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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의 바람 (행 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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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장에서 우리가 보았지만은 120명 제자들이 예루살렘 다락방에 모여 마음을 같이 하여 기도할 때에 오순절이 이르매 아버지의 약속하신 대로 성령이 임재하였습니다. 그런데 성령이 임재할 때 두 가지 양상으로 나타났습니다. 하나는 급하고 강한 바람 소리가 들렸고 또 하나는 불의 혀와 같이 갈라지는 것이 보였습니다. 하나는 바람, 하나는 불, 이 두 가지 상징으로 나타났습니다. 오늘은 바람과 같은 성령에 대하여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바람이라고 하는 것에는 생명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히브리어와 희랍어에서 바람과 성령은 같은 말로 사용됩니다. 히브리어에서 성령을 「루아흐」 라고 하고 바람도 「루아흐」라고 합니다. 희랍어에서 성령을 「푸뉴마」라고 하고 바람도 「푸뉴마」라고 합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요3장에서 니고데모에게 중생의 원리를 가르치실 때 바람을 이야기하면서 바람이 불기는 하지만 우리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는 것처럼 성령으로 난 자가 그러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겔37장에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네가 이 마른 뼈를 향해서 이렇게 예언하라. 바람아 불어라. 이 뼈들이 살리라” 하셨습니다. 에스겔이 이와 같이 예언할 때 사방에서 바람이 불어 와서 뼈들이 힘이 붙고 살이 붙어 부활하여 큰 군대를 이루었다고 했습니다. 바람은 성령의 생명이요 성령이 임하는 곳에 중생이 있고 성령이 임한 곳에 생명이 있습니다. 바람이라고 하는 것은 능력의 상징입니다. 산과 들의 나무들은 바람이 부는대로 움직입니다. 바람이 강하게 불면 나무도 강하게 움직이고 바람이 약하게 불면 나무도 약하게 동작합니다. 여하튼 바람의 세력대로 나무는 피동으로 움직입니다. 이와 같이 성도들도 성령을 받는대로 신앙적 활동이 나타납니다. 바람은 생명의 능력입니다. 부드러운 비바람은 엄동설한의 찬 눈을 다 녹여 버립니다. 반면에 급하고 강하게 부는 바람은 바다 물결을 요동케 합니다. 욥기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광풍 바람 속에서 나타나셨다고 하였으며 나1:3 “여호와의 길은 회오리 바람속 광풍에 같고 구름은 그 밭의 티끌이골.” 왕상19:11에서는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그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게 헐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말씀에 “흘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바람은 보이지 않지만 존재합니다. 이같이 성령은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며 바람은 대기권 안에 어디에나 있는 것처럼 성령도 안 계신 곳이 없으며 공기 바람을 마셔야만 사람의 육신이 살 수 있는 것처럼 우리의 심령은 성령을 받아야만 사는 것입니다. 바람은 본래 물질적 존재입니다. 그러나 물질 세계이면서 가장 신비한 것 중의 하나입니다. 바람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신비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무형이신 하나님께 가장 가까운 유사점이 있어서 영이라는 원어 와 바람이라는 원어가 같이 사용된 것 같습니다.

