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칠계명에 대한 예수의 교훈 (마 05:27-32)

첨부 1


그리스도와 율법을 비교하신 둘째 것은 제 7계명에 관한 것입니다. 율법은 간음치 말라는 결과적인 면에 관해 있습니다만 예수님께서는 먼저 “마음의 간음”을 경계하셔서 중심으로 이 죄에서 떠날 것을 교훈하셨습니다. 27-28절에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이 계명에 대한 제 일 방어선을 마음에다 긋고 있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는 말하기를 “아내를 마음으로 사랑하지 않고 육신만이 관계한다면 자기 아내에게까지라도 간음죄가 성립된다”고 하였습니다. 제 1은 마음, 제 2가 육체라는 순서는 정당한 부부의 관계에나 범죄의 경우에나 적용된다고 봅니다. 단테의 신곡에서 말하는 빼아뜨리체에 대한 음욕을 떠난 청아한 사랑과 맑스주의의 견해에서 우리는 기독교와 무신론의 입장을 잘 대소하고 있다고 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우리 기독교는 육신보다 마음에 더욱 중점을 두고 무신론자들은 마음보다 육신에 더욱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을 말했습니다. 대 신학자인 오리겐은 남녀가 같이 공부하는 신학교의 교장으로서 독신자이기 때문에 미녀들이 많이 따랐으나 이 계명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고자가 되고 이 구절로 자기를 변호하였습니다만 필자는 오히려 성 바울의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 함이로다”라는 고전 9:27에 있는 말씀이 이 구절에 타당한 해석을 주는 것이라고 봅니다. 성 제로미는 정욕이 타오를 때 돌로써 가슴을 쳤고, 성 베르날은 냉수에 뛰어 들어갔고, 성 베네틱은 가시밭에 굴러서 정욕의 유혹을 정복하였습니다. 마음의 방어선이 침범당할 때 자기의 몸을 극기함으로써 이 죄에서 승리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제 7계명에 대한 제 2방어선을 마음에서 오른 눈과 팔로 옮겨 놓았습니다. 29-30절에 “네 오른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눈으로 보는 것, 손으로 악수하는 것은 확실히 정열의 도화선이 되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오늘 우리가 사는 사회는 물질적으로, 경제적으로 우리 생활에 안정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수반되는 것은 육신의 생활이 안정될 때 내적 생활이 타락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떤 면으로 나타나는가 하면 성도덕면으로 나타납니다. 세계에서 가장 복지제도가 잘된 나라는 스웨덴입니다. 실업자들도 다 사회에서 급여가 나오고 병원에 입원 수술하면 백만뭔 이상의 수술비도 500원 내로 완불하고 입원금, 월급까지 나옵니다. 모든 사람의 생활에 아무 걱정이 없습니다. 그런데 세계에서 성자유, 성개방, 성도덕이 제일 문란한 나라가 어디인지 아십니까? 바로 스웨덴입니다. 잘 사는 나라는 모두 성도덕이 문란합니다. 미국과 영국의 성도덕은 우리가 상상도 못할 만큼 문란합니다. 우리 나라도 예외는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성도덕이 문란합니까? 권세있고, 돈있는 자들입니다. 세상에 다른 걱정이 없는 자들입니다. 소돔과 고모라 사람을 보십시오 비옥한 땅에서 풍부한 산업을 누리던 때에 죄악이 관영했습니다. 숨어서 파는 음탕한 책들, 그림들, 놀음들, 영화, 심지어 광고에 이르기까지 흥분과 자극을 주는 짓들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28전에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마음에 음욕을 품는 것을 금하라 했습니다. 누구든지 여자를 보고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사람은 식욕, 명예욕, 색욕의 본능이 있습니다. 육신을 가지고 있으니 자극을 받을 때 일시적으로 정욕이 일어납니다. 사실입니다. 만일 없다면 고자요, 목석이요, 병신일 것입니다. 그러나 음욕은 지나가니 그 음욕을 품어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닭이 달걀을 품고 있으면 무엇이 나옵니까? 병아리가 나옵니다. 뱀이 알을 품고 있으면 뱀이 나옵니다. 욕심을 품고 있으면 도둑질합니다. 미움을 품고 있으면 살인합니다. 음욕을 품고 있으면 간음합니다. 즉 악한 생각을 품지 말아야 합니다. 해가 지도록 품지 말아야 합니다. 욕심도 잠시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래 품지는 말아야 합니다. 왓슨이란 17세기의 영국의 유명한설교가는 이런 권면을 하였습니다. 1) 매음하는 여자의 모임이나 그 집에 가까이 가지 말라 2) 보는 것을 조심하라 3) 입술을 조심 하라 4) 우리의 마음을 지켜야 하고 5) 옷차림을 조심 하고 6) 악한 동무를 조심하고 7) 나쁜 놀음을 조심하고 8) 음탕한 그림책을 피하고 9) 게으름, 한가한 것을 피하고 10) 하나님을 두려워 하며 살고 11) 하나님의 말씀을 기뻐하라라고 하였습니다. 31-32절에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거든 이혼증서를 줄 것이라 하였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저로 간음하려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린 여자에게 장가든 자도 간음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신명기 24장에 누구든지 결혼 후에 그 아내에게서「수치되는 일」이 발견될 때는 이혼증서를 주어서 이혼할 수 있고 또 이혼증서를 받은 여인은 그대로 재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수치되는 일의 내용을 바리새인들의 보수파와 자유파는 해석을 다르게 하고 있습니다. 보수파, 삼마이파에서는 간음으로 여겼고, 자유파, 힐렐파에서는 일상 생활의 사소한 일이라 하여 이혼을 넓게 하였습니다. 우리나라는 이혼의 조건이 칠거지악인 무자, 음행, 불순구고, 구설, 도절, 투기, 악질(병) 등으로 남존여비의 윤리를 드러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여기에서 수치되는 일을 음행으로 단정하여 음행한 연고 없이 이혼할 수 있다고 하여 예수는 이혼을 불성립이란 전제조건하에 이혼할 수 없고 음행없이 이혼한 여인과의 재혼을 사실은 이혼한 여자와 결혼이 아니라 남의 아내를 취한 것임으로 간음으로 정한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의 교훈은 바리새파, 보수파의 입장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의 기독교 국가라는 미국도 이혼율이 30퍼센트가 넘고 있습니다. 이것은 경솔한 남녀의 교제가 가져온 결과입니다. 우리는 자유의 버림, 성도덕 타락의 풍습을 막고 건전하고 청결한 기독교 가정을 이룩하는 것이 이 시대에 부여하는 사명이 아닌가 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