뜻은 샬롬입니다.

1. 화평이라는 뜻 샬롬이라는 평화의 말은 전쟁, 분쟁이 없는 평화라는 말뿐만 아니라 생활의 번영, 마음의 평안, 그리고 사람과의 화목 그리고 종교적으로 하나님과의 언약이 완전한 상태에 유지된다는 그런 뜻으로 하나님과 인간간의 화평, 조화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말하는 화평을 간단하게 말하면 네 가지입니다. 첫째는 하나님과 사람간의 화평입니다. 둘째는 사람 마음 속의 화평입니다. 세째는 믿는 성도간의 화평입니다. 네째는 모든 사람간의 화평이라 하겠습니다.

(1) 하나님과 화평을 누려야 합니다. 사람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보내시어 십자가에서 우리 화목제가 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죄사함을 받고 믿음으로 구원을 얻어서 하나님의 화평을 누릴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도 하나님과 우리와의 화평이 성립되어야 할 것입니다.

(2) 자아와 자아와의 화평입니다. 우리 마음 속에 화평을 누려야 합니다. 자아와 자아가 화평하지 못하다는 말은 내 영과 육과의 화평을 이루지 못함을 말합니다. 내가 선을 행하고자 하나 내 마음에 다른 법이 있었다 하였으니 사도 바울은 겉사람과 속사람의 화합을 이루지 못하여 고민하였습니다. “내 속에 있는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나 내 몸에 다른 법이 있어 서로 싸워 나를 사로잡아 죄의 법에 나를 복종케 하니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구원하랴”하며 바울은 탄식을 하였습니다. 육의 사람, 영의 사람이 조화를 이루고 화평을 이룰 때 하나님의 사람이 됩니다. 이 화평은 주께서 주실 때 가능합니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평안을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 말라,” “모든 지각에 뛰어나는 하나님의 평강이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찌어다”라고 여러번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주께서 우리 마음 속에 평안을 유산으로 주셨습니다.

(3) 믿는 형제간의 화평입니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음이 생각나거든 제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고 형제간에 화평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형제간의 화평이 필요합니다.

(4) 모든 사람과의 화평입니다. 바울 선생은 롬 12:18, “할 수 있거든 너희는 모든 사람으로 화평하라” 했습니다. 히브리 기자는 히 12:14,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하고 거룩함을 좇으라”고 했습니다. 사람과의 사이에 화목이 없을 때에는 허위와 가식이 생기는 것입니다. 화합이 없어지면 마음과 마음과의 사랑이 없어져 모든 면에 형식과 허식, 위선으로 대하기 쉽습니다.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우리를 저와 화목케 하시고 또 화목케 하는 직책을 우리에게 주었다”고 했습니다. 그런즉 하나님과 성도와 더불어 화목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화목케 하여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성경은 네 가지 화평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2. 화평하는 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1) 화평을 만드는 사람입니다. 화평케 하는 자라는 말은 영어 성경에 Peace maker라 하여 평화를 만드는 자라 하겠습니다. 그렇다고 양보만의 사람이 아니요 전쟁 부정론자도 아닙니다. 평화를 만들지 않고 회피하는 것은 양보, 회피를 하므로 전쟁 위기를 지연시킬 수 있을지도 모르나 근본적 문제는 해결해 주지 못합니다. 소극적으로 화평을 누리기를 좋아하고 화평한 상태를 계속 유지하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됩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화평케 하는 황무지에서 화평을 개척하고, 화평을 만들고, 화평이 깨지고 격렬한 인간 사이에 들어가 화평이 끊어진 줄을 다시 원상태로 해주는 사람입니다. 특별히 믿는 성도간에 화평한 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 시편 기자가 읊은 말씀과 같이 시 133편,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 옷깃을 적심 같으며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같도다.” 이와 같이 온전한 화평을 얻은 사람들이 주 안에서 한 마음, 한 뜻이 되어서 화평한 가운데 싸는 믿는 사람들의 모습, 이와 같은 사람들이 모인 그 교회야말로 은혜스럽고 아름답고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특별히 화평을 가져오기 위하여 한없는 노력을 아끼지 아니합니다. 국가, 사회, 교인간에도 화평을 위해 힘써야 할 것입니다.

