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신사적인 베뢰아 사람 (행 17:10-15)

첨부 1


바울 사도와 실라는 빌립보에서 중한 매를 맞고 상한 몸으로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를 거쳐 삼백 여리를 걸어 데살로니가에 도착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택한 데살로니가, 베뢰아, 아덴은 로마가 마게도냐를 횡단하여 동방에 군대를 파송하는 로마의 군사 도로에 있는 도시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군대를 서방으로 보내기 위하여 이 길을 이용하였던 것입니다. 과연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지고 이 군사 도로를 걸어서 서방으로 전진하는 사도 바울의 의기는 로마의 군대보다 장하였던 것입니다. 베뢰아와 데살로니가는 상업도시요, 발칸반도의 군사 요새지였습니다. 사도 바울의 전도길을 살펴보면 로마의 대동맥같은 교통로를 취하였고 요새지를 택하였으니 그는 전도의 지리를 잘 관찰하었고 어디서나 유대인의 회당을 전도 장소로 이용하였으니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전도하였던 것입니다. 그것은 사도 바울의 신앙이요, 무기였습니다. 사도 바울과 실라는 데살로니가에서의 핍박을 피하여 오백 여리나 떨어진 베뢰아에 도달하였습니다. 박해자와 정면 충돌을 피한 이유는 로마서 16장에 보면 야손이 데살로니가에서 사도 바울을 모셨는데, 이분이 바울의 친척인 듯하며 친척의 누를 끼칠까 하여 피한 것 같습니다.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 피난간 것은 처음에는 실패인 것처럼 보였으나 나중에는 도리어 성공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데살로니가 시에는 개선문이 있는데, 그 개선문 기념판에는 지금까지도 데살로니가에 큰 공을 세운 사람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거기에 세 군도. 가르쓰라는 사람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분이 바로 사도 바울과 실라를 도와서 데살로니가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여 큰 문화 혁명을 일으켰다는 공으로 그 이름이 개선문에 기록된 것입니다. 과연 이 비석만 보더라도 당시 데살로니가에 사도 바울과 실라가 이 성을 뒤흔드는 하나님의 역사를 일으켰음이 증명이 됩니다. 이렇게 승리를 거두고, 박해를 피하여 사도 바울과 실라는 베뢰아로 오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도 성공하여 성경공부의 근본이 되는 베뢰아 교회를 설립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연전 연승하여 빌립보 교회, 데살로니가 교회. 베뢰아 교회는 마게도냐 전도와 요새지로서 진지를 구축하게 된 것입니다. 베뢰아에는 두 하천이 있어서 불이 풍부하다는 뜻으로 부르게 된 것입니다. 베뢰아는 수목이 무성하며 경치가 매우 아름답고 이만 명의 선량한 시민이 사는 좋은 도시로서, 지금도 베뢰아라는 이름으로 불려지고 있습니다. 물 좋고, 정자 좋고, 바람 좋고, 나무 좋고, 인심 좋은 아름다운 곳에 성경 중심의 교회가 세워졌는데 이것이 바로 베뢰아 교회입니다. 본문의 말씀을 보니 베뢰아 사람들은 데살로니가 사람들보다 더 신사적이었다고 했습니다. 즉 신사는 성품이 고결하고 고상한 분을 말합니다. 베뢰아 사람들을 살펴보면

1.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았습니다 사도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들은 데살로니가 사람들은 바울을 “천하를 어지럽히는 자”라고 박해하였습니다. 똑같은 복음이요. 똑같은 설교였으나 베뢰아 사람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복음을 받았으니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들이 모인 교회는 은혜가 충만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살전2:13에서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 라” 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든지 복음을 들을 때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들어야 합니다. 예배시 하나님의 말씀을 귀하게 듣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움직여 말씀대로 다 이루어 주십니다.

2.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였습니다 들은 말씀이 그러한가 하여 성경을 상고하였습니다. 바울을 책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믿고 바로 알고자 하는 심정으로, 바울의 증거한 복음이 성서적인가 하여 성경을 열심히 상고하였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성경 안에서 발견되어져야 합니다. 기독교의 진리를 탐구하는 문제는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입니다. 진리를 바로 알고 바로 믿으면 살고, 잘못 알고 잘못 믿으면 죽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요11:25에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네가 이것을 믿느냐” 하였습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였습니다. 성경은 철학적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나 철학을 교훈하기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이 문학적 가치가 있다고 해서 문학을 가르치기 위하여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그 말씀을 통하여 예수를 증거하며 죄인을 구속하기 위하여 성경은 있는 것입니다. 성경만이 하나님의 비밀, 십자가의 비밀, 부활의 비밀. 재림의 비밀, 그 리고 내세의 비밀을 분명하게 계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연구하면 연구할수록 깊은 진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성경을 겉으로 수박 핥듯이 읽어서 재미있는 고담만 못하게 보시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밤송이를 보면 가시를 벗기고 껍질을 벗겨야 맛있는 알밤이 나오는 것처럼 성경을 성령의 감동으로 정독하고 반복하여 읽으면, 성경은 오묘한 진리를 우리에게 계시해 주십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참된 생명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베뢰아 시민은 하나님 말씀에 도취하여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하니이다” (시119:103)라고 고백하였던 것입니다.

3. 성경을 상고한 결과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날마다 더해졌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베뢰아 사람을 본받아 예수를 성경에서 발견하고 성경대로 믿어 구원을 완성하시기를 바랍니다. 데살로니가의 유대인들은 베뢰아에까지 와서 바울과 실라를 박해함으로, 두 사도는 베뢰아에서 교회를 조직하고 아덴으로 내려갔습니다. 두 사도가 이르는 곳마다 교인이 더 일어나고 교회가 부흥되어 갔습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