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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베드로의 신앙고백 (눅 09: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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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16:16에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하는 예수님의 물음에 대하여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한 사도 베드로의 고백은 역대의 강력한 신앙의 지침이 되고 있으며, 2000년간의 기독교 역사를 통해 신앙의 지침이 된 것입니다. 그것은 니게야 신조, 사도신경, 하이델베르크 신조, 웨스트 민스터 신조, 소요리 문답에서 일관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에 있어서 베드로의 고백은 의미심장한 신앙고백입니다. 베드로의 고백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는 이 고백은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어느 교파, 어느 교회에서도 변치 않을 신앙고백입니다. 이 신앙고백의 배경을 보면 더욱 가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유대교와의 충돌로 시작합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과 벳새다 서기관, 온유대주의자들은 그리스도를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유대인들이 반대했는데도 이때 복음의 막을 올린 것입니다. 마태복음 15장에 보면 이 고백에 앞서서 어느 가나안 여인이 예수님께 귀신들린 딸을 치유해 달라고 간구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대답치 않으시고 가던 길로 가셨습니다. 이에 더욱 더 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대답하시기를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여인은 계속해서 간구하였습니다. 그 여인은 “옳소이다만은 개들도 주인의 밥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믿음대로 될찌어다”라고 하셨습니다. 참으로 가나안 여인의 아름다운 믿음이었습다. 이후로 예수님께서는 이방 땅으로 복음증거하러 가시었고, 그후 공적인 전도보다 제자들 양성에 힘을 기울인 것입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을 가르친 결과를 알기 위해서 물어보았습니다. “세상은 나를 누구라 하더냐?” 이 질문에 제자들은 대답하기를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대답에 만족하지 못하시고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이때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기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는 만족하시면서 격찬하셨습니다.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노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그의 신앙고백으로 큰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는 베드로를 바요나 시몬의 인격으로 해석하여 시몬 베드로의 인격 위에 교회를 세우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천국의 열쇠를 가진 이는 오로지 베드로 뿐이며 베드로를 교황 1세로 하여 교황과 법왕은 베드로의 후계자로 정하고, 모든 사람의 죄는 교황만이 사죄와 중보할 수 있다고 해석합니다. 이 해석은 성경 말씀의 생명을 빼앗아 버리는 것이요, 문자적 해석으로는 주님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신교에서는 베드로가 시몬의 인격이 아닌 베드로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라는 신앙고백 위에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진다는 뜻입니다. 주님은 이 고백을 듣고 만족하며 그 후부터 그리스도께서는 예루살렘에서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붙잡혀 많은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서 고난당할 것을 예언했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붙들고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은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간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라사대 “사탄아 물러가라 나를 넘어지게 하는도다 하나님의 일을 생각치 아니하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라고 호통을 쳤습니다. 베드로는 하늘의 열쇠도 받고, 사탄아 물러가라는 말도 들었으니 베드로는 역시 연약한 인간의 그릇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람은 변화합니다. 변화하는 사람 인격 위에 어떻게 교회를 세우겠습니까? 변치 않는 진리 위에 교회를 세웁니다. 어떤 교회가 참 교회이며 부흥하는 교회입니까? 마귀의 시험이 오지 않습니까? 수가 좀 적어도, 가난하고 조직이 미비해도, 무식한 자가 많아도 이 고백이 살아 있으면 그 교회는 신앙에 넘어지지 않습니다.

1. 주는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말씀인 신구약은 오로지 준 예수 그리스도에게 집결되어 있습니다. 구약은 오실 메시야에 대해서, 신약은 오신 주님을 증거하는 말씀입니다. 로마의 모든 길이 로마 도시를 향해 집결되어 있듯이 말입니다. 우리 핏줄은 심장에 집결되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구약의 모든 인물, 모든 사건은 그리스도의 그림자입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 사무엘, 다윗, 엘리야, 이사야, 아모스 모두 오실 메시야의 그림자입니다. 요셉이 팔리고, 흥해가 갈라지고, 요단강을 건너고, 40년의 광야생활 등 모든 사건이 그리스도의 생애를 직접적으로 간접적으로, 강하게 약하게, 정면적으로 암시적으로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에서 그리스도라는 말은 헬라어입니다. 히브리어로는 메시야라고 합니다. 메시야라는 말은 기름부음 받은 파라는 히브리어입니다. 히브리인으로 기름부음 받는 자는 세 사람입니다.

