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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말리엘의 중재 (행 05:3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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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사도들이 산헤드린에 나타났을 때 사도들은 예상밖의 협조자의 변호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바로 바리새인 가말리엘이었습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과는 근본적으로 다음과 같은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사두개인과 달리 정치적 야심은 없고 바기새인이란 어의 그대로 분별된 거룩한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부활과 내세와 영생과 천사의 존재를 믿었습니다. 바리새인은 율법의 작은 항목까지도 지키려고 전념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지키려 노력했던 항목은 무려 육천 가지나 됩니다. 바리새인은 깊은 존경과 대우를 받았습니다. 가말리엘은 바리새인의 정통적 학문을 가르치는 교법사였습니다. 사울은 가말리엘의 문하생이라는 사실을 최고의 명예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가말리엘은 전통적 이스라엘의 율법만 준수했을 뿐 아니라 희랍 문화와 문학에도 대단한 견식을 소유한 세계적 수순의 랍비였습니다. 가말리엘, 그는 이스라엘 힐렐 제사장의 손자로서 이스라엘 최고의 랍비였습니다. 유대의 모든 바리새인들은 가말리엘을 가리켜 율법의 「미」라고 불렀으며 가말리엘이 운명했을 때 「랍비 가말리엘이 돌아가셨으니 이제는 율법에 대한 존경도 없어졌고 순수성과 금욕도 가버렸도다」라며 슬퍼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랍비란, 유대교 교사들을 가리키는 칭호들 중에 최고의 칭호였습니다.

1. 가말리엘의 변호 35-39절에 “이스라엘 사람들아 너희가 이 사람들에 대하여 어떻게 하려는 것을 조심하라 이전에 드다가 일어나 스스로 자랑하매 사람이 약 사백이나 따르더니 그가 죽임을 당하매 좇던 사람이 다 흩어졌고 그 후 갈릴리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좇게 하다가 그가 망한즉 좇던 사람이 다 흩어졌느니라 이제 너희들은 상관 말고 버려두라 이 사상과 소행이 사람에게서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께로서 났으면 너희가 저희를 무너뜨릴 수 없을 것이며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하였습니다. 당시 유대에는 로마제국과 헤롯 왕가에 대한 반란이 종종 일어났습니다. 드다도 바로 그러한 반란 주모자의 한 사람으로 그 이름은 하나님의 선불이란 뜻입니다. 기록에 의하면 로마 총독 쿠스피우스 파두스(Cuspius Fadus 44-46)때 드다라는 자가 일어나 자칭 선지자라고 하면서 요단강을 가를 수 있다고 백성을 선동하다가 로마 총독에게 목베임을 당하였다고 했는데 바로 본문에 나오는 인물을 가리킵니다. 유다는 갈릴리 사람으로 요세푸스 역사 기록에 의하면 수리아의 총독 구레뇨가 인구조사를 한, 기원 6년 경에 이방 통치자에게 납세를 할 수 없다고 바리새파 사람 사독과 함께 반항하였다고 합니다. 그는 바리새파의 열심당으로 드다와 같은 운명으로 죽었습니다. 가말리엘은 이같이 기독교의 되어지는 사실들을 사도들의 운명과 드다와 갈릴리 유다를 비유하면서 하나님의 섭리에 맡기자고 발언한 것입니다. 이 신흥 종교가 사람에게서 났으면 자연히 없어질 것이요, 하나님에게서 난 것이면 번영할 것이니 하나님의 섭리라면 없앨 수 없으며 또한 하나님 을 대적하는 자가 된다고 했습니다. 가말리엘이 제언한 내용은

(1) 첫째, 자기들의 처리보다는 하나님의 섭리에 맡기자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순종의 행동이었습니다.

(2) 둘째, 사도들과의 의견과 신조는 다르지만 많은 사람을 관용하는 정신은 잃지 말자는 것이었습니다.

(3) 셋째, 시기의 대상이 되는 사도들을 잠시 밖에 나가게 한 것은 냉정한 이성을 찾으려는 태도였습니다. 즉 가말리엘은 하나님께 순종하고 사람을 관용하며 감정을 억제하는 신중한 태도로 사건에 임했습니다. 가말리엘의 제안에 설득된 공회는 사도들을 불러다가 때린 후에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고 명령하고 놓아 주었습니다. 가말리엘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으면 사도들을 온전히 놓아 주었어야 했는데 때린 후에야 놓아 준 것은 불법입니다. 유대인들은 신25:3, 고후 11:24절 말씀대로 세 갈래의 가죽끈으로 만든 채찍으로 범죄자를 때리되 서른 아흡 번까지만 때리도록 규정을 해 놓았습니다. 서른 아홉 번으로 제한한 것을 보면 그 채찍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더우기 죽이려던 것을 살리는 분풀이로 때렸으니 사도들은 무척이나 매서운 매를 맞은 것입니다.

2. 사도들의 적극적인 전도 그러나 본문에 보면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고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 하니 라”고 하였습니다. 사도들은 매를 맞고 핍박받는 것을 기뻐하며 영광으로 여겼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핍박받게 된 은혜를 기뻐했습니다. 또한 사도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모욕당함은 귀중한 체험이요, 사도된 자격을 하나님 앞에서 받는 것으로 믿고 기뻐했습니다. 주님께서도 일찌기 말하기를 눅6:22-23에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고 또 인자 때문에 너희를 배척하고 욕하고 누명을 씌우면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그 날에 기뻐하고 즐거운 춤을 추라”고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전4:14에서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당하면 복이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도들은 살이 찢어지도록 맞아도 기뻐했고 피부가 멍이 들어도 기뻐하면서 쉬지 않고 기도하고 전도하였습니다. 그것도 숨어서가 아니라 위협하는 제사장들이 모이는 성전에서 당당히 가르치고 외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외치는 것은 철학도 신학도 아닌 「예수는 그리스도시라」는 단순 명백한 복음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 재림, 속죄와 회개의 필요성 등, 꼭 알고 믿어야 할 진리의 말씀 뿐이었습니다. 우리가 믿게 된 십자가의 도는 매맞으며 굶주리며 피흘리면서 우리에 게까지 전하여 온 것이어늘 우리는 어찌 태만히 앉아서 복음을 받고 믿을 수 있습니까? 태만히 믿으면 시험이 옵니다. 그리고 또한 금일까지 우리에게 분명히 전하여 왔건만 혼잡하게 하고 교회를 어지럽히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입니 다. 명백한 복음, 장엄한 전도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으니 교회가 숱한 박해를 당해도 더욱더 확장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초대교회는 42절 말씀에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서나 집에서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했습니다. 이로써 초대교회는 가정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 그들이 참으로 열성적으로 신앙생활을 한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의 특징은, 1) 매일 집회(행2:46) 2) 매일 구원얻은 자의 확장(행2:47) 3) 매일 가르치기와 전도(행5:42) 4) 매일 구제(행6:1) 5) 매일 성경공부(행17:11)였습니다. 이런 초대교회의 역사가 우리 교회에서부터 재현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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