(2) 화평케 하는 자는 화평을 충만히 소유한 자입니다. Peaceful man이라 합니다. 평화성을 가진 자, 평화를 애호하는 자를 말합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성질이 본래부터 평화적인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채는 우리 모두 불화한 성격이었으나 후에 성령의 은사로써 평화적인 사람이 되어 화평케 하는 자가 되어져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3. 화평케 하는 자는 어떻게 하나님께 평화를 돌립니까?

(1)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입니다. 사도 바울은 롬 14:18,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받으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고 말했습니다. 고전 10:31,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라.”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자신의 그 어떤 존귀한 일보다도 하나님의 영광을 우선적으로 존귀하게 아는 사람입니다. 그의 마음 전부는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 차있고 종일 종야 그것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화평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양보하며 무슨 손해를 당하더라도 감지하고 불붙는 가마솥이라도 뛰어들어갈 각오가 되어 있는 자입니다.

(2) 화평케 하는 자로서 열매를 맺는 자입니다. 감사의 열매를 맺습니다. 구약에서는 수은제, 화목제, 평화제, 감사제, 구원제 등을 하나님께 제사드리므로써 하나님과 평화로운 관계와 화목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신약에 와서는 하나님께 감사로 시작한 신앙생활을 통해서 하나님과 화목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열매인 “사랑, 희락, 화평, 온유, 겸손, 자비, 양선, 절제, 충성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4. 화평케 하는 자의 복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회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라고 하였습니다.

(1) 하나님의 아들이 됩니다. 가정, 사회, 교회에서 화평케 하는 자가 있으니 이는 분명히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우리는 이 복잡한 세상에서 살 때에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이 많고, 그래서 기분이 상하거나 화가 치미는 일들을 경험합니다. 그것을 참고 내가화평을 이룩하는 때에 나는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가 바로 성도입니다. 그가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성령받은 사람입니다. 세상은 평화인을 비겁한 자라고 하며, 소극적인 인물이라고도 하며, 위인도 아니요, 영웅도 아니라 할 것이나 그러나 주님은 평화를 만드는 이들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칭하리라 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칭함을 받았으면 그것으로 만족이요, 그 이상의 더 좋은 칭호가 없기도 하려니와 있다해도 필요없는 것입니다.

(2) 즐거움이 있습니다. 잠 12:20, “남을 해할 생각을 품으면 제 꾀에 넘어가지만 함께 잘 살기를 꾀하면 즐거움이 돌아갈 것이라”고 했습니다. 시 37:38, “화평한 자는 결국 평안이로다”고 했습니다. 오늘은 그 어느 때보다도 한국교회가 화평해야 할 이유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 하나로 이 땅에는 공산당들이 38이북에서 우리를 노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 교회의 우리 성도들은 무신론자 앞에 선 하나님을 믿는 성도로서 하나로 마음을 합하여 서로 화평을 이루는 것이 요구됩니다. 우리 교회는 신학자도 요구되고 여러 분야에서 모든 분이 필요하지만 보다 더 필요한 분은 누구이겠습니까? 화평케 하는 목사, 교역자, 장로, 권사, 집사, 성도들의 화평을 만들고 화평에 충만한 자가 필요합니다. 화평케 하는 자가 되려면 하나님과 내가 화평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사이에 화평이 이루어지면 내 마음속에도 화평이 이루어집니다. 그 화평을 가지고 다른 사람과 화평한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화평의 복음 전파, 화평운동을 전개할 수 있습니다. 사도 야고보는 말합니다.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순결하고 다음에 화평, 관용, 양순, 긍휼의 열매가 가득하고 편협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케 하는 자는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우리 모두 화평하여 이 사회에 하나님의 아들이 되며 의의 열매를 거두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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