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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와 율법 (마 05: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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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절에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율법은 구약의 처음 부분이요, 선지자는 구약의 끝부분입니다. 즉 율법과 선지자란 구약 성서의 별명으로 불리운 것입니다. 당시의 유대인들의 그리스도에 대한 반항은 그들이 자기들이야말로 모세의 충성스러운 제자이었고(요 9:28), 그리스도를 율법의 파괴자로 오해한 데서 결정에 달합니다. 가령 안식일을 엄수하여 안식일에는 붓도 두고 머리핀도 놔두고 바늘도 옷에 꽂는 것을 금하고, 심지어 입에 해 넣은 이까지도 뽑아 두고 다녔던 그들이 예수님께서 혈기마른 병자에게 상을 메고 가라고 하셨을 때 매우 놀랐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추측할 수 있습니다(요 5:10). 그리하여 이 적개심이 커져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게 되었고, 그 죄목은 율법을 배반한 죄라고 날인 찍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행 21:28에서 예수가 이렇게 죽임당한 형편을 변명하면서 당시 유대인들을 비난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들이 그렇게도 중요시 하는 구약 성서에 일관되어 있는 중심 명제가「오시는 그리스도」인 것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최초의 복음이라고 불리우는 창 3:15에 있는 여인의 후손은 뱀의 머리를 친다는 말씀에서 시작하여 구약은 율법으로 혹은 시가로, 흑은 선지자로, 혹은 역사서에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하고 있습니다.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까지도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최악의 죄는 그들이 구약 4,000 년의 역사를 통하여 메시야를 고대하면서도 그 바라던 메시야가 실제로 왔을 때 그를 오해하여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다는 사실입니다.

1. 율법의 완성 주님께서는 율법의 완성자이십니다. 주님께서 “율법의 일점 일획도 폐하지 못하고”라고 한데서 그 사실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율법 준수의 여부에 따라 천국에서 크냐 작으냐는 것이 결정된다고까지 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당신이 율법을 완성하시는 증거로서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외식적이며, 관례적이며, 궤변적으로 율법을 해석하고 가르치고, 준행하며 그 마음이 하나님을 멀리 떠나 있던 (마 15:8)서기관과 바리새인 식의 의로서는 구원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불완전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율법과 선지자를 완전케 하러 왔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불완전한 것을 완전케 하러 오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2. 예언의 완성 예수님의 탄생은 선지자들의 메시야 탄생에 관한 예언을 그대로 이루었고 예수의 애굽 피난과 나사렛 귀환과 갈릴리 전도를 위시하여 각지에서 행한 모든 성업은 선지자들의 예언대로 완성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죽으심과 부활, 승천을 통하여 모든 선지자의 예언대로 완성했으니 예수의 재림과 앞으로 되어질 모든 일이 다 선지자들의 예언대로 완성될 것임에 틀림없는 것입니다. 18절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고 하심은 이 사실을 확증해 주는 말씀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 불변성을 가지고 있어 율법의 요구는 영원히 유효하고 그 효력은 영구히 존속합니다. 천지가 폐하지 않는 한 율법의 일점 일획은 어김없이 성취됩니다. 바꾸어 말하면 율법의 모든 말씀이 다 성취된 연후에 이 세상은 종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일점 일획이라도 어김없이 완전히 성취됩니다. 이것은 영원 불변의 진리입니다. 이 말씀은 생명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좌로나, 우로나 치우침없이 주님께서 완성하신 말씀 그대로 영접하여야 합니다.

3. 의의 완성 의는 율법으로 완성할 수 없고 율법의 마지막인 예수 그리스도로 완성할 것이니 모든 신자에게 의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의가 율법의 행함으로 이루지 못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만 완성될 것이니 우리들의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이 알고 있는 율법 이상으로 그 의미를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들의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살려고 하는 태도만은 옳았습니다. 그런데 그 뜻을 찾을 때 외형적인 형식과 규정에서 찾으려 한 데 잘못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율법 배후에 있는 참된 원리가 무엇입니까? 십계명을 보시기 바랍니다. 십계명은 모든 법의 본질입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말하면 사랑과 존경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존중히 여기며, 하나님의 날과 하나님의 이름을 존중히 여기며 (1-4계명), 부모를 존중히 여기며, 생명을 존중히 여기며, 가정의 신성을 존중히 여기며, 재산을 존중히 여기며, 인격을 존중히 여기며, 진리를 존중히 여긴다는 것입니다. 즉 십계명의 근본적 원리는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고, 이웃을 존중히 여기고, 자기 자신을 존중히 여기라는 것입니다. 이 원리가, 법의 기반입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의는 이런 원리를 무시한 형식만을 추구한 의입니다. 그들은 율법을 준수한다 하였으나 율법의 의를 제대로 준수하지 못했습니다. 법으로 준수하려 하지만 법으로는 인간의 의를 이루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의 동기는 법이 아니라 사랑으로 출발합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하나님의 사랑을 통한 강권에 못 이겨 감격하여 아쉬움없이 목숨을 희생하기까지 바치는 것입니다. 유대인은 하나님의 법을 지키려 힘썼으나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 감격하여 생명을 바쳐 주님의 명령에 따르는 것입니다. 법을 지키는 자도 그 법만 지키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사랑에 감사하는 자는 끝이 없습니다. 주님은 부활 후에 베드로에게 세 번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양을 먹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사랑으로 일을 행할 것을 명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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