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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권위자 바나바 (행 04:3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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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의 주인공은 신약성서 중 가장 위대한 인물 중의 한 사람입니다. 그는 바나바로서 신앙과 인격 그리고 생활에 모범된 위대한 신앙인이었습니다. 우리가 높은 산이라고 느껴지는 백두산. 한라산. 지리산, 속리산, 설악산도 히말라야 산맥의 에베레스트 산이나 북아메리카 주의 최고봉인 매킨리산과 비교해 볼 때는 결코 높은 산이라고 말할 수 없고 따라서 한라산을 등반했다고 하여 자랑이 될 수가 없습니다. 바나바도 사도 바울과 동시대 사람이었기에 그의 위대성이 역사에 드러나지 못했던 것입니다. 바나바는 선한 사람일 뿐 아니라 위대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뿐 아니라 그는 바울의 생애에 중요하고 위대한 영향을 끼친 사람이었습니다. 인간적인 뜻으로만 생각한다면 바나바가 없이는 사도 바울도 없었을 것입니다.

1. 바나바의 출신에 대하여 바나바의 부모가 지어준 이즘은 바나바가 아니었습니다. 그의 본래 이름은 요셉이었는데 교회의 사도들이 「권위자」, 「위호자」. 「권고자」. 「예언자」란 뜻을 가지고 있는 바나바로 별호를 지어준 것입니다. 바나바 는 별명대로 위로하여 주며 권고하며 말씀으로 가르치는 큰 일꾼으로 살았습니다. 성경을 보면 사람들의 이름이 바뀌어진 몇 가지 실례를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의 이름을 아브라함이라고 고쳐 주셨는데 그것은 그가 뭇사람의 아버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밤중에 천사와 씨름한 후에 「앞서려는 자」라는 뜻인 야곱이란 이름이 바뀌어 「하나님과 겨루어 이기는 자」라는 뜻의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얻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는 바요나 시몬의 이름을 「반석, 바위」라는 뜻의 베드로로 고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다소의 사울은 지극히 작은 자라는 뜻의 바울로 불리게 되었으니, 주님의 제자들은 요셉의 생의 현저한 특색을 보고 「위로자」라는 뜻의 바나바라는 이름으로 불러 주었던 것입니다. 바나바는 구브로섬 출생이었으며 그는 이 섬에 장활한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당시에는 재벌가였습니다. 그의 인품은 준수했고 헬레니즘 문화에 깊은 조예가 있었으며 기독교인으로서 열심있는 신자였습니다. 그가 신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고모인 마리아 집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틀었고 집안에 기독교 신자가 많음으로 해서 이것이 신앙의 도화선이 된 듯합니다. 바나바는 마가복음의 저자인 마가와 고사촌 형제간이었습니다. 바나바는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가 되었고 칠십인 제자 중의 한 사람이었으며 누가도 행 14:14에 그를 사도라 칭하였고 바울도 고전 9:6에서 그를 사도라고 하였습니다. 바나바는 레위지파 자손이었습니다. 그는 재산을 모두 팔아 교회에 바쳤습니다. 그의 그리스도적 생애는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고 이 세상의 물건을 포기하는 행동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선한 사람」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바나바의 일생에 있어서 여러 가지 점이 그가 권위자라는 이름을 교회에서 받기에 합당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2. 바나바의 신앙 인격에 대하여

(1) 그는 구제사업에 힘썼습니다. 교우 중에는 가난한 자와 노예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는 재산이 많은 자들도 있었으나 그들은 핍박으로 인하여 재산을 강제로 몰수당했고 그리하여 구제를 받아야 할 사람이 많이 생겼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초대교회에는 구제사업이 큰 과제로 되어 있었습니다. 초대교회가 부흥하여 감에 따라 은혜받은 바나바는 일대 결심한 바 있어 자기의 토지를 전부 팔아 헌납하였습니다.

(2) 그는 성령충만하고 믿음이 충만하였습니다. 바나바와 사울이 루스드라에서 앉은뱅이를 고쳤을 때 그곳 사람들은 이들은 하늘에서 땅에 내려온 신들이라 생각하였습니다. 바나바를 제우스 신. 바울을 헤르메스 신이라고 부르면서 신당에서 제사를 드리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울과 바나바는 단호히 거절하면서 그들을 책망하고 그 같은 행위를 금했습니다.

(3) 그는 인재를 식별할 줄 알았습니다. 1) 바나바가 바울을 천거했습니다. 다메섹에서 부름받아 회개한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에 자기가 사도됨을 선언할 때 예루살렘 대중들은 믿지 못했습니다. 그가 예수를 믿는다고 자칭하는 것은 술책에 지나지 않고 우리를 꾀어서 적에게 넘겨주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사나운 이리가 갑자기 온순한 양으로 변할 수 있고 교회를 핍박하던 자가 어떻게 예수의 제자가 되어 전도를 할 수 있단 말인가 하고 의심했습니다. 실로 사도 바울의 생애에 있어서 일대 위기였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에서 용납받지 못하면 사도가 될 수 없습니다. 마치 노회에서 안수를 받아야 목사가 될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모든 사람이 바울을 거부하였으나 오직 바나바만은 그를 천거해 주었습니다. 그는 바울의 진정한 참회를 인식시키고 그가 유능한 사람이요 동지임을 소개했습니다. 그에게 기회를 주면 유창한 외국어로 세계의 복음사업에 크게 기여할 것을 얘기했습니다. 바나바가 바울을 위하여 한 이 일은 남과 세상을 위하여 한 일 중에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혼란에 처해 있을때 다른 사람에게 납득을 시킨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세계를 향해 줄달음 칠 때 초대교회의 최고 신학자이며 선교사인 바울을 발견한 것이 바나바의 최대 업적의 하나였습니다. 그가 바울을 위하여 취한 행동은 또한 바나바가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풍만한 자라는 찬사를 받기에 합당한 사람임을 증명합니다. 2) 이방인을 위해 대변한 바나바였습니다. 안디옥 교회가 이방인 땅에 제일 먼저 세워졌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바나바를 안디옥 교회의 교역자로 파송하였습니다. 이 안디옥 교회는 주로 희랍인을 비롯하여 이방인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는 요한이나 베드로 또는 바울과 같은 인물이 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의 은사로 말미암아 바나바와 같은 귄위자가 되어 남을 격려하며 용기를 돋구어 주며 또한 슬픔을 당하고 시련을 당하고 고민하고 있는 이들에게 힘이 되어주기를 원하는 사람이 될 수는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사랑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습니다. 즉 사랑은 오래 참고 투기하지 아니하며 자랑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란다고 했습니다. 바나바기 이러한 인물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 모두 바나바의 인격을 닮아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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