1. 바람은 생명의 숨결을 의미합니다 창 2:7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었다”고 하였는데 이 경우 생기와 바람은 같은 뜻이 있는 것입니다. 춘삼월 봄바람이 불어들 때 모든 동식물이 일제히 소생하듯이 성령의 바람이 불어오면 병든 자와 절망한 자와 죽은 자들이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바람은 생명의 상징이요 생명의 원천입니다. 따뜻한 바람이 불면 생명이 살고 찬 바람이 불면 생명이 죽는 것입니다. 성령의 바람이 지나간 오순절의 예루살렘에는 생명의 운동이 쓸어났습니다. 베드로의 설교에는 생명력이 있었고 그 말씀을 들은 무리들은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굻고 가슴을 치고 회개하며 하나님께 돌아왔습니다. 인생과 생명은 그 숨결에 달렸으니 호흡이 있음으로 생존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신앙의 호흡과 같아서 하나님의 영이 없이는 신앙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심령에도 성령의 바람이 불어와 새 생명의 약등함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 바람은 자유합니다 고후3:17에 보면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은 자유의 영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을 때 우리도 죄에서 자유하게 되며 모든 제도에서 자유하게 됩니다. 성령이 역사하는 곳에서는 의식의 예배보다 자유로운 기도, 자유로운 찬송, 자유로운 말씀, 자유로운 은혜의 분위기가 Li을납니다. 그러나 공기도 대기의 법칙에 의해 고기압에서 저기압으로 이동하듯이 성령도 무질서하게 역사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요 영원 생존의 권세로 다스리시는 법의 하나님이심으로 하나님의 법도 아래에서 성령의 자유의 바람이 부는 것입니다. 바람같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속 사람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3. 바람은 신비릅습니다 바람은 그 출처도 그 거처도 모릅니다. 어떤 학자는 바람과 영에 대해서 30년을 연구했는데 피상적인 일기예보 정도밖에 연구하지 못해 결국은 포기를 했다고 합니다. 바람과 영의 비밀은 하나님께서 감추어 두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인 주님께서 성령 즉 바람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신 것은 너무도 신비해서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성령이 임하실 때 나타나는 가지가지의 은사도 너무나 신비하여 무어라고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다만 받은 자만이 알 뿐입니다. 기독교는 윤리 도덕으로만 끝나는 종교가 아닙니다. 성령의 역사, 바람의 신비의 요소가 있는 종교입니다. 이론의 종교가 아닙니다. 체험의 종교요 체험이 있을 때 비로소 생명있는 신앙의 소유자가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신비의 체험을 닫아 확신과 생명이 넘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4. 바람은 청소하는 힘이 있습니다 더러운 공기를 깨끗하게 하고 공중에 가리우는 검은 구름을 몰아내면 자욱한 안개도 다 날려 보냅니다. 그와 같이 성령은 우리의 마음을 누르는 근심, 걱정, 의심, 번민, 괴로움 등을 다 몰아내 버립니다. 열린 창문을 통해 신선한 공기가 방안 공기를 깨끗하게 함과 같이 우리도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성령의 바람을 받아들여 성결한 그리스포의 뜻을 이루는 생활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5. 바람은 동력이며 감화력이 있습니다 1959년 여름 사하라 태풍이 불어 부산 청학동에서는 집이 하늘로 올라갔고 소와 돼지가 공중으로 날아 올라갔습니다. 바람은 낮은데의 물건을 위로 올리는 힘이 있습니다. 강한 성령의 역사를 받으면 하늘의 보좌에까지 올라가는 계시를 받습니다. 사40:30-31에 보면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질쳐도 곤비치 아니하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 엘리사에게 성령이 임했을 때 그 말과 행동에는 보통 사람이 갖지 못하는 힘이 있었고, 엘리사를 접하는 사람들에게는 이상한 생기와 활력을 주는 능력이 작용하였습니다. 스데반은 성령이 충만할 때 순교하는 순간, 천사의 얼굴로 변했습니다. 오늘 우리 성도는 이 신령한 성령의 원동력이 없는 선교란 불가능한 것입니다. 성령으로만 선교가 가능한 것입니다.

6. 바람은 불가항력입니다 “바람은 보기에 미미한 것처럼 보이나 태풍으로 그 세력이 모일 때는 바람을 막을 자 없습니다. 과학의 힘으로도 막을 수 없습니다. 급하고 강한 바람같이 나타난 성령의 역사는 로마의 검으로도 막지 못했고 유대인의 교권으로도, 세계의 군사력으로도 막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한국 교계와 한국 강산에 성령의 폭풍, 성령의 태풍이 세차게 불어 와야 합니다. 이 땅 위에 예수의 바람, 복음의 바람, 회개의 바람. 부흥의 바람, 거룩한 바람, 성령의 바람이 세차게 일어날 때 분명히 이 나라 이 민족에 살 길이 열릴 줄 믿습니다. 오늘 무엇엔가 획기적인 변화를 기다리고 있는 이 나라에 우리 교회가 이 민족을 살리는 거룩한 바람의 근원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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