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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수고하고 무거 운 짐 (마 11:2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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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절에 보면 예수님의 말씀을 가장 맡이 듣고 그 권능을 가장 많이 체험한 지방 사람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므로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면 그 성이 오늘날까지 있었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고 참으로 무서운 책망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전도 근거지인 가버나움을 소돔 이상의 형벌로 책망하시는 주님의 마음은 아프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본 마음은 오히려 자비로써 충만하였나니 도리어 하나님께 감사하며 주님께서 본문에 말씀하시기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하셨습니다. 소돔 이상의 형벌을 선고하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하셨으니 소돔의 형벌, 지옥의 고통을 체험한 후에라야 참 복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인도의 산다싱은 불교인으로써 예수교를 반대하였으나 그가 17, 18세 때 많은 불경책도 읽고 여러 수도사를 찾아가 보았으나 마음의 고민과 번민을 해결하지 못한 채 자살 직전에 성경을 읽던 중 본문말씀 28절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는 말씀을 읽고 새 빛을 발견하여 구원얻고 성자가 되었습니다. 산다싱은 품행이 단정하고 가정이 부요하고 신체도 건강하였으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견디지 못하였으니 생로병사의 허다한 중생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 없는 자 그 누가 있겠습니까? 7, 8월 한 여름의 폭양이 내려쪼일때 한 노인이 등에 짐을 짊어지고 구슬같은 땀을 흘리며 가고 있을 때 만일 효성이 지극한 아들이 있었다면 “아버지! 제가 짊어지고 가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택시에 아버지를 모시고 짐도 싣고 가면 그 얼마나 기분이 좋겠습니까?”라고 말씀 드릴 때 그 노인은 힘들여 아들자식을 길렀더니 오늘에서야 낙을 보는구나 하시며 퍽이나 대견스럽게 생각하실 것입니다. 세상에 이렇게 무거운 짐을 대신 져줄 이 없는 자는 불쌍한 자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우리의 짐을 대신 져주실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분은 우리의 어떤 짐을 져주시겠습니까?

1. 질병의 짐진 자는 주님께서 오라고 하십니다 소경, 절뚝발이, 귀머거리, 문둥이 그 밖의 무수히 많은 허다한 병들은 실로 우리의 무거운 짐입니다. 사람들은 병을 퇴치하려고 지구가 생긴 이래 6,000년간 약초를 찾아 다녔으며 오늘날 근대 의학의 발달을 자랑하나 의술이 발달할수록 불치병은 더 늘어날 뿐 아니라 말세 재앙 중에 질병으로 고통 당하는 자가 많으리라 하였으니 수고의 병고를 줬어질 수밖에 없는 인생을 향하여 주님께서 “내게로 오라”고 하신 것입니다. 사 53:4-5절에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담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이 예언대로 소경 된 자, 벙어리 된 자, 귀먹은 자, 문둥병자, 절뚝발이, 앉은뱅이 등 많은 병자의 질고를 담당하사 우리의 병을 고쳐 주시고 아울러 평안함을 주셨던 것입니다.

2. 죄짐을 진 자는 주님 앞에 나오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말씀하신 직후에 바리새인 시몬의 집에 청함을 받아서 갔을 때 예수님의 발을 눈물로 적시고 머리털로 씻고 그 발에 입맞춘 여인이 있었으니 그 성의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 여인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눅 7:50)고 하였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내게로 오라는 말을 듣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그 여인은 예수에게 나아가 자기의 죄짐을 벗어 버리고 편안히 돌아갔습니다. 이 여인처럼 죄짐을 지지 않은 자가 누구이겠습니까? 바리새인 시몬도 죄인이요. 베드로도 죄인이요, 공자도 죄인이요, 석가도 죄인입니다. 주님은 죄짐을 진 중생을 향하여 “수고하고 무거운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하십니다. 바울도 어거스틴도 이 무거운 죄짐을 주님 앞에 내놓아 편히 쉼을 얻었습니다. 병고의 짐이 괴롭다하나 죄짐에 비하여 오히려 가볍고 죽음의 짐이 무겁다 해도 죄짐에 비하면 가볍습니다. 왜냐하면 죄로 인하여 병고와 사망을 낳기 때문입니다. 열번 자살해도 죄짐은 없어지지 아니하며 자기의 손을 백번 찍어도 죄짐을 벗어나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지옥보다 괴롭고 음부보다 무서운 죄짐은 오직 예수의 십자가 아래 나아가야만 벗어놓을 수 있는 것입니다.

3. 죽음의 짐진 자도 내게 오라 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외치며 고민했습니다. 로마서 7장에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부르짖었습니다. 사람마다 사망의 몸을 짊어지고 있습니다. 몇날 후, 몇해 후, 아니면 몇십년 후 송장이 될 사망의 몸을 짊어지고 다닙니다. 왜 송장을 짊어지고 다닙니까? 눈으로는 보아야겠고 귀로는 들어야 하며 혀로는 말해야겠고 입으로는 먹어야겠고 몸으로는 소화시켜야겠고 가슴으로는 숨쉬고 손으로는 짐을 들어야겠고 발로는 걸어야겠기에 이 송장을 짊어지고 세상에서 사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시체는 적어도 네사람의 인부가 들어야 할 무거운 무게를 가지고 있는데 사람마다 스스로 장래의 송장을 짊어지고 다니는 것입니다. 참으로 불쌍한 존재입니다. “오호라!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내랴.” 로마의 사형법 중에 산 죄인을 송장과 함께 묶어버리는 제도가 있습니다. 시체의 코와 죄인의 코, 시체의 배와 다리에 죄인의 배와 다리를 맞대어 묶어두면 죄인은 시체의 독에 고통하다가 함께 썩고 마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구역질이 나다가 1주일 지나면 굶주림에 지쳐 썩은 장을 환기도 하다가 죽고 맙니다. 혹독하고 잔인한 사형제도입니다. 이런 로마의 사령제도를 알고 있는 바울은 “누가 나를 사망의 몸에서 건져내랴”고 울부짖었습니다. 이 말은 시체와 맞묶어 놓은 죄인이 “아이고 누가 나를 이 시체에서 풀어주리요”하는 통성을 연상하는 것입니다. 이런 죄인을 향해 수고하고 무거운 사망의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주님은 이 시간도 외치고 계십니다.

4. 육의 짐. 생활고의 짐, 자녀들의 염려도 다 주께 맡기라고 하 십니다 예수 잘 믿는 가정, 예수 잘 믿는 나라에서는 못살거나 굶주리거나 자식 걱정에 시달리지 않습니다. 서독, 미국, 스위스, 덴마크, 캐나다 같은 나라가 좋은 예가 될 것입니다. 또한 예수를 2대, 3대째 믿는 가정은 모두 잘살고 자녀들이 잘 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은 다 주 앞에 나와 그 짐을 벗어버리기 바랍니다. 히 8:12절에 “내가 저희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저희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히 10:17절에 “내가 저희 죄와 불법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죄짐을 벗고 의의 짐을 지고 율법의 짐을 벗고 사랑의 멍에를 메시기 바랍니다. 마귀의 멍에를 벗어 버리고 예수의 십자가를 지고 나가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생명의 길이며 주님을 사랑하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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