(1) 왕은 기름부음으로 세웁니다. 삼상 9:16에서 사울에게, 삼상 16:3에서 다윗에게, 왕상 1:34에서 솔로몬에게 기름을 부어서 왕으로 세웠습니다.

(2) 선지자(예언자)를 세울 때도 머리에 기름을 부어 세웁니다. 왕상 19:16에서 엘리야에게 기름을 부어 예언자로 세운 것이 그 대표적입니다.

(3) 제사장도 기름부어 세웁니다. 출 28:41에 모세가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기름 부어서 제사장으로 세운 것이 나옵니다. 기름을 부어 세운 종은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사명을 받은 자입니다. 하나님을 대신하여 백성을 인도하고, 가르치고,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백성에게 전하는 자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괴로우나 즐거우나 앞날을 보고 살았습니다. 흉년이 들어 먹을 것이 없는 기근 때에도 전쟁에 패하여 바벨론 포로생활, 로마 식민지 생활을 할 때에도, 질병 속에서도 그들은 메시야를 기다렸습니다. 이스라엘은 메시야 대망의 민족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고난의 역사였으나 메시야만 오면 나라가 회복되리라 믿고 메시야를 기다렸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이렇게 메시야를 기다린 세월이 수천년이 지났습니다. 바로 이 메시야는 베드로가 주로 고백한 「그리스도」였습니다. 당신 외에는 오실 메시야가 없습니다라는 고백은 진실한 신앙고백입니다. 베드로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한 고백은 위대한 고백입니다. 그리스도를 믿을 때, 기독교인으로 생활할 때, 기도할 때 이런 고백이 필요합니다. 오늘 이 시대는 과학적으로,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최고도로 발달된 시대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더욱 더 불안하고 공포에 떠는 시대입니다. 전쟁의 기술은 발달하고, 물건은 산처럼 쌓였고, 전기의 혜택, 전자의 혜택을 받는 세상이지만 옛날 사람보다 더 불안에 떨면서 살 수밖에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뱀, 사자, 늑대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지진, 벼락이 무서워서도 아닙니다. 사람이 사람을 무서워하게 되었고, 자기 자신을 무서워하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인간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내 마음 속에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우리의 신앙고백은 “주는 그리스도시요, 주님은 나의 전 희망”이라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2.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세상 사람은 예수를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더러는 예레미야 선지자 중 하나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주님을 그렇게만 본 것은 아닙니다. 주님을 향해 악담하는 자도 있었습니다. 주께서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실 때 죄인의 친구라 했고 주께서 귀신들린 자를 고치실 때 그들은 주님을 향해 바알의 왕, 바알세불의 힘을 입은자라고 악담했습니다. 세리 삭개오의 집, 세리 마태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 바리새인들은 주님을 향해 포도주를 즐기는 자라고 비방했읍너다. 이렇게 주님을 비방하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주님을 선지자 중의 한 사람으로 좋게 보았습니다. 옳습니다. 주님은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세례 요한의 설교를 외쳤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검소한 생활도 세례 요한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엘리야같이 불을 토하는 선지자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처럼 눈물이 많은 선지자입니다. 예레미야는 이스라엘 멸망을 앞두고 예루살렘 성 심판을 예언하며 눈물을 흘린 선지자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의 아들이 아닙니다. 세례 요한, 엘리야, 예레미야처럼 사람의 아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예수님은 배고프기도 하고, 피곤도 하고, 주무시기도 하는 분이지만 사람의 아들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석가모니는 인간의 무상을 논한 사람의 아들입니다. 바울은 십자가 앞에 거꾸러진 죄인이었습니다. 공자도 인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3.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과거에도 살아계시고, 현재도 살아계시고, 장차 미래도 살아계실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요, 모든 신앙인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기 때문에 저희들로 하여금 베드로와 같은 신앙고백을 하기를